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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팎 악재 속 대권 4선 예약해놓은 푸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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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no's 2018. 3. 10.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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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진이 지난 1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 마네즈홀에서 국정연설을 하는 현장을 취재하고 있다. 기자들의 좌석 앞에 푸틴의 얼굴을 확대한 영상이 보인다. 모스크바/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오는 18일 대선에서 집권 4기를 노린다. 2000년부터 임기 4년의 대통령직을 두차례 수행하고 2008년부터 4년간 총리를 지낸 뒤 2012년부터 다시 시작한 6년의 임기가 끝나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의 당선은 이미 ‘떼어 놓은 당상’인 것 같다.

지난 1일 러시아 국영 여론조사기관 브치옴(VTSIOM)의 조사 결과 푸틴은 69%의 지지율을 얻었다. 2위인 러시아 연방공산당의 파벨 그루디닌 후보가 7.8%였고, 3위인 자유민주당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 후보가 5.9%였다. TV앵커 출신의 크세이야 소브착은 1.6%였다. 지난 2월 각종 여론조사에서 푸틴은 57~71.5%의 압도적인 지지율을 얻었다. 4월8일의 결선투표까지 갈 필요도 없이 1차투표에서 과반의 득표를 할 것으로 점쳐지는 까닭이다. 

선거는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긴장감을 유발하는 경쟁자와 위기의식이 없으면 흥행에 실패한다. 푸틴의 최대 정적으로 꼽혔던 야권 지도자 보리스 넴초프 전 제1부총리는 3년 전 ‘체첸 테러범’에 의해 제거됐다. 국내 경쟁자가 없다 보니 푸틴은 외부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미국을 필두로 한 서방의 위협에 러시아가 노출됐으며,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할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는 것이 핵심 메시지이다.


■ 서방과 군비경쟁? 상황도, 계제도 안돼 

지난 1일 모스크바 붉은광장의 마네즈 중앙홀. 푸틴은 2시간에 걸친 올해 국정연설에서 자신의 치적을 홍보하는 한편 러시아는 미국과의 군비경쟁에서 뒤지지 않고 있음을 강조했다. 러시아 연방협의회·두마 의원들 및 종교·언론계 지도자들을 초청한 자리였다. 푸틴은 2000년 만해도 4200만명에 육박하던 빈곤인구가 2000만명으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오는 5월 최저임금을 생활비 수준으로 맞추면 400만명이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그동안 65세에 불과했던 평균수명이 73세로 올라갔다고도 말했다. 이어 2025년까지 러시아는 세계 5대 경제강국이 돼야 한다면서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50% 늘리겠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이날 연설의 하이라이트는 45분가량을 할애한 신무기 자랑이었다.

연단 옆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놓고 신형 크루즈미사일이 미국의 미사일방어(MD)망을 유유하게 피하면서 대서양을 횡단, 미국을 향하는 장면이 비치자 장내 박수가 터졌다. 푸틴은 “러시아를 견제하겠다는 (미국의) 노력은 실패했다”면서 2010년 이후 추진해온 무기 현대화 계획이 시리아 내전에서 입증됐다고 기염을 토했다. 초음속 공중발사 크루즈미사일과 사르맛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스템 및 핵기뢰 등 3가지 무기가 가장 강조됐다. 이 중 핵기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핵태세검토보고서(NPR)에서 강조했던 러시아의 대표적인 저강도(low-yield) 핵무기다.

하지만 푸틴의 무기쇼를 지켜본 서방 전문가들은 대부분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마디로 새로울 것이 없는 무기들을 신무기로 포장하거나, 위력을 과장했다는 혹평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전문가들의 견해를 묶어 “군사력에 과도하게 의지하는 것은 취약함의 방증”이라고 비꼬았다. 뉴욕타임스는 “푸틴의 핵무기 자랑이 힘의 균형을 바꾸지 못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데이나 화이트 펜타곤 대변인은 “우리는 그(푸틴 대통령)의 말에 놀라지 않았다”면서 “미군은 국토방위에 완벽하게 준비돼 있다”고 말했다.


오는 18일 대선 1차투표를 앞두고 유세에 나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6일 브레르드로브스크 지방의 니자니 타길에서 열린 청년 노동자 포럼에 참석해 토론자들의 말을 듣고 있다.  니자니 타길 | EPA연합뉴스

오는 18일 대선 1차투표를 앞두고 유세에 나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6일 브레르드로브스크 지방의 니자니 타길에서 열린 청년 노동자 포럼에 참석해 토론자들의 말을 듣고 있다. 니자니 타길 | EPA연합뉴스


■ ‘가까운 외국’에서 중동까지 군사개입 

러시아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나라임에 틀림이 없다. 군사적으로 미국과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러시아의 올해 국방예산은 460억달러(GDP의 2.8%)이다. 미국 국방예산(7000억달러)의 6.57%에 불과하다. 지난 5일 발표된 중국의 국방예산(1750억달러)과 비교해도 3분의 1이 채 안된다. 세르게이 소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작년 말 국방예산을 발표하면서 미국과 영국(600억달러), 독일·프랑스(각각 400억달러)의 국방예산을 함께 공개했다. 러시아가 미국과 진지한 군비경쟁에 나선다면 냉전 당시와 마찬가지로 자멸의 길을 답습할 뿐이다. 미국은 핵무기 개량에만 향후 30년간 1조2000억달러를 투입할 방침이다. 이러한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푸틴이 무기쇼를 벌인 것은 러시아 유권자들을 겨냥해서였다. 강대국의 비전은 러시아가 미국의 위협에 놓여 있다는 피포위심리와 동전의 양면이다. 푸틴은 옛소련 붕괴 이후 여전히 강대국 시절의 향수를 갖고 있는 국민들의 자존심을 부추겨왔다. 지난 2일 “러시아 역사에서 바꾸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바로 소련의 붕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실 대외관계에서 이러한 향수가 담긴 말이 ‘가까운 외국(近外·Near Abroad)’이라는 개념이다. 발트해를 포함해 옛소련에 속했던 국가들은 물론 중·동유럽을 아우르는 지역을 ‘근외’로 지목했다. 전략적으로 러시아의 국익에 필수적인 지역으로 꼽고 있다. 2014년 병합과 침공의 대상이었던 크림반도와 동우크라이나는 모두 근외지역이다. 시리아 내전에도 개입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강대국 드라이브는 강한 역풍을 맞고 있다. 

러시아 대선 유세가 벌어지고 있는 지난 3일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마이크를 잡고 열변을 토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화면 주위에 수많은 주민들이 운집해 있다.  모스크바 | EPA연합뉴스

러시아 대선 유세가 벌어지고 있는 지난 3일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마이크를 잡고 열변을 토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화면 주위에 수많은 주민들이 운집해 있다. 모스크바 | EPA연합뉴스

■ 역풍 부르는 ‘강대국의 꿈’ 

2015년 발을 들여놓은 시리아 내전 개입은 정규군과 비정규군으로 이원화돼 있다. 공식적으론 시리아 흐메이님 공군기지에 주둔한 러시아 전투기를 동원한 공습작전이 중심이다. 비공식적으론 ‘푸틴의 요리사’로 불리는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업체가 파견한 용병들이 원유시설을 보호하고 있다. 올해 들어 미군의 작전으로 러시아군 200명이 사살됐는가 하면, 러시아군 수호이25 조종사가 사살되는 등 피해가 늘고 있다. 시리아 내전의 다중갈등구조 속에 갈수록 곤경에 처하고 있다.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 시아파와 수니파, 쿠르드와 터키 사이에서 안팎 샌드위치의 처지가 될 위험도 있다. 특히 이란과 함께 아사드 정부를 지지하면서 수니파와 척을 지고 있어 자칫 러시아 내 수니파 주민들의 반발은 물론, 중앙아시아 및 캅카스 지역 수니파 주민들의 정서를 자극할 위험도 다분하다.

강대국의 향수를 자극했던 2014년 크림반도 병합 및 동우크라이나 군사개입의 약효도 떨어져가고 있다. 되레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위비 분담 요구에 자극받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군이 이제 러시아 국경지역의 경계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이 에너지 안보에 대한 경각심을 높임에 따라 원유와 천연가스를 지정학적 압력수단으로 이용하는 것도 힘들어졌다. 

국내적으론 원유에 의존했던 경제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푸틴 1~2기 집권 시(2000~2008년) 러시아 GDP는 8년 내내 연평균 7%의 고도성장을 했다.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한 시기와 맞물린다. 하지만 크림반도 병합 탓에 미국·일본·캐나다의 독자제재와 EU의 제재를 받고 있다. 2016년 미국 대선개입은 또 다른 제재를 야기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러시아 경제는 2014년 0.7% 성장에 그친 뒤 2015, 2016년 각각 마이너스 3.7%, 마이너스 0.6%로 뒷걸음질을 쳤다. 지난해 1.5%로 마이너스 성장을 면했지만 세계경제의 호황 국면에 올라타는 것은 아직 언감생심이다. 조 바이든 전 미국 부통령이 최근 뮌헨안보회의에서 “러시아는 모든 객관적 기준에 비춰 보아 심각하게 쇠락하고 있는 국가”라고 단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지난 3일 모스크바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선거유세장에 입장하고 있다. 모스크바/EPA연합뉴스 

■ 대서양 건너 ‘푸틴의 대역’이 그나마 위안 

현실정치에서 힘을 잃어가는 푸틴이 그나마 위안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미국과 유럽에서 속속 세력을 넓혀가는 극우 포퓰리즘이다. 푸틴 스스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미국과 유럽에 구축해놓은 아성 덕분이다. 당장 지난 5일 이탈리아 총선의 최대 승자이자 유권자 절반의 지지를 받은 오성운동(득표율 32%)과 북부동맹(18%)이 친러시아 세력이다. 나토에 반대하는 두 포퓰리즘 정당은 러시아의 시리아 군사개입을 지지하는 한편, 국제사회의 러시아 제재를 반대하고 있다. 미국에는 더 믿음직한 카드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수사국(FBI)을 비롯한 미국 정보공동체와 연방법원 판사들, 제도권 언론, 의회 등 미국 민주주의의 기성제도들을 공격할 때마다 푸틴의 우선순위를 대행해주는 격이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부 차관을 지낸 앤터니 블린큰은 뉴욕타임스 기고문에서 “승산이 낮은 카드를 들고 있는 푸틴에게 ‘트럼프 카드’는 저비용·고효율의 카드”라면서 “푸틴이 약해졌지만, 여전히 위험한 이유”라고 지적했다. 프랑스와 독일, 네덜란드 등 서유럽 포퓰리즘 정당들은 물론, 극우 민족주의 성향이 짙어지는 중·동유럽 국가들에서도 푸틴의 러시아는 인기가 높다. 극우 포퓰리스트들이 세계화와 미국 주도 세계질서의 대안으로 러시아를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푸틴은 포퓰리스트가 아니지만 각국 극우 포퓰리스트들의 지지를 받는 기현상이다. 기실 푸틴은 국회의원들 앞에서 핵무기를 자랑하기보다, 포퓰리즘을 자극하는 것이 서구에 더 위협적이다. 바로 대선을 앞둔 푸틴이 요즘 하고 있는 작업이기도 하다. 푸틴은 친여성향의 언론인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와 함께 ‘2018년 세계질서’를 주제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러시아 라디오·국영TV는 물론, 소셜미디어에 방영하기 위해서다. 이를 통해 하루가 멀다하고 ‘법어’를 내놓고 있다. 지난 7일(현지시간)에는 미국의 정치시스템과 관련해 “나는 파트너(미국 정치인)들보다 시스템 그 자체에 더 실망하고 있다”면서 “스스로를 먹어치우는 시스템”이라고 비난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당과 인민의 공통된 의지가 반영된’ 헌법개정을 통해 임기 없는 ‘황제’ 자리에 오르는 3월, 푸틴은 대선 투표를 통해 사실상의 ‘차르’에 등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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