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예루살렘으로!”
예루살렘이 새로운 성지로 떠오르고 있다. 기독교 순례자들이 찾는다는 말이 아니다. 전 세계 내로라하는 극우 포퓰리즘 지도자들의 성지가 되고 있다. 지난 2월19일 헝가리·체코·슬로바키아 등 중부유럽 3개국 정상들이 함께 예루살렘을 찾았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와 안드레이 바비스 체코 총리, 피터 펠레그리니 슬로바키아 총리. 하나같이 반이민, 민족주의를 내세워 대권을 거머쥔 포퓰리스트들이다. 이들은 각각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예루살렘에 ‘외교 사무실’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폴란드 총리가 막판에 방문을 취소해 당초 중부유럽 4개국의 연합기구인 비제그라드 그룹(V4) 정상회담을 가지려는 계획은 축소됐다. 성사됐으면 1991년 창설된 V4의 첫 유럽 밖 정상회담이 될 수 있었다. V4 정상들뿐이 아니다. 아시아 포퓰리즘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이미 작년에 다녀갔다. 작년 11월 대선에서 깜짝 당선된 자이르 보우소나루 브라질 대통령은 이달 31일 순례 행렬에 동참한다.
외교도 거래다. 체코·헝가리·루마니아는 최근 미국의 예루살렘 대사관 이전을 비난하는 유럽연합(EU)의 성명 채택을 저지했다. 극우 포퓰리스트들이 네타냐후 총리의 본거지로 몰려가는 현상은 좌파 지식인들이 1960~1970년대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를 동경했던 것을 연상시킨다. (불가리아 사회학자 이반 크라스테예프)
포퓰리즘은 ‘정체성의 정치’를 지향한다. 유럽의 경우 반이민·민족주의·기독교가 정체성의 축이다. 포퓰리즘이 기승을 부리면서 반무슬림 정서만 심화된 것이 아니다. 유럽의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 역시 동반상승하고 있다. 대표적 인물이 오르반 총리다. 그는 지난해 압승을 거둔 4월 총선 유세 중 헝가리 출신 미국인 투자자 조지 소로스를 ‘국가의 적’으로 지목했다. 시오니즘(유대인 국가) 음모론을 흘리며 소로스의 대학 설립 계획을 불허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헝가리 지도자로 홀로코스트를 방조했던 미클로스 호르티를 공개적으로 칭송하기도 했다. 당연히 헝가리 유대인들의 적이다. 그런 그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 다시 이스라엘을 찾았다.
극우 포퓰리즘의 또 다른 특성은 역사에서 증오와 원한의 소재를 기막히게 찾아낸다는 점이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 분야의 선두주자다. 그는 V4 예루살렘 정상회의 전 주에 하필 바르샤바 방문에 나서면서 폴란드인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지난 14일 바르샤바 중동평화안보회의 연설에서 “폴란드인들은 나치에 부역했다”는 말을 내놓은 것이다. 네타냐후는 “(일부) 폴란드인들(Poles)을 지칭했을 뿐 폴란드 국민(The Polish)을 뜻한 게 아니다”라고 해명했지만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지 못했다. 모라비에츠키 총리는 겉으론 분노하면서도 외교장관을 대신 이스라엘에 보내는 ‘성의’를 보였다. 오르반과 모라비에츠키의 경우는 각각 역사에서 상대에 대한 증오의 재료를 캐내면서도 현실에선 생뚱맞게 가깝게 지내는 포퓰리스트들의 아이러니를 극명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네타냐후는 오르반을 “이스라엘의 진정한 친구”라고 치켜세운다.
법과 절차를 무시하고 마약 범죄 용의자들을 살해해 온 두테르테 대통령은 자신을 아돌프 히틀러에 빗대면서 “300만 마약 중독자들을 기꺼이 학살하겠다”고 말해 유대인들의 홀로코스트 감수성을 건드렸다. 하지만 그 역시 네타냐후의 절친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마음속으론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면서 카메라 앞에만 서면 “좋은 친구”라면서 활짝 웃는 모순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정치인이란 원래 그렇다는 일반론으론 납득이 안된다. 그 답의 일단은 엉뚱하게 지난해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무슬림 여성 최초로 하원의원에 당선된 일한 오마르(민주, 미네소타)가 내놓았다.
오마르 의원은 지난 2월 트위터 메시지에서 이스라엘을 옹호하는 미국 정치인들을 언급하면서 “모두가 벤자민의 아기들”이라고 썼다. ‘벤자민’은 벤자민 프랭클린이 그려진 100달러 지폐를 말한 것이다. 미국 내 최대 로비단체인 미국·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가 미국 정치인들의 이스라엘 지지를 끌어낸다는 말끝에 ‘금기’를 건드렸다. 당연히 ‘벤자민’에 눈이 멀어 이스라엘 역성을 드는 정치인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그중 가장 크게 반발한 사람이 유대인 정치자금을 가장 많이 받는 정치인일 터, 바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마르에게 “하원의원에서 사퇴하라”며 발끈했다. 오마르는 억지 사과를 하면서도 “유대인의 동맹들과 동료들이 고통스러운 역사를 알려주었다”며 말속에 ‘뼈’를 넣었다.
포퓰리스트들의 드문 미덕 중의 하나는 끊임없이 서로를 밀어주고 당겨주며 공생을 도모한다는 점이다. 국경을 넘는 연대는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이 입증하듯 본래 좌파의 전유물이었다. 작금의 세계에서는 그러나 ‘극우 포퓰리즘 인터내셔널’이 확산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25일 이스라엘이 1967년 중동전 이후 불법 강점하고 있는 골란고원은 이스라엘 영토라고 확인하는 포고령을 발표했다. 이스라엘 총선을 불과 보름 앞두고 워싱턴을 방문한 네타냐후와 자신의 유대인 사위이자 중동정책의 설계자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이 나란히 지켜보는 가운데 집무실 책상에서 서명을 했다. “우리는 말보다 더 중요한 행동으로 반유대주의라는 독(poison)에 맞설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누가 봐도 총선을 앞둔 네타냐후를 지원하기 위한 간접유세였다. 유럽연합(EU)을 필두로 세계는 트럼프의 돌출 행동에 또 한번 경악했다. 골란고원과 요르단강 서안, 동예루살렘 등 이스라엘의 점령지는 중동 문제 해결의 열쇠였다. 지난 수십년 동안 겉돌고 있을지언정 이스라엘이 점령지를 내놓고 그 대신 중동평화를 조성하자는, 영토와 평화의 맞교환(Land for Peace) 원칙은 국제사회가 품어온 희망의 끈이기도 했다. 시리아의 부자(父子) 대통령 바샤르는 대를 이어 이스라엘을 상대로 골란고원의 반환을 요구해왔다.
트럼프는 지난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공식 인정한 데 이어 이번엔 골란고원이 이스라엘 영토라고 확인한 것이다. 수년간 이슬람국가(IS)에 시달려온 시리아는 골란고원 문제에 적극 나설 여유가 없다. 겉으론 반발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중동의 수니파 국가들은 트럼프 행정부 들어 미국·이스라엘 진영에 올라탄 지 오래다. 공동의 적, 이란에 맞선다는 이유에서다. 중동은 다시 한번 흔들린다.
트럼프의 내년 대선과 네타냐후의 다음달 총선을 잇는 공생의 동아줄 역시 ‘벤자민’이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이를 정확히 짚었다. 그는 “(트럼프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유대인 큰손 셸던 애덜슨으로부터 더 많은 정치자금을 받으려는 욕심에서 한 결정일 뿐 어떠한 전략적 고려도 없었다”고 못박았다. 애덜슨 샌즈그룹 회장은 미국 내 최대 정치자금 후원자다. 2016년 대선 뒤 트럼프 취임위원회에만 500만달러를 쾌척했고, 트럼프 대선 캠프에도 거금을 지원했다. 재선 자금에 쫓기는 트럼프에겐 애덜슨의 지갑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국을 방문했던 네타냐후는 골란고원 폭력사태 탓에 급거 귀국한 뒤 텔아비브에서 위성 생중계로 AIPAC 연차총회 연설을 했다. 그는 연설에서 “미국민 대다수가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것은 우리의 돈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가치를 공유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벤자민(Benjamins)’에서 's'자만 뻬면 네타냐후의 이름인 ‘베냐민(Benjamin)’이 된다. 로이터 통신은 네타냐후의 말을 빗대 "벤자민이 아니라 베냐민"이라고 풍자했다. 뒤가 구린 정치인일수록 조국과 민족을 들먹인다. 이스라엘 검찰은 지난 2월28일 “뇌물수수와 불법거래 등 3가지 부패 혐의로 네타냐후 총리를 기소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총선에서 낙선하면 철창에 갈 처지다. 선거 직전의 악재에 네타냐후가 꺼내든 카드는 13년간 총리에 있으면서 탄탄히 기반을 다져온 유대 민족주의와 안보다. 네타냐후와 그의 리쿠드당은 이미 지난해 7월 크네셋(의회)에서 ‘이스라엘은 유대인 국가’라는 점을 명시한 기본법을 통과시킨 바 있다. 안보 역시 이스라엘 극우엔 전가의 보도다. 가자지구의 이슬람저항운동(하마스)와 저항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 및 이란 탓에 조국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렸다는 논리다.
각국의 극우 포퓰리스트들이 예루살렘을 찾는 것은 현실 정치적 필요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의 투자를 끌어들여 자국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목적과 트럼프 행정부를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네타냐후를 매개로 트럼프에게 다가가려 의도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모로코 태생의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로 설명한다. 그는 르몽드와의 인터뷰에서 네타냐후의 이스라엘이야말로 ‘포퓰리즘의 실험실’이기 때문이라면서 각국 포퓰리스트들 간에 가치의 동맹이 형성되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이슬람 이민자 탓에 종교와 인종으로 구성된 국가 정체성이 위험해졌다는 게 유럽 극우 포퓰리즘 지도자들의 주장이다. 국내외 아랍인에게 둘러싸여 살아가면서도 종교·인종의 정체성을 지켜내고 있는 ‘이스라엘 모델’은 그들에게 모범사례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본인들이 반유대주의자인지는 서로에게 중요치 않다. 돈과 표만 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는 것이 포퓰리즘 지도자들의 정치적 셈법이다. 여기에 반무슬림, 반이민의 가치까지 공유한다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스라엘은 결국 네타냐후의 주장처럼 ‘유대인만의 국가’로 남을 것인가, 팔레스타인 주민을 포함한 민주주의 국가로 남을 것인가. ‘Mr. 안보’ 네타냐후의 운명 보다는 예루살렘이 계속 포퓰리즘의 대본영으로 남을 것인가. 다음달 9일 이스라엘 총선에 걸린 세계의 관심이다. 이스라엘은 과연 ‘유대인 만의 국가’로 남을 것인가, 팔레스타인 주민을 포함한 민주주의 국가로 남을 것인가. 또 예루살렘이 계속 포퓰리즘의 대본영으로 남을 것인가. ‘Mr. 안보’ 네타냐후의 운명 따위는 잊어도 된다. 다음달 9일 이스라엘 총선에 걸린 세계의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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