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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오늘

'친애하는 위원장(Mr. Chairman)'에게 미국이 바라는 건 과연 무엇인가

by gino's 2018. 6. 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8일 버지니아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열린 현충일 기념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워싱턴/로이터연합뉴스


ㆍ정치 성과·실질 진전 사이 ‘잠 못 드는 김정은·트럼프’

■ 역대 미국 대통령의 대북 친서에 담긴 의도는?

‘친애하는 위원장 선생(Dear Mr. Chairman)’

역대 미국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에게 보낸 친서의 첫 문구다. 분단과 한국전쟁, 냉전시기를 거치던 오랜 세월 동안 미국 대통령이 북한 지도자에게 친서를 보낸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북한을 대화 상대로조차 간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1990년대 북핵 위기가 돌출한 뒤에나 북한과 공식 대화를 시작했다. 전문이 공개된 것은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의 취소 의사를 밝혔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가 유일하다.

나머지는 모두 백악관 또는 국무부 당국자들이 우회적으로 내용의 일단을 공개한 것이 전부였다. 북한의 핵개발 정도 및 대화 참여 의사, 해결 전망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었지만 미국 대통령들의 대북 친서에는 결국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 또는 대결에서 관철해내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빌 클린턴 대통령은 2000년 12월22일 친서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워싱턴에 초청했다. 임기 종료 한 달을 앞둔 상황임을 생각하면 사실상 마음만 담은 제안이었다. 클린턴 대통령은 친서에서 “우리 둘이 만나면 (관계 개선) 문제 해결이 가능하므로 김 위원장이 워싱턴을 방문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친서는 국무부가 뉴욕의 북한대표부에 전달했으며, 북한은 이틀 뒤 “관심이 없다”는 내용의 서한을 전했다. 에번스 리비어 당시 주한 미국대리대사가 우리 정부에 알린 내용이다. 1994, 1996년 선거에서 모두 공화당이 상·하원 주도권을 잡으면서 제네바 합의에서 약속했던 관계 정상화를 사실상 포기한 상태였다. 클린턴의 친서는 자신이 계획했던 방북 대신 김 위원장의 방미를 희망했지만, 말 그대로 희망사항으로 끝났다.



취임과 동시에 ‘ABC(클린턴 행정부의 모든 정책과 조치를 부인)’를 대단한 신념인 양 들고 나왔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김정일 위원장은 ‘폭군’이자 ‘피그미’였다. ‘식탁의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이기도 했다. 하지만 2007년 12월1일자 친서는 ‘의장(Mr. Chairman)’으로 시작해 ‘충심으로(Sincerely)’로 끝났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가 베이징에서 북측에 전달한 친서는 북핵문제와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을 담았다. 북한이 그동안 제조한 핵탄두 숫자와 무기급 핵물질의 분량, 시리아를 비롯해 나라 밖으로 핵물질을 이전했는지 등 3대 이슈를 해결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6자회담 9·19공동성명(2005년), 2·13합의(2007년), 10·3합의(2008년)를 도출하며 진행되던 북핵 해결 과정은 2008년 말 검증 문제를 둘러싼 북·미 간 이견으로 오랜 동면기에 돌입했다.

공개된 트럼프 친서 ‘협상 카드’
CVID와 CVIG로 의제 좁아져
북·미 정상회담 가시적 성과 땐
김정은 위원장 워싱턴으로 초청
클린턴 수준 친서 나올 가능성

내용 잘 안 알려진 역대 친서
때론 대화 때론 대결 의도 담겨
관계 정상화는 희망사항 그쳐

클린턴→부시→오바마로 내려오면서 대북 친서의 수준과 내용은 북·미관계만큼이나 하향 일변도였다. 클린턴이 핵문제를 잠정적으로 아퀴 짓고 관계 정상화를 시도하던 시점에 친서를 썼다면, 부시는 북핵 해결 국면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썼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는 이도저도 아니었다. 국무부는 친서의 내용에 대해 북한의 6자회담 복귀를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만 설명했다. 스티븐 보스워스 대북특사가 친서를 들고 방북했지만 김 위원장과의 면담도 없었다. 2009년 12월9일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에게 전달했다.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하기 전에는 어떤 협상도 하지 않겠다는, 전략적이지 못한 그의 대화 제안을 북한이 받아들일 리 만무였다. 임기 중 4번의 북핵 실험(2~5차)을 대책없이 지켜본 오바마다운 친서의 수준이었다. 공교롭게 3통의 친서는 모두 12월에 전달됐다. 그사이 대통령 3명의 임기를 기준으로 24년이 훌쩍 지났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맨앞) 일행이 지난 31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해 비행기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9년만에 방북한 라브로프 장관은 이날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회담을 가졌다. 러시아는 일각에서 논의되는 북한 핵탄두의 미국 반입에 반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평양/AP 연합뉴스 


■CVI‘D’와 CVI‘G’로 좁혀진 양대 의제

지난달 24일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는 적어도 형식과 내용에서는 지금까지의 친서와 DNA가 달랐다. 부박한 수준의 메모에 불과하다는 혹평을 받다가,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취소 의사를 번복하면서 고도의 협상술로도 해석됐다. 북핵문제 해결과 관련해 아무런 요구도, 내용도 없이 감정적인 표현만 있었다. 친서에 담기지 않은 구체적인 현안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상당 부분 ‘리비아 모델’을 운운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입에서 나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북한의 공식적인 반발에 백악관이 리비아 모델을 부인하는 해프닝을 벌였지만 미국 입장의 골격이 담겼다는 것이다. 특히 볼턴 보좌관은 지난달 13일 ABC방송 인터뷰에서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 비핵화(CVID)’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모든 핵무기의 미국 이전, 모든 대량살상무기(WMD) 및 모든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은 물론 인권문제까지 언급했다. 볼턴이 대번에 너무 나간 것은 맞지만 대체로 트럼프의 생각과 일치할 것이라는 관측을 낳고 있다. 물론 현실성을 띠려면 많이 다듬어야 한다. 북한과 미국은 정상회담 취소와 번복 과정을 거치면서 비핵화와 체제안전 보장의 양대 의제로 가지치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7일과 30일 통일각에서 열렸던 북·미 실무협상에 이어 30일부터 뉴욕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노동당 대남담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간의 논의도 성격은 같을 것이다. 북·미관계에서도 새로운 것은 없다. 회담 성사까지는 전혀 새로운 길을 걸어온 게 맞다. 하지만 현안으로 좁혀 들어가면 바로 클린턴이 하지 못한 북·미관계 정상화와 부시가 하지 못한 비핵화의 결론을 추구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통일각 실무혐상에서 미국 팀을 이끌었던 성 김 필리핀 주재 미국대사는 국무부 한국과장 시절이던 2008년 6월 북한으로부터 1만8000쪽에 달하는 핵문서를 받은 뒤 판문점을 통해 입경한 주인공이다. 1986년 이후 북한의 폐연료봉 재처리작업 및 실험용 원자로 가동일지, 영변의 핵시설 목록 등이었다. 당시만 해도 6자회담에서 합의한 영변 핵시설 불능화 11개 조치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중간 대가로 미국은 북한에 대해 적성국무역법 적용을 중단하고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했다. 이후 북한은 5차례의 핵실험을 더 진행했고, ICBM 능력을 거의 획득했다. 김 대사가 유경험자이자 전문가라고는 하지만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이 커진 북핵문제를 단 몇차례의 실무협상으로 정리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각국의 많은 전문가들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거둘 수 있는 최대치를 양국 지도자의 의지를 공표하는 원칙적 합의에 두고 있는 까닭이다. 영변 핵시설을 두 차례(2004, 2010년) 방문했던 지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대 교수(전 로스알라모스 무기연구소장)는 북핵 해체에 15년이 소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정치적 수요에서라도 가시적인 성과가 필요한 트럼프로서는 일종의 ‘조기 수확(early harvest)’을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


미국을 방문한 김영철 북한 통전부장(오른쪽)이 지난 30일 뉴욕의 한 호텔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만찬을 든 마친 뒤 자동차로 걸어가고 있다. 뉴욕/AP연합뉴스

■시각적·정치적 성과와 실질적 진전 사이의 접점 찾기

‘보기 좋은 성과’의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볼턴이 언급한 북한 핵무기의 국외 반출이다. 미국 랜드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연구원도 지난 4월 서울에서 열린 아산 플래넘에서 북한이 초기 신뢰구축 조치의 하나로 보유 핵탄두의 10% 정도(5개)를 프랑스에 넘기는 방식을 제안한 바 있다. 하지만 볼턴의 말대로 미국으로 옮기는 것은 러시아를 비롯한 다른 핵보유국들의 반발을 야기할 소지가 다분하다. ‘샘-넌 프로그램’에 의해 우크라이나에서 반출한 핵무기는 모두 원천기술국인 러시아로 귀속됐다. 리비아의 우라늄 농축 장비가 미국 테네시주 오크리지에 옮겨진 것은 맞다.

하지만 핵탄두는커녕 알루미늄 파이프에 불과했다. 헤커 박사는 지난달 28일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CISC) 홈페이지에 발표한 ‘북한 비핵화의 기술적인 로드맵’ 보고서에서 “북한의 위협적인 핵 무기고와 거대한 핵시설로 보아 핵무기를 나라 밖으로 이전하는 것은 순진하고도 위험한 발상”이라고 못을 박았다. 헤커는 “북한 핵무기는 (북한 내에서) 조립한 사람들 손으로 해체해야 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 경우 미국·러시아·중국·영국·프랑스 등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P5)이 해체작업에 공동 입회하는 것(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이 방법이 될 수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28일 미시건주 워싱턴 타운십에서 열린 유세연설 도중 지지자들이 북한 핵문제 해결에서 보여준 노력이 노벨평화상을 받기에 충분하다는 의미로 “노벨, 노벨”을 연호하자 연설을 중단하고 웃음을 짓고 있다. 퓨리서치센터의 4월말 5월초 미국 내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1%가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지지했다.  /폭스뉴스화면캡처


북핵문제 해결과 북한의 체제안전 보장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북한의 비핵화는 볼턴이, 북한이 요구하는 체제안전 보장은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각각 역할을 맡은 듯하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달 24일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북한이 CVID를 한다면 미국은 북한에 CVIG(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체제 보장)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비핵화의 경우 단계 또는 항목마다 이뤄질 신고-사찰-검증의 참고 사례가 있지만, 체제안전 보장은 역사적 전례도, 입증된 과학적인 방법도 없다. 그나마 폼페이오가 상원에서 밝힌 대로 북한과의 합의를 조약화한다면 다소간의 내구성을 확보할 수 있을 뿐이다.

어떤 경우에도 외교는 내치의 연장이다. 그중 정치적 성과를 더욱 필요로 하는 쪽은 성공한 포퓰리스트일 확률이 높다. 정치적 선전효과가 있는 성과와 실질적인 진전 사이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는 것. 열흘 남짓 남은 싱가포르 대좌를 앞두고 북·미의 고민이 머무르는 지점일 것이다. 회담이 성공한다면 보다 나은, 최소한 김정은 위원장을 워싱턴에 초청하는 클린턴 수준의 친서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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