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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ees

"위안부문제? 모든 피해자들이 인간의 존엄을 되찾아야 해결된다"

by gino's 2018. 3. 13.

일본 공산당 기관지 아카하타의 고기소 요지 편집국장이 지난 3월 10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 편집국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영민기자


방한한 고기소 요지 일본 아카하타 신문 편집국장 

내년의 3.1운동 100주년 앞두고 연대 제의


"한일합병 이후 독립과 해방을 요구하는 조선인들의 싸움은 계속돼왔다. 그 정점에 있는 것이 3·1운동이다. 일본의 제국주의 지배에도 큰 타격이 됐다.” 


일본 정부와 언론은 괴이한 전통을 갖고 있다. 정부가 비공개 대화를 통해 언론의 협조를 요청하면, 언론은 거의 예외 없이 이를 받아들인다. 여기서 제외되면 일종의 왕따를 당한다.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야합이다. (일부 한국 공무원들이 부러워할 정도다.) 유일한 예외가 일본 공산당 기관지인 아카하타(赤旗)이다. 정부의 협조 요청에 일절 응하지 않는다. 역으로 일본 정부는 어떠한 보도자료나 취재편의도 아카하타에 제공하지 않는다. 한·일 간의 역사 문제에서도 아카하타는 예외다.


지난달 창간 90주년을 맞은 아카하타는 오랜 역사를 통틀어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지하는 한편, 일제의 식민지배를 비난해왔다. 내년의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건국대 KU중국연구원 초청으로 방한한 고기소 요지(小木曾陽司·63) 아카하타 편집국장을 지난 10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 편집국에서 만나 양국 간 역사 문제 해법과 일본 공산당의 현황에 대해 들었다. 


고기소 국장은 “3·1운동 뒤 1세기 동안 세계적으로 식민지배체제가 붕괴됐다. 또 국민주권, 즉 민주주의 흐름이 강해졌다. 이러한 전향적인 흐름에 3·1운동이 큰 공헌을 했다”고 짚었다. 또 “3·1운동과 연대를 해온 아카하타 역시 큰 공헌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아카하타는 1928년 2월 창간 직후부터 3·1운동을 비롯한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지하며 연대투쟁을 다짐해왔다. 고기소 국장이 이번에 가져온 1931년 3월1일자 35호 사본에는 ‘3·1 기념일’이라는 제목으로 조선의 독립운동을 지지하며 연대투쟁을 촉구한 글이 실려 있다. 아카하타는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조선인 노동자들을 학살했음에도 일본의 무산자계급은 어떠한 항의도 하지 못했다면서 “이러한 부끄러움을 씻어내기 위해 어떠한 대가라도 치러야 한다”고 다짐하고 있다. 구체적인 행동 방식으로 일본 내 조선인 노동자들을 위해 ‘동일노동 동일은화(임금)’의 일상 요구를 할 것을 제안했다. 


1931년 3월1일자 아카하타 35호. '3.1일 기념일' 이라는 제목으로 3.1운동에 대한 연대투쟁 의지를 담고 있다. 


한·일 간 역사 문제 해결을 위해 아카하타와 일본 공산당이 선택한 방침은 바른 역사를 알리는 작업이다. 아카하타 산하 신일본출판사가 기록한 일제 침략과 식민지배의 잔혹사를 엮은 책 <우리는 가해자입니다>를 지난해 KU중국연구원에서 한글로 내놓았다. 


일본 공산당과 아카하타가 보기에 일본 측은 여전히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이 부족하다. 일본 언론도 문제다. 그는 “아베 신조 총리가 (3년 전) 종전 70주년 기념담화를 발표하면서 러일전쟁을 미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언론은 이를 거의 지적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어 “한·일 양국 국민의 우호를 위해서는 역사 문제 해결이 필수적인 토대”이며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후세에 전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면 양국의 우호도 동북아의 평화도 실현시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내에서는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역사 문제 해결을 위해 일본 내 양심적인 시민사회와 연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종종 제기된다. 하지만 아베 신조 정부 출범 이후 일본 시민사회 내에서조차 역사 문제를 다루는 데 ‘피로 현상’을 보인다는 말이 들려온다. 고기소 국장은 “역사를 날조하는 세력의 움직임이 강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피로감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 같다”면서 “최근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 정부가 책임을 인정한 고노담화에 대한 심한 공격이 벌어졌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러한 공격은 전혀 근거 없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타파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정부와 아베 내각이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합의했다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입장도 분명했다. 그는 “양국 간 합의는 문제 해결을 위한 출발점에 불과하다. 모든 위안부 피해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회복해야만 해결이 된다”고 역설했다. 이는 일본 공산당이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정리한 공식 입장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1922년 7월15일 창당했지만 일제에 의해 불법으로 규정된 탓에 지하당으로만 존재하던 일본 공산당은 1945년 종전과 함께 맥아더의 사령부 치하에서 되살아났다. 일본 공산당이 당시 일제 당국에 가장 위험한 정당이었던 까닭은 사회주의 혁명을 추구했기 때문일 게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민주주의’라는 불온한 사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기소 국장은 당시 정당의 민주주의 지지 척도를 일제의 ‘치안유지법’으로 들었다. “이른바 사회주의자 또는 사민주의자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민주주의 권리에 대해 둔감했다. 입장이 약했기에 민주주의를 탄압한 치안유지법을 준수했다. 우리는 그 법에 항거하며 민주주의를 요구했기 때문에 심한 탄압을 받았다”는 것이다. 


태생적으로 일본 제국주의와 식민지 지배를 반대했으며, 같은 맥락에서 3.1운동 100주년을 앞둔 현재까지 일본의 부족한 과거사 반성 태도를 비판하는 일본 공산당도 영토문제에서는 다소 생각이 다르다. 예를들어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는 북방영토와 관련해 일본 정부는 그중 섬 4개의 반환만을 요구하지만, 일본 공산당은 북방영토 전체의 반환을 요구한다. 고기소 국장은 “소련이 얄타협정에서 더이상의 영토점령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2차대전 종전 시점에 북방영토를 점령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독도 역시 일본 영토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1905년 일본 정부가 각의 결정으로 독도, 다케시마를 시마네현에 편입했다. 한국 정부는 그 1년전에 이미 외교권을 빼앗겼기에 이의제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처럼 다케시마 문제가 식민지배 과정에서 일어난 일임을 인정하고 그 토대 위에서 서로의 입장을 충분히 논의하자는 게 일본 공산당의 입장이다.” 당시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영토권만을 요구하는 아베정부의 태도는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다. 


고기소 요지 국장이 아카하타 편집부가 엮은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 역사책을 들고 설명하고 있다. 지난해 건국대 중국연구원에서 <우리는 가해자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됐다. 김영민기자 


일본 공산당 당원이 30만명인 데 비해 아카하타의 유료부수는 113만부이다. 당 수입의 85%를 신문 구독료와 유관사업으로 충당하고 있다. 고기소 국장은 당원보다 많은 독자수를 갖고 있는 것에 대해 “아베 내각의 폭주에 반발하는 시민들의 마그마가 축적돼 있고, 그러한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언론은 아카하타 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본 공산당은 폭력혁명이 아닌 민주주의 혁명을 추구한다. 2014년 총선에서 중의원 21석을 얻었던 일본 공산당의 당세는 작년 총선에서 13석으로 다소 줄었다. 하지만 이는 시민·야당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야권 공동후보를 냈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야당들이 획기적으로 ‘원전 없는 법안’을 공동발의했다. 야권연대를 넓히는 것만이 일본 정치를 바꾸는 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데올로기의 경직성을 버리고 유권자의 생활속으로 들어가는 일상의 정치를 하고 있는 일본 공산당이지만 정통 마르크스주의의 맥은 잊지 않는다. 더구나 오는 5월5일은 칼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이 아닌가. 고기소 국장은 1970년대 시작된 세계화가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의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면서 양극화가 악화되는 이 시대, 마르크스주의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결국에는 사회주의 사회가 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자본주의 시대를 넘어가는 사회가 올것이라고 믿는다. 자본주의는 이윤 제일주의 시스템이다. 그 때문에 세계적으로 빈곤과 양극화, 환경문제 등을 낳고 있다. 이윤 제일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 그런점에서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밝힌 이론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일본 공산당은 1960년대 소련 공산당과 관계를 끊은 데 이어 권력을 세습해온 북한 조선노동당도 정통 공산주의 정당이 아닌 독특한 체제라고 본다. 일본 공산당에도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전통이 살아 있을까. “외국 공산당 중에서는 베트남 공산당과 연례 이론교류 행사를 한다. 그렇다고 베트남 공산당의 통치 방식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꼭 공산당에 국한하지 않고 영국 노동당이나 스페인 포데모스 등 각국 진보 정당들과 교류한다”는 게 고기소 국장과 동행한 오모카와 마코토(面川  誠) 일본 공산당 국제위원회 위원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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