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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데이비드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제안 10년 뒤...

한반도, 오늘

by gino's 2018. 5. 21.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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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27일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지난 4일 백악관 사우스론에서 전용헬기 마린 원에 탑승하기 직전 취재진과 이야기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다음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사상 첫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 30년 동안 북한 문제를 다뤄왔다. 그동안 미국의 대북정책은 먹히지 않았다. 북한이 먼저 행동한 뒤에나 움직이겠다는 우리의 셈법이 틀렸기 때문이다. 이를 인정해야 한다. 그 토대 위에서 전혀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 다음 미국 대통령이 우선 해야 할 일은 북한 지도자를 캠프 데이비드로 초청하는 것이다.”

파격적인 제안이었다. 2008년 5월13일 미국 워싱턴의 카네기국제평화재단에서 열린 토론회. 발상의 전환을 촉구한 주인공은 칼 포드 전 국무부 정보담당 차관보였다. 군과 중앙정보국(CIA), 국무부 정보조사국(INI) 등에서 동아시아 정보 분야에 복무해온 그의 제안은 확신에 차 있었다. 가장 눈길을 끌었던 대목은 첫 북·미 정상회담의 장소로 캠프 데이비드를 지목한 것이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의 정상회담이 열린 지 한 달쯤 지난 시점이었다. 성 김 당시 국무부 한국과장이 1만8000쪽의 영변 실험용 원자로 가동기록 등을 갖고 온 직후이기도 했다. 포드가 캠프 데이비드를 꼽은 이유는 정상 간에 구체적인 어젠다를 놓고 협상하기보다는 넥타이를 풀고 만날 장소로 적합하기 때문이다. 지미 카터 행정부가 이스라엘과 이집트 간의 평화협상을 유도했던 곳이 바로 캠프 데이비드다. 적대관계였던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과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총리 일행은 각각 통나무집에서 12일을 지냈다. 그만큼 구체적 계획을 최소화하고, 큰 그림을 그리기 안성맞춤인 곳이다. 북한의 특성상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는(Bottom-up) 방식은 안된다. 최고지도자의 개인적 관여가 없이는 어떠한 문제도 해결이 안된다는 점을 간파한 포드의 논리는 이랬다. 

칼 포드 전 국무부 차관보

 

2008년엔 다단계 협상 가능
지금은 핵무기·미사일까지 가져…북한의 핵포기 가능성에 회의적

트럼프 “정해진 틀 없다”지만
미, 사찰 없이 합의안 서명 만무… 북한 ‘불시사찰’ 받을지도 만무

정상회담 실패 땐 문제 악화?
트럼프가 회담장 박차고 나오면 대북 군사행동 압박 강화할 수도

성공 땐 트럼프에 노벨평화상?
세계평화 기여 과장선전 걱정돼 피해 수반 외면, 승리 집착 우려

지금까지 미국의 모든 시도는 실패했다, 그렇다면 왜 전혀 새로운 패러다임을 시도해보지 않는가. 캠프 데이비드에 김정일을 초청하라. 북한 인권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고? 인권문제를 포함한 모든 시도가 실패하지 않았나. 실패한 방식을 반복해 말하지 말고, 새로운 시도를 말하자. 지엽적인 문제를 놓고 걱정을 하기보다는,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것, 그게 바로 강대국의 방식이다.

북한 문제에서 미국의 방식이 실패했음을 정보통 고위 관료 출신이 인정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신선하게 다가왔다. 동아시아 분단국 특파원이 워싱턴에서 좀체 들을 수 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포드는 다음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북·미 정상회담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당시 포드가 구상한 것과 달리 미국이 아닌, 북한의 제안으로 자리가 마련됐다. 세부사항에 코를 박기 일쑤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69)과 같은 똑똑한 관료들이 마련한 자리가 아니다. ‘보스들’이 먼저 제안을 주고받았다는 점에서 포드의 아이디어와 맥이 통한다. 작은 대학에 적을 두고 은퇴생활을 즐기는 그를 지난 14일 e메일과 전화로 호출한 까닭이다. 그의 생각을 가감없이 전한다.

 

위성이 촬영한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의 지난 5월14일 전경. 북한은 오는 23~25일 풍계리 핵실험장은 폐기한다면서 그 현장에 한국과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취재진의 취재를 허용했다. 로이터연합뉴스

- 10년 전 당신이 제안했던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게 됐다. 어떻게 보는가.

“김정은을 만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담한 결정이 외교관계 정상화를 포함해 북·미 간 새롭고 보다 긍정적인 관계로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한국과 일본 및 동아시아 주둔 미군에 대한 북한의 위협도 줄어들기를 바란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의 북한 경험은 그리 높은 기대를 갖게하지 않는다.”

- 비관적 전망의 근거는 무엇인가.

“김정은이 현존하는 핵무기들을 단번에 없애건, 점진적으로 없애건 나는 핵포기 가능성에 회의적이다.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추후 핵무기를 더 만들 수 있는 모든 수단들(미래핵)만 파괴하겠다고 주장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북한은 상당 시간 뒤, 미국이 북한에 위협적이지 않게 될 때까지 약간의 핵무기 또는 핵 억제력을 유지하기를 원할 수 있다. 반면에 트럼프 대통령은 완전한 비핵화에 못 미치는 것이라면 어떠한 것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두 가지 상반된 입장을 어떻게 맞출 수 있겠나.”

- 10년 전에 비해 북·미 회담에 뜨악해진 것 같다.

“(북한이 핵실험을 한 차례만 했던) 당시만 해도 나는 다단계 협상 과정을 통해 북한 핵 프로그램을 종식시키고, 미사일 개발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상황은 전혀 다르다. 북한은 핵무기와 함께 강력한 미사일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미국 쪽에서) 타협안을 도출할 사람들이 과거와 다른 기대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백악관에서 자동차로 4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대통령 주말별장 캠프 데이비드. 사진 백악관 홈페이지

- 무슨 말인가.

“가장 어려운 장애물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즉각적인 만족을 주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달성한 것을 확연하게 뛰어넘지 못하거나, 트럼프 대통령이 얼마 전 파기한 이란 핵합의보다 낫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김정은이 염두에 두고 있을 점진적인 과정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설득시키려면 사찰방식이 중요하다. 이란 핵합의보다 훨씬 더 마음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공격적인 사찰이어야 한다(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 대해 24시간 불시사찰을 요구했었다). 이러한 사찰 없이 대통령이 합의안에 서명할 리 만무하고, 북한이 이를 받아들일 리 만무하다. 비관의 근거들이다.”

- 볼턴 보좌관이 지난 주말 ABC 방송 및 CNN 방송 인터뷰를 통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는 물론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핵무기의 미국 이전, 모든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인권문제 등을 언급했다. 실제 정상회담에서 이러한 미국의 요구가 관철될 수 있을 것으로 보는가.

“북한은 모든 핵무기를 즉각 인도해야 한다. 미국은 또 중·장거리 미사일에 대한 최소한의 통제가 있어야만 합의안을 받아들일 것이다. 거기에 못 미치면 안된다고 본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정상회담에서 (생화학무기와 인권 등) 다른 문제들도 최소한 거론은 돼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볼턴은 지난 주말 자신이 말한 것들을 밀어붙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 정상회담에서는 볼턴의 의견보다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부 장관의 견해가 미국의 입장에 더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본다.”

첩보와 정보를 오랫동안 다룬 사람들은 이념과 정치적 입장을 뛰어넘어 객관적인 관점을 갖는 경향이 있다. 당위와 담론에 그치지 않고, 해결을 지향한다. 하지만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포드의 견해는 여느 미국 전직 관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까닭의 상당 부분은 미국의 ‘예외적인 리더십’에 있었다. 공화당 행정부에서 요직을 지냈으면서도 2008년 대선에서 그가 기다렸던 ‘새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 후보였다.

“정상회담의 실패는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예측불허의 성향을 갖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약속한 대로 회담장을 박차고 나온다면, 한국과 중국, 일본 및 세계는 미국보다 북한이 더 합리적이라고 판단하고, 현재의 대북 제재 체제를 흔들 수 있다. 이들 국가가 미국의 대북 군사행동 위협에 맞서 연합전선을 형성할 수도 있다.”

칼 포드 전 국무부 차관보

- 반대로 트럼프가 성공하면 노벨 평화상을 받게 될 수도 있다.

“나는 그게 두렵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자신이 어떻게 세계에 평화를 가져올 것인지 과장 선전하는 상황이 걱정된다. 그는 자신의 ‘성공’이 어떠한 피해를 수반할지는 외면한 채, 위대한 승리를 한 것처럼, 노벨 평화상을 받을 가치가 있는 것처럼 포장하는 데만 집중할 것이 분명하다.”

포드는 자타가 공히 인정하는 ‘볼턴 저격수’이다. 에둘러 가는 곡사포가 아니라 직사포를 쏜다. 2005년 볼턴이 유엔대사에 지명됐을 때 상원 인준청문회에 출석, “반유엔주의자가 유엔에 들어가서는 안된다”는 소신 발언을 내놓았다. 한때 상관으로 모셨던 볼턴을 두고 “윗사람에게 친절하고 아랫사람에게 냉담한(Kiss up, kick down) 사람”이라며, 그를 끝내 낙마시키는 데 한몫을 단단히 했다. 그런 포드조차 북한의 비핵화에 대해서는 볼턴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각을 갖고 있다. 볼턴의 문제는 너무 솔직했던 것뿐이었을까. 

북한 역시 미국의 희망사항을 모르지 않을 터, 지난 주말 볼턴의 미국 언론 인터뷰를 들어 “우리를 구석으로 몰고가 일방적인 핵포기만을 강요하려든다면 그러한 대화에 더는 흥미를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 까닭은 무엇일까. 과연 ‘완전한 비핵화’의 근본적 결정을 아직 머뭇거리는 것일까. 미국 역시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를 비롯한 근본적인 변화를 미룬 채 북한의 비핵화라는 과실만 따려는 것일까. ‘진실의 순간’까지 확인할 길이 없는 의문들이다.

볼턴은 16일(현지시간) “정상회담의 목적은 CVID”(폭스뉴스 라디오 인터뷰)라고 거듭 강조하며 일단 꼬리를 내렸다. 북한에 대한 평가와 북한 핵문제 해결 전망에 대한 포드의 생각은 변한 게 분명하다. 하지만 북·미 정상의 만남에서 “의제를 최소화하고 큰 그림을 그리라”는 그의 제안은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세부사항이 아닌 큰 아이디어에서 변화의 단초가 마련된다. 북·미 정상 간의 ‘케미’가 전혀 새로운 결과물을 도출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백악관은 비핵화 해법과 관련해 “정해진 틀은 없다”면서 볼턴이 주장한 리비아식 해법이 아닌, ‘트럼프 대통령의 모델’이 있을 뿐이라면서 여지를 남겨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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