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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ees

에드윈 플레넬 르몽드 편집국장-독립언론

by gino's 2012. 2. 23.
신문사 편집국장이 바쁘기는 프랑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 인터뷰를 위해 그의 비서와 주고받은 전화와 팩스만 30여회가 된다. 편집국장은 육체적 정신적 격무에 시달려야하는 자리다. 해서 취임 1~2년만 되도 지치기 쉽다. 플레넬은 그러나 1996년부터 2010년까지 8년간 살인적인 격무를 견뎠다. 2009년에는 메디시 문학상 수필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상하게 당시 르몽드 사진기자가 보내준 멋진 인터뷰 사진을 찾을 수 없다.


“정론은 모든 권력으로부터의 자유”

-‘르몽드’플레넬 편집국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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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이 창간되기 2년 전인 1944년 지구 반대편의 프랑스 파리에서는 ‘관제 신문’이 하나 탄생했다. 드골 장군이 창간을 주도한 르몽드(Le Monde)였다. 그러나 르몽드는 곧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다. 본지 창간 54돌을 맞아 ‘앞선 독립언론’ 르몽드의 에드위 플레넬 편집국장으로부터 신문 만드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e메일과 전화로 진행된 인터뷰의 주제는 ‘세계화시대, 독립언론의 역할’이었다. /편집자

-르몽드는 창간 이듬해에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을 표방한 이후 ‘프랑스 국민의 자존심’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어떻게 독립언론의 위상을 지켜왔습니까.

“르몽드 기자들의 독립언론에 대한 열망은 단순한 생각에서 비롯됐습니다. 즉, 신문은 상업적인 목적에서 거래되는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는 것이었지요. 정직하고 믿을 만한 정보는 엄격한 품질관리에서 나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합니다. 특별한 보상은 없지만 또 하나의 가치가 필요합니다. 바로 독립성입니다. 르몽드는 종사자들에게 독립성을 보장합니다. 그들은 신문의 주주이자 책임자 선발의 최종 결정권을 갖고 있습니다. 신문의 독립성은 독자들에게 신뢰감을 줍니다. 독립언론은 정치·경제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습니다. 지식인들의 은밀한 영향력도 배제합니다. 그러나 독립언론은 명분에 걸맞은 자세를 견지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감을 동반합니다”

-르몽드에서는 회장과 편집국장을 어떻게 선출합니까. 또 정치·종교 권력이나 상업자본에 예속된 다른 신문들과는 선출과정에서 어떤 차별성을 갖고 있습니까.

“94년부터 회장을 맡고 있는 장 마리 콜롱바니는 사내 감사위원회에서 선출됐습니다. 그러나 다수의 위원이 찬성한다고 해도 기자 위원들이 거부할 경우에는 회장에 선출될 수 없습니다. 14명의 감사위원 중 편집진이 선출한 위원들은 거부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편집국장은 르몽드내 다른 국장들과 마찬가지로 회장이 임명하지만 이 경우에도 편집국의 컨센선스(합의)가 반드시 고려됩니다”

-르몽드는 정치적 중립을 고수함으로써 좌파와 우파 정치인들에게 모두 껄끄러운 신문이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세계화와 유럽통합 등의 문제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르몽드가 추구하는 절대가치는 무엇입니까.

“르몽드는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종종 명확하고 단호한 입장을 표명합니다. 유럽통합과 국제사법의 당위성, 프랑스 정부의 부패와의 전쟁 등에 대해서는 명백하게 찬성하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반대로 극단적인 자유주의와 운동선수들의 약물복용 문제 등은 분명히 반대합니다. 르몽드는 휴머니즘과 보편주의를 추구합니다. 우리 신문의 제호는 ‘르 몽드(Le Monde·세계)’이지 ‘라 나시옹(La Nation·국가)’이 아닙니다. 르몽드는 프랑스라는 한 국가의 관점보다는 우리가 굳게 믿는 휴머니즘과 전적인 상호의존성을 갖는 보편적 관점을 견지합니다. 하지만 정보를 취급하는 것과 신문의 가치판단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신문의 첫번째 책무는 독자들에게 다양하고 복잡하며, 다원적이고, 상호모순되기도 하는 모든 정보를 전하는 것입니다. 독자들이 자기 의견을 갖도록 돕는 것이지요. 르몽드는 자체 노선에 따라 정보를 왜곡하지 않습니다. 신념은 사설로만 표현합니다”

-창간 이후 여러차례 재정상의 위기를 겪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본과 독자, 신문의 이상(理想)간 삼각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습니까.

“94년 르몽드는 거의 파산신고를 할 뻔했습니다. 하지만 지면개편을 통해 위기에서 벗어났습니다. 신문의 부(富)의 원천은 독자들입니다. 기업들은 광고를 통해 신문의 독립을 도와주지만 편집에는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전투와도 같습니다. 하지만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이는 기업들은 은밀한 이해관계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는 정론이야 말로 자신들에게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공공지원금을 받는 프랑스 언론과 달리 한국 신문들은 광고수익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80년대까지 언론에 재갈을 물리던 정치권력의 역할을 상업자본이 대신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한국은 특히 97년 말에 터진 IMF 관리체제 이후 시장논리로 모든 가치를 통합하는 세계화의 한가운데 있습니다. 르몽드는 세계화의 파고(波高)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습니까.

“세계화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세계화는 국가간의 거리를 좁히고 의사를 소통케 하여 민주주의적인 가치를 심화시키기도 합니다. 문제는 방법론에 있습니다. 미국의 압도적인 힘의 무게와 국가간 또는 각국내 불평등의 심화, 국가와 다국적기업간 권력 균형의 파괴 등 부작용이 있습니다. 세계화 자체에 저항하며 싸워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재 진행중인 세계화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 싸워야만 합니다. 미국과 견줄 만한 대항세력을 만들어야 합니다. 르몽드는 유럽의 정치통합과 유엔의 권위 강화를 지지하는 한편 ‘시장만능주의’의 이데올로기와 싸우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문화는 적어도 시장의 법칙에서 자연스럽게 탄생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80년대 말부터 신문의 위기가 꾸준하게 거론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97년을 기점으로 오히려 신문이 살아나고 있습니다. 광고주들도 영상매체에서 활자매체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고 합니다. 정보혁명의 시대에 신문의 미래를 어떻게 보십니까.

“인터넷은 활자매체의 종말이기는 커녕 오히려 자극입니다. 르몽드도 선택과 배제라는 전통적인 가치기준에 걸맞은 인터넷 신문을 만들었습니다. 서울과 파리에서 동시에 ‘www.lemonde.fr’에 접속할 수 있게 된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김진호기자 jh@kyunghyang.com〉

-에드위 플레넬 르몽드 편집국장 약력-

1952년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 낭트에서 출생

76~80년 ‘루즈(Rouge)’ ‘르 마탱(Le Matin)’ 기자

80년 르몽드(Le Monde) 교육·경찰기자

91~95년 대기자, 경찰·법조팀장 등

96년 1월~현재 르몽드 편집국장

‘시련(L’Epreuve·1999)’ ‘도둑맞은 단어들(Les mots voles·1997)’ ‘개들의 시간(Un temps de chien·1994)’ 등 저서 다수.




입력 : 2000-10-05 19: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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