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정부는 만 26세 미만 청년취업자를 2년 내 무단해고할 수 있게 한 CPE를 지난 10일 철회했다. 이번 사태를 평가해달라.
“노동의 유연성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하지만 아직 그 누구도 이를 입증하지 못했다. (취업 희망자의) 자질향상과 경제성장만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CPE는 청년들에게 불안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조건을 정해놓았을 뿐 근본적인 문제 해결책이 아니었다. 프랑스가 직면하고 있는 진정한 문제는 고용계약이 아니라 교육(직업훈련)과 경제성장의 문제다.”
-프랑스 ‘삶의 질’ 유럽 1위-
-영·미 언론은 CPE 철회를 두고 프랑스의 개혁이 뒷걸음질을 쳤다고 평가했는데….
“잠깐, 프랑스의 세계화는 아주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여전히 세계 4위의 경제력을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청년실업 문제를 안고 있는 건 사실이다. 프랑스는 아직 청년층 일부를 적절한 교육 메커니즘 안에 넣지 못하고 있다. 근본적인 해법은 청년들 스스로가 자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거다. 나는 이러한 노력이 사회적으로 유용한 활동이라고 믿으며 그에 따른 경제적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을 해야만 봉급을 준다는 고정개념을 깨자는 거다. 열심히 일자리를 찾는 것 역시 노동이다. 혁명적인 발상의 전환일 수도 있지만 실업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고 열심히 구직노력을 기울이고 스스로 자질을 향상하는 사람에게는 봉급을 줘야 한다. 그렇다고 실업자들을 (국가가 봉급을 주는)공무원으로 만들자는 게 아니다. 일과 봉급을 분리하자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 등 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는 앵글로 색슨 국가들은 일자리의 안정을 제공하는 ‘프랑스 모델’이 세계화시대 경쟁력이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세계화를 앵글로 색슨 국가들이 주도한다는 것은 정확한 말이 아니다. 세계화는 세계 모든 나라들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사실 프랑스는 세계화의 핵심적인 국가이다. 국내총생산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율이나 해외에서 활동하는 프랑스 국민의 숫자는 물론, 외국의 아이디어를 수용하는 정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다국적)기업의 숫자 등이 이를 입증한다. 세계화를 한다고 일자리를 위태롭게 해야 하는 건 결코 아니다. 세계화는 그보다 기술혁신과 경쟁력, 프로젝트의 성격에서 진행된다. 르노와 프랑스전기(EDF), 루이뷔통, 에르메스, 다농과 같은 기업들이 성공한 것은 일자리를 위태롭게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하지만 많은 프랑스 젊은이들이 국내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외국에서 일자리를 찾고 있지 않나.
“아니다. 프랑스건 다른 나라건 세계의 모든 젊은이들은 모험을 하고 싶어한다. 그들이 프랑스에서 이민을 떠나려는 것도 아니다. 모험을 즐기고 다른 곳에서 살아보려는 의지가 있을 뿐이다. 외국에 간 젊은이들은 프랑스 사회와 프랑스 기업에도 좋다. 일종의 중계기지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프랑스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를 위해서 떠나는 것이다.”
-세계화 많은 사회문제 초래-
-당신이 강조하는 ‘디지털 노마드’와 같은 성격인가.
“그렇다. 어느 사회나 갈수록 유목민화하고 있다. 사람들이 국내에서건, 해외에서건 갈수록 더 움직이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과 경제적 보상을 분리하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된다면 노마디즘(유목생활)은 훨씬 더 쉬워질 것이며, 훨씬 더 잘 보호받을 수 있을 것이다. 수입은 정주민처럼 안정적이되 활동은 유목민처럼 유동적이어야 한다.”
-반 CPE시위는 세계화의 폐단을 들춰낸 계기로 볼 수 있나.
“그렇지 않다. 유럽 사회는 유럽 모델을 보호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다. 자랑스럽게 여기기 때문이다. 영국인과 미국인은 우리에게 반면교사가 되고 있다. 프랑스인 가운데 영국에 집을 사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영국인 수십만명이 프랑스에 집을 사고 있다. 프랑스에 사는 것이 영국에 사는 것보다 좋다는 것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프랑스는 삶의 질과 평균수명, 사회기간시설에서 유럽 1위다. 세계적으로도 그럴 것이다. 프랑스 사회모델은 균형의 모델이다. 사회기간시설과 경제적 이니셔티브가 앵글로 색슨 모델보다 훨씬 균형적이다. 프랑스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과 가장 많은 해외직접투자를 유치하는 나라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평균수명은 매년 3개월씩 늘어나고 있다. 어느 나라가 그런가.”
“청년실업 문제는 대학교육에 훨씬 더 많은 투자를 하기 전에는 해결될 수 없다. 덴마크 모델은 좋은 모델이다. 바로 내가 제안한 것의 극히 일부를 실행하고 있다. 덴마크는 구직활동을 하는 사람에게 취직한 사람처럼 경제적 보상을 주고, 구직자들을 직업훈련장으로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그런 방향으로 더 나가야 한다. 나는 이를 ‘삶과의 계약(CV)’이라고 부른다. 고용계약(CT)을 맺고 일을 하지 않더라도 활동적인 삶을 영위하는 사람에게도 일정 기간 봉급을 줘야 한다.”
-사회보장·부의 재분배 긴요-
-세계화는 기업 인수·합병에서 여실히 드러나듯이 봉급생활자를 제물로 주주와 기업주의 배만 불리는 것 같다.
“시장에는 시민과 소비자, 주주, 봉급생활자라는 4개의 행위자가 있다. 작금의 세계화는 시민·봉급생활자에 맞선 소비자·주주들의 동맹에 승리를 안겨줬다. 소비자와 주주의 동맹은 극단적인 불평등을 낳고 있다. 수입은 갈수록 주주와 (CEO처럼) 주주에 의존하는 몇몇 봉급생활자에게 집중되고 있다. 제품 가격이 낮아지면 소비자는 이득을 본다. 하지만 가격이 너무 떨어지면 기업들은 공장을 해외로 옮길 것이고 결국 소비자 역시 실업자로 전락하면서 손해를 본다.”
-세계화가 지금처럼 계속 진행된다면 어떻게 적응해야 하나.
“세계화는 너무도 많은 사회 문제를 초래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처럼 계속될 수 없을 것이다. 세계화는 세계 시장과 세계 민주주의가 동시에 병립할 때에만 계속될 수 있다. 시장에 걸맞은 민주주의가 없는 상황에서 시장이 올바르게 작동하는 것은 본적이 없다. 민주주의는 늘 국가적이지만 시장은 갈수록 세계화한다. 민주주의도 세계화가 돼야 세계화는 지속될 수 있다. 민주주의가 세계화되려면 부의 재분배와 세계 차원의 과세, 세계정부가 있어야 한다. 사실 민주주의가 세계화되면 시장의 세계화는 중단되지 않겠나. 부의 재분배와 사회보장이 이행되기 전에는 지금의 세계화에 적응할 수 없을 것이다. 유럽(연합)에서는 그나마 사회보장이 존재하지만 선진국 개별 국가 차원 또는 국제적인 차원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구촌 차원에서 사회보장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는다면 세계화는 지금처럼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청년들의 투쟁 자랑스러워-
-청년실업은 세계적인 문제인데 왜 유독 프랑스에서만 저항이 심한가.
“프랑스 청년들은 ‘공화국의 가치’를 다른 나라 청년들보다 훨씬 더 존중하고 있다. 그들은 꿈을 갖고 있다. 자신들을(자신들의 일자리를) 위태롭게 하는 모델에 굴종하지 않겠다는 꿈이다. 그들은 앞으로도 경제적 필요에 부합하는 꿈을 꿀 것이다. 이런 점에서 아방가르드(전위)에서 전투를 수행한 프랑스 젊은이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들은 아방아리에르(후위)에서 싸운 게 아니다. 프랑스처럼 부유한 사회에서 분명히 실현가능한 사회모델을 지키기 위해서 싸운 것이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일부 유럽국가에서는 좌·우파를 가리지 않고 정치적 리더십이 위기에 처한 것 같다. 프랑스에서도 정치적 위기가 초래되지 않겠는가.
“정치적 위기는 없다. 민주주의에 대한 토론이 있을 뿐이다. 내년의 프랑스 대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며칠만 지나면 CPE 이야기는 완전히 잊혀질 것이다. 그게 전부다. 프랑스에서 중요한 문제는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정치가 민주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화는 국가를 약화시켰다. 국가에 맞서는 시장의 지배력을 강화해왔기 때문이다. 리더십의 위기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위기다. 자기가 몸담고 일할만한 국가가 없는 상황에서 리더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시장은 세계화하는데 민주주의는 지역화에 머물면서 정치 지도자들이 동원할 수 있는 도구들이 줄어들었다.”
-마지막으로 이번 사태를 1968년 학생혁명과 비교해달라.
“68혁명이 사회모델에 대한 시위였다면, 이번엔 실업에 대한 시위였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 대학에서 제공되는 교육이 불충분하다는 데 대한 시위였다. 이 문제는 유럽에서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김진호기자 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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