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 전 잠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자택 2층 운동방으로 향한다. 실내 자전거를 타고 약간의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 뒤 러닝머신에 오른다. 종종 아침식사 대신 단백질 셰이크를 마시고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집에서 양복 정장 또는 콤비를 입는다. 저녁에는 아내와 함께 집에서 저녁식사를 한다.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까지만 해도 매일 숨 가쁘게 진행되던 선거유세 동안에는 꿈꾸지 못했던 호사다. 아침부터 저녁 사이가 그가 미합중국 대통령이 되기 위해 재택 선거운동을 하는 시간이다. 뉴욕타임스가 소개한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의 하루 일과다. 바이든은 지난달 NBC 방송 인터뷰에서 “나는 밖에 나가지 않으며, (집에서도) 방문자들과 거리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 고립된 바이든
통상 대선이 있는 해의 3~5월은 민주, 공화당이 각각 후보를 사실상 확정하고 여름 전당대회 전까지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는 시기다. 민의를 수렴하는 한편 당의 주요 공약을 모아 정강(Platform)을 작성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코로나19는 대선 후보의 일상도 바꿔놓았다. 델라웨어주는 봉쇄를 일부 완화하면서도 긴요한 일을 위해서만 집 밖을 오갈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모임은 10명 이하만 허용되며, 주 밖에서 온 사람은 14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 어쩌다가 바이든의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안전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미국 대선은 투표일을 기준으로 대략 2년 전부터 선거운동을 시작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대통령 취임식 한 달 뒤인 2017년 2월부터 착수했다. 연초 아이오와 코커스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각각 4위, 5위에 그쳤던 바이든에게는 특히 어려웠던 예비선거였다. 그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대선행 티켓을 움켜쥐면 통상 ‘승리 유세’로 세를 과시하고, 사퇴한 후보들과 함께 ‘단합 유세’를 할 만도 하지만 올해는 모두 불가능했다. 백악관에서 매일 열리는 코로나19 대국민 브리핑장을 유세장으로 활용하는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대국민 접촉도에서 불리하기 짝이 없는 구도다.
살갑게 다가가 악수를 나누고 등을 두드리는 성향의 바이든은 ‘강요된 격리’ 속에서 꾸준히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미국 언론과 수십건의 인터뷰, 팟캐스트 방송 등의 방식으로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 자신을 지지하는 다양한 분야의 지도자들과는 장거리전화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21일 리얼클리어폴리틱스(RCP)가 미국 내 여론조사를 종합한 결과 바이든과 트럼프 지지율은 48.7% 대 43.1%로 바이든이 5.6%포인트 앞섰지만 결코 우세라고 볼 수 없는 성적이다.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4년 전 바이든의 지지율과 비슷한 득표율(48.2%)을 얻었지만, 46.1% 득표에 그친 트럼프에 패했다.
5개월여 남은 투표일까지 코로나19 확산세 및 이에 따른 실업자와 개인사업자, 기업의 회복 정도 등 대선의 향방은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형국이다. 지난 14일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한 실업자는 미국 전체 노동자의 20%를 웃도는 3620만명으로 집계됐다.
■ 정적들과의 연합(Team of Rivals)?
바이든은 지난 3월12일 ‘코로나19 대응 및 미래 글로벌 보건 위협 대비에 관한 계획(The Plan)’을 발표한 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책을 비판하는 한편, ‘코로나 이후’ 재건에 관한 생각을 내보이고 있다. 코로나19 대책은 투명한 정보 공개에 따른 신뢰 회복, 진단 능력 확보 및 무상 진단, 방역 최일선 보건의료 인력의 안전 및 피해 최소화를 위한 연방정부 차원의 효율적인 비상조치 등을 촉구하고 있다. 팬데믹을 극복하기 위한 글로벌 협력과 공중보건을 위협하는 기후변화 대책의 중요성을 환기시켰다.
지난 3일에는 민주당 경선에서 자웅을 겨뤘던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과 공동명의 언론 기고문을 통해 코로나19 지원예산의 투명한 집행 및 엄격한 회계감사 필요성을 강조했다. 미국 의회와 백악관은 3월27일 코로나 바이러스 지원·구호·경제보호(CARE)법에 따라 2조달러의 예산을 편성한 이후 추가 지원안을 발표하고 있다. 바이든과 워런은 그러나 연방정부 예산이 대부분 트럼프 행정부 및 공화당에 우호적인 대기업에 집중되고 있다면서 이해상충 및 대기업의 로비, 회계감사 등에 대한 3가지 문제를 제기했다.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2021년 1월 취임할 ‘바이든 행정부’는 취임과 동시에 의심스러운 거래에 관한 수사와 관련자들에 대한 사법적 처리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의 정치적 후원자들인 대기업들에만 5000억달러가 별다른 조건 없이 뿌려졌으며, 기왕의 부자감세에 더해 1조달러가 부자와 대기업에 집중됐다는 게 바이든-워런의 주장이다. 물론 트럼프는 이러한 문제제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미국 주류언론에서는 바이든이 여성 정치인 중 선택하겠다고 공언한 부통령 후보에 워런을 임명할 것을 촉구하는 견해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현재까지 드러난 바이든의 최대 약점은 옳은 말을 내놓지만, 어딘가 밋밋해 보인다는 점이다. 워런의 논리정연하면서도 단호한 어조 및 워런이 내세운 ‘책임지는 자본주의(Accountable Capitalism)’ 슬로건이 코로나 이후 미국의 경제사회 회복에 가장 적격이라는 생각에서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작금의 위기가 남북전쟁이나 글로벌 금융위기 못지않은 만큼 정적들과 연합하는 거국정부의 구성을 제안했다. ‘코로나19 지원예산의 감독부처’를 새로 만들어 워런을 장관으로 임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재무장관 마이클 블룸버그, 보건부 장관 빌 게이츠, 국무장관 공화당의 미트 롬니 등이 프리드먼이 꿈꾸어 본 ‘정적연합팀(Team of Rivals)’ 면면이다.
■ 트럼프가 주도하는 ‘더러운 싸움’
트럼프의 선거전략은 이번에도 상대 후보에 대한 인신공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16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겨냥했던 여성혐오 발언들은 이제 바이든의 나이(77)와 중얼거리는 말버릇을 빌미로 저속함을 더하고 있다. 워싱턴이그재미너 인터뷰에서 “바이든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무런 생각이 없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고 말한 것은 그나마 점잖은 표현이었다. 대놓고 바이든을 ‘정신이상자’로 몰고 있다. 폭스뉴스 진행자 브릿 흄은 “바이든이 노망들고 있다”고 말했는가 하면,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은 “바이든은 치매의 분명한 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거들었다.
여기에 코로나19 발생 초기 중국 당국의 은폐 의혹이 사태를 키웠다면서 ‘중국 때리기’를 더하고 있다. 기실 미·중 무역분쟁 1단계 합의안을 도출했던 지난 1월부터 코로나19가 중국에서 처음 발생했을 때만 해도 시진핑 주석의 대응을 칭찬하던 트럼프는 3월 말을 기준으로 중국 비난으로 돌아섰다. 트럼프는 코로나19 발생 초기인 1~2월 “미국민을 대신해서 시 주석에게 감사를 표한다. 그들(중국인들)은 코로나19에 매우 전문가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면서 15번이나 시 주석을 공개 칭찬했다. 이 숫자를 센 사람은 수전 라이스 전 유엔대사다. 라이스 전 대사는 뉴욕타임스 기고문에 이를 소개하면서 트럼프가 취임 이후 기회 있을 때마다 시 주석이 사실상 종신주석이 된 것을 축하하며 자신과 시 주석의 존경과 우정의 관계를 강조해온 것을 상기시켰다.
4년 전 대선에서도 중국이 미국의 부를 빼앗아가고 있다는 트럼프의 중국 때리기는 호응을 얻었지만, 올해는 코로나19 사태 대책에 실기한 자신의 과실을 덮는 동시에 유권자들의 중국 견제 심리를 노리면서 갈수록 표현이 거칠어지고 있다. 4월 말 미국 언론이 공개한 57쪽의 공화당 선거전략은 트럼프의 좌충우돌식 저속한 공격이 주도면밀하게 계산된 전략의 밑그림에서 나오고 있음을 입증했다. 공화당의 선거전략가 브렛 오도넬이 작성해 상원전국위원회(NRSC)에 전달한 선거전략은 민주당 후보 비난 포인트와 코로나19의 중국 책임론에서부터 인종주의 논란 대처법 등이 포함됐다.
특히 트럼프의 중국 여행금지 조치를 제외하곤 일체의 코로나19 책임을 온통 중국에 돌릴 것을 권고하고 있다. 친트럼프 슈퍼 정치행동위원회(PAC)는 중국과 바이든을 묶어서 비난하는 TV선전물을 내놓고 있다. 바이든이 중국에 너무 고분고분하다는 주장과 함께 ‘BB(베이징 바이든)’라는 말도 등장했다.
■ 안갯속의 미국 대선 향방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의 인신공격에 맞대응했다가 실패한 경험을 갖고 있는 민주당은 같은 수준의 말싸움을 피하고 있다. 클린턴 후보는 트럼프의 품성을 집중 비난했지만, 정작 주요 현안에서 많은 유권자들이 트럼프의 표현 방식은 싫어해도 트럼프의 주장에 공감하고 있음을 간과한 것이 중요한 패인으로 꼽힌다. ‘중국 때리기’가 대표적이었다.
바이든 캠프는 트럼프의 계속되는 공격에 코로나19 확산 이후 트럼프가 저지른 4가지 치명적인 실수를 ‘4C’로 요약해 반격 포인트로 삼았다. 라이스의 지적처럼 중국 정부와 지도자를 칭찬만 하면서 사실관계를 챙기지 못한 점 및 위협을 부인하거나 경시한 사실의 은폐, 뒤죽박죽 대처로 인한 혼란, 기업과의 결탁 등을 의미하는 ‘C’로 시작하는 4가지 단어를 강조하라는 지침이다. 직접적으로 트럼프의 품성을 비난하는 것은 자제하고 있다. 어차피 트럼프의 막말 스타일은 4년째 전 세계가 반복학습하고 있는 기정사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겉으로는 트럼프를 꺼리면서도 정작 그에게 표를 던졌던 ‘샤이 트럼프’ 지지자들이 지난 대선의 승패를 좌우했던 것은 유권자들 감수성에 다가가는 데 트럼프가 앞섰음을 말해준다. “그들이 저속하게 가면, 우리는 고상하게 가자”(미셸 오바마)는 말은 멋지지만, 실제 투표현장에서 파괴력은 제한적이다.
앞을 내다보기 힘든 코로나19의 확산세는 그렇지 않아도 예측이 어려운 미국 대선 전망을 더욱 어렵게 한다. 트럼프가 확인시킨 탈진실(Post-Truth) 시대에 합리적인 분석과 전망을 내놓는 미국 주류언론 보도만 들여다보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진실보도보다는 가짜뉴스가, 사실보다는 소문이 효과를 보는 게 탈진실 시대의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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