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정지윤기자
■평화와 통일 기원, 천일 기도 끝자락에 날아온 낭보
“기도가 통한 것일까.” 법륜 평화재단 이사장은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잇달아 전해지는 상서로운 소식들이 반가울 뿐이다. 사람의 힘으로 안된다는 생각에 평화재단이 3년 전 시작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천일 기도가 오는 5월22일에 끝난다. 종료 백일을 남기고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 한반도 정세가 전쟁에서 평화로 숨가쁜 전환을 하는 동안 법륜 스님은 한가지만 바라보고 있었다. 평화였다. 작년 말 서울에서 두차례 평화대회를 열고 국내외 수십곳에서 평일에는 1인 시위, 주말에는 전쟁반대 집회를 열었다. 현상황의 급류를 보는 심정이 남다를 터, 지난 19일 서울 서초동 평화재단에서 만났다.
그는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비핵화, 평화체제 의제에 동의하고 미국이 이를 지지한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있겠지만 원칙적 합의는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안보문제를 풀지 않고 부차적인 것들만 얘기하다보니 논의가 뒷걸음질 쳤던 과거와는 다를 것이라는 말이다.
정지윤기자
■진보도, 보수도 외면한 두차례의 평화대회
지난해 말부터 평화운동을 벌이면서 좌절과 성취를 모두 겪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른 장소도 아니고 평화의 전당이라는 유엔에서 북한의 ‘완전한 파괴’를 다짐하고, 북한도 미국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에 맞춰 “전쟁 만은 안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하기 위해 11월5일 평화대회를 조직한 까닭이다. 보수와 진보, 연령, 종교와 무관하게 한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진보단체들은 ‘주한미군 철수’를 포함시킬 것을 주장하면서, 보수단체들은 “대북 제한적 군사작전을 찬성한다”는 이유로 동참을 꺼렸다. 12월23일 2차 평화대회는 연말분위기 탓인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진보에도 섭섭했지만 보수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평화체제를 구축해 안전한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 왜 진보의 이슈가 돼야 하는가. 대한민국이 발전하려면 정말 현상황을 극복해야만 한다. 이걸 넘어선 뒤 동아시아의 주요 국가로 나라의 운명을 개척하는 것이야말로 보수의 이념, 보수주의자의 비전이 돼야 한다. 진보의 이슈가 인권이나 평등이라면, 보수의 이슈는 국가발전이 돼야 하지 않나요. 국가발전을 위한 제안인데 왜 평화와 통일이 진보의 이슈인가요.”
정지윤기자
■백악관 사이트에 올린 평화체제 청원, 26일만에 서명 10만명 돌파
지난 3월 당초 3차 평화대회를 준비했었다. 평창 동계올림픽이 끝난 뒤 북한과 미국이 다시 충돌할 것에 대비해서다. 다행히 남북, 북미대화 일정이 잡히고 비핵화가 의제가 됐다. 해서 65년 동안 끝나지 않은 한국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체제를 추진해달라는 청원을 하기로 했다. 백악관 홈페에지 ‘위 더 피플(We The People)’에 올렸다. 30일 내 10만명이 서명하면 백악관은 검토작업을 거쳐 60일 내 공식답변을 준다. 강행군이었다. 하지만 3월15일(현지시간)에 시작해 4월9일 10만5892명의 서명을 받았다. 백악관이 조만간 공식 답변을 주겠지만 이미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그 답을 들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인터뷰 전날(미국시간 17일) 트럼프가 “한국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공개발언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법륜스님은 한반도 이슈에 관한 한 웬만한 전문가 보다 더 전문적인 식견을 갖고 있다. 그 식견을 특유의 즉문즉설에 실어 대중에게 설파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지키느냐, 안지키느냐. 굳이 따진다면 안지킬 확률이 높습니다. 그럼 왜 (비핵화약속을)하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죠. 하지만 북한도 핵을 계속 갖고 있으려면 어려움이 있어요. (제재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이 장기화하면 체제붕괴의 원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죠.” 해서 그가 내놓은 해법은 북한이 비핵화하겠다고 자국민에게 말할 수 있는 어떤 변명거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종전과 평화체제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정지윤기자
■현재 한반도 상황은 51대49로 긍정적
국내 일각에선 천안함 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김영철 통전부장의 남한 파견을 정부가 제동을 걸거나 최소한 불쾌함을 표시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그의 생각은 다르다. “북한과는 적대관계 아닙니까. 적대적인 관계에서 평화를 이야기하려면 가장 적대적인 사람, 적장과 만나서 얘기를 해야 효과가 있습니다. 적의 온건파와 얘기하는 건 평화협상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니까요.” 다만, 한-일 관계 처럼 평화로운 관계에서는 일본이 위안부나 독도 문제에서 강경한 사람을 협상대표로 보낸다면 막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방한 중인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은 미사일은 검증이 가능해도 핵탄두 보유량은 추론할 수밖에 없다고 전한 바 있다. 법륜스님은 이에 대해 “북한이 과연 핵을 다 없앨 것인가 아닌가. 이런 논쟁은 밤을 세워도 부족합니다”라면서 “영변 핵시설이나 풍계리 핵실험장 같은 걸 정리하고 핵물질을 반환한다면 1차적인 비핵화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인터뷰 이틀 뒤인 21일 북한은 핵실험장 폐기 선언을 했다.) 북한이 일부 핵탄두를 은폐하더라도 감시체제가 작동하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만큼 “서로 신뢰가 쌓이고 통합이 되면, 그때가서 혹 숨겨놓은 게 있으면 찾아내 폐기하면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너무 결벽주의가 되면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게 없기 때문”이다.
■통일지상주의는 전쟁을 불사하고, 평화지상주의는 현실에 안주한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진보 정권이나 보수 정권이나 공개적으로 확인은 하지 못하지만 북핵 해결에 이은 통일의 담대한 일정 보다는 북한과 ‘평화적 공존’을 하는 데 안주하는 경향이 있는 게 사실이다. ‘평화’와 ‘통일’ ‘북핵’이라는 키워드 중에 정작 최대 목표치는 ‘평화’가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는 이에 대해 준비된 답변을 갖고 있었다. “진정한 평화가 오려면 북한의 비핵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북핵을 두고 평화롭게 살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도, 전쟁을 치르더라도 북핵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도 틀렸다고 봅니다.”라고 단언했다. “평화는 현재의 이익이고, 통일은 미래의 이익입니다. 평화 없는 통일, 즉 통일지상주의는 전쟁도 불사하며 미래 이익을 위해 현재를 파괴할 수 있고, 통일 없는 평화 즉, 평화지상주의는 현실안주 우려가 있어요. 대한민국이 더 발전적으로 가기 위해서는 통일을 포기하면 안됩니다. 가장 좋은 대안은 남북이 협력, 북한의 자원과 남한의 기술이 협력하는 경제공동체로 갔다가 서로 합치는게 좋다는 판단이 들 때 통일을 하면 됩니다.”
정지윤기자
■낙관적으로 보되 늘 평화 위협 상황 경계해야
평화는 낙관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작년 하반기 국내외 수십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평화집회를 열었다. 한 미국인 지인은 “스님이 아무리 그래도 소용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결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충고였다. 하지만 “전쟁이 나기 전까지는 전쟁만은 안된다고 주장하고, 막상 전쟁이 난다면 그때가서는 종전 투쟁을 벌여야 하는 게 종교인의 할 일이 아닌가”하는 생각이다.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낙관적인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그의 생각은 약간 다르다. 두개의 정상회담이 바라는대로 결론짓지 못할 경우를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쟁위협이 다소 줄었지만 미국과 북한이 충돌한 기본 갈등은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어요. 서로 의향만 보인 셈이죠. 매사를 낙관적으로 봐야 하지만 늘 경계심을 갖고 있어야 해요. 종교인으로 기도 열심히 하면서 주시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그래도 굳이 따지자면 (지금은)51 대 49의 긍정으로 기울어진 게 아닌가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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