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했던 대면 인터뷰중 유일하게 취중 인터뷰다. 프랑스 문화원에서 종로3가 포장마차로 옮겨서 소주 한잔을 나누면서 이야기를 이었다. 낯선 음식에 모험심이 있는 프랑스 사람 답게 포장마차의 안주들을 무척 즐겼다.
“문화 단절이 佛 학생시위 불렀다”
| 기사입력 2006-04-03 20:39| 최종수정 2006-04-03 20:39
프랑스 지식인들만큼 좌파와 우파의 경계가 뚜렷한 경우는 드물다. 좌·우파는 다시 트로츠키파와 극우파 등으로 세분화되면서 다양한 이념의 스펙트럼으로 나뉜다. 하지만 26세 미만 청년들에 대한 취업 2년 내 해고를 자유화한 프랑스 정부의 ‘최초고용계약(CPE)법’ 반대 시위가 절정을 이뤘던 지난주 방한한 미셸 마페졸리 파리5대학 교수(사회학)는 달랐다. 좌와 우의 양분은 지난 세기의 낡은 나눔법이라는 것이다. 그를 지난달 29일 저녁 서울 봉래동 프랑스 문화원에서 만난 뒤 종로3가 갈매기살 집으로 자리를 옮겨 소줏잔을 기울이며 프랑스 시위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았다. 굳이 기존 잣대로 분류하자면 무정부주의에 가까운 그가 바라보는 프랑스 학생시위는 경제적인 문제라기보다 일종의 ‘문화의 단절’ 현상이다.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의 CPE에 반대하는 청년들의 시위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CPE는 하나의 구실에 불과하다. 시위에서 표출되는 것은 그보다 훨씬 심각하고 전반적인 사회적 불만이다. 상황이 상당히 쉽고 빠르게 확산, 전염됐다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처음엔 대학생이 시작했다가 고등학생들이 참여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정치인이나 기자들, 대학인 등 프랑스 ‘인텔리겐차(지식인)’들 사이에 약간의 괴리감이 존재하는 것 같다. 인텔리겐차들은 19세기의 가치에 집착을 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는 청소년들이 있다. 그들은 ‘에도니즘(쾌락주의·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쾌락을 추구하는 사고)’과 같은 다른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시위는 이러한 불일치가 표현된 것이다. 우파정부는 CPE의 내용 중 문제가 되고 있는 일부에 대해 양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생들의 불만이 해소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영·미 언론을 중심으로 이번 사태를 노동시장의 유연화 개혁을 미리 하지 못한 ‘프랑스 모델’의 실패라고 보는 것 같다.
“공감한다. 프랑스 모델에는 상당한 보수주의가 내재돼 있다. 사회적인 기득권에 안주하는 경향이 있다. 19세기와 20세기 전반까지 프랑스 모델은 성공적으로 운영됐다. 하지만 이제 현실과 맞지 않게 됐다. 그런데도 인텔리겐차들은 19세기 가치를 여전히 성채처럼 수호하고 있는 것이다. 1백만명의 프랑스 청년들이 미국이나 다른 유럽국가로 일을 하러 떠난 것으로 알고 있다. 프랑스 사회에서는 자신들의 모델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노조를 통해서도 자신들의 입장이 대변된다고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드 빌팽은 우선 사전에 충분한 대화를 갖지 않았고 또 청년들에게만 피해를 주는 부분적인 개혁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드 빌팽은 열린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훌륭한 외교관이었지만 사회문제나 노사문제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다. 그로 인해 CPE는 아주 미숙한 개혁이 됐고 결과적으로 젊은 세대가 폭발하게 된 것이다. (그는 우파정부의 내무부장관인 니콜라 사르코지와 파리 팡테옹 근처 자신의 집에서 식사를 하고 지내는 사이이며,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 전 총리 등 좌·우파를 넘나들며 정치인들과 친분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도 단언컨대 현지 프랑스에 좌파나, 우파 정치인은 없다고 말했다)”
-이번 시위를 탄광의 오염도를 측정하는 카나리아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중산층이 가담한 것에서 볼 수 있듯 세계화에 반대하는 새로운 변화의 전조라는 것인데….
“프랑스인들은 뜨거운 피를 갖고 있어서 이렇게 폭발한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일이 생긴 것은 18, 19세기 계몽주의 철학에서 생긴 가치가 우리 생활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기라고 보는 것이다. 위기는 경제적이거나 정치적인 것이 아니다. 한 사회가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고 스스로에 대해 신뢰를 갖지 못할 때 발생한다. 이번 시위는 이러한 단절 현상이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노동시장의 유연화만이 해법이라고 생각하는가.
“동의하지 않는다.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문화적인 불일치’ 현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문화는 우리의 모든 일상생활을 말한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하나의 요소일 수는 있지만 전부는 아니다. 우선 인텔리겐차들이 갖고 있는 문제가 있다. 적절한 단어들(les mots)로 적절하게 우리 시대를 표현해내는 것이 인텔리겐차들의 역할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적절한 단어들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를 경제적인 문제로만 생각하는 것은 오류다. 훨씬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문제를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유독 프랑스에서만 대규모 시위가 많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일각에선 ‘공화국의 가치’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있다.
“프랑스는 여전히 자코뱅(프랑스 혁명 당시 강경파)적인 가치에 머무르고 있다. 이는 ‘여러 개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공화국’이라는 아이디어다. 적절한 단어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지만, 라틴어로 공화국은 ‘Res Publica’라고 한다. 공적인 것이라는 뜻이다. 프랑스에선 좌파건, 우파건 공화국이 다양한 조각들의 조합으로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지 못한다. 이것이 프랑스가 갖고 있는 문제다.”
-거리 시위는 프랑스 사회가 잊고 있던 사회정의를 일깨워주는 효과가 있지 않나.
“모든 종류의 시위는 필요하다고 본다. 그것이야말로 변화를 가능하게 하고 좀더 나은 것을 만들기 때문이다. 사람의 일생을 보면 위기의 시기가 있다. 위기는 다른 시간, 다른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것이다. 시위는 늘 흥미롭다.”
◇마페졸리 교수(61)=‘상징적 상상력’으로 유명한 질베르 뒤랑에게서 사회학 박사학위(1973·그르노블대학)를 받은 마페졸리 교수는 이탈리아 이민가정 출신으로 ‘전체주의적 폭력’(1979), ‘현재의 정복’(1979), ‘감성적 이성에 대한 찬미’(1996), ‘삶의 리듬, 포스트 모던적 감성의 변조’(2005) 등의 저서를 남겼다. 포스트모던시대 사회학의 본령을 거대 담론에 가려져 있던 보통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에서 찾아 ‘일상의 사회학자’로 불린다. 현재도 왕성한 집필·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이번 방한은 5번째이며 국내에도 주요 저서가 번역돼 있다.
〈글 김진호·사진 강윤중기자 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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