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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철도기행/로테르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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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no's 2012. 2. 2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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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12/29 (금)     45판 /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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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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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목적지 네덜란드 로테르담(유라시아 철도기행:33·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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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항구서 멎은 철마… 새 여로가 시작/항만수입은 경제 주춧돌… 고통의 바다서 부 길어올려


프라하에서 출발한 열차는 독일 베를린에서 시베리아횡단철도와 합류한 뒤 로테르담에서 멈춘다. 중국 연운항에서부터 2만7천리를 달려 온 유라시아 횡단열차의 마지막 목적지에 도달한 것이다.

○유럽화물 60%부려지는 관문
로테르담은 그러나 종착역일뿐 아니라 새로운 여로가 시작되는 출발지 이기도 하다. 라인·마스·쉘트강 하류에 자리한 로테르담은 세계 최대 물동량을 자랑하는 항구도시. 유럽에 유입되는 화물의 60%가 부려지는 관문이다. 세계 각국의 물산은 이곳에서 실핏줄처럼 뻗은 수로와 철도, 도로망을 통해 유럽 각지에 운반된다.
유로시티(EC) 열차편으로 도착한 로테르담 중앙역은 상가가 빼곡히 들어선 말끔한 현대식 건물이었다.
2차대전 당시 독일공군의 집중 공습을 받은 시내에는 여느 유럽 도시와 달리 고풍스러운 건물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로테르담의 매력은 낡은 것이 아닌 새로운 것에 있었다.
연필모양의 시립도서관과 정육면체를 공중에 모로 세워 놓은 큐빅하우스 등 갖가지 아이디어가 망라된 현대건축물들은 독창적인 조형미를 갖고 있었다.
계단 기둥에 얹혀 있는 큐빅하우스는 나무위에 기거했던 원시인들의 주거형태에 착안한 건축물. 시 관광청 직원 하리에타 부솅(26)은 『큐빅하우스는 주거지의 고정관념을 깬 건축물』이라면서 『나무 한그루에 비유할 수 있는 개개의 큐빅하우스들은 또한 서로 붙어 있어 함께 하는 삶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로테르담의 이름은 암스테르담을 비롯한 네덜란드 내 「담」자 돌림 도시들과 동일한 형성과정을 갖고 있다. 라인강의 지류인 로트 강가에 댐이 서고 그 위에 시장이 열리면서 마을이 생긴 것이다.
시의 발상지인 담광장에 매주 화·토요일에 열리는 노천장(데 마르크트)은 저렴한 가격으로 시민들의 인기를 끌고 있었다. 간이점포에는 골동품과 양탄자에서부터 의류, 채소, 과일, 헌책 등 각종 생필품이 쌓여 있었다. 오후 4시가 조금 넘자 광장은 철시준비로 부산해지기 시작했다.
꽃상인들이 몰린 곳에서는 『끝물』이라며 『종류에 상관없이 한 무더기에 5길더(약 2천5백원)』라는 외침이 시끌벅적하게 들렸다.
항만과 무역으로 번영을 구가하는 도시답게 로테르담 시내는 활기에 차있었다. 거리에는 유난히 흑인들이 많이 보였고 동양인은 물론 얼굴을 가린 이슬람 여인들도 종종 눈에 띄었다. 거리 곳곳에서 남루한 차림의 성인남녀가 파는 「거리신문」은 행인들의 호응을 얻고 있었다. 적지 않은 행인들은 종교단체등에서 극빈자들에게 신문을 팔아 스스로의 빵을 해결하라고 운영하는 거리신문(1부당 2길더·약 1,000원)을 1부씩 갖고 있었다.
다인종 모듬살이에 익숙해진 로테르담 시민들은 외국인에 대한 친절이 몸에 배어 있었다.
한국 건설업계의 항만시설 시찰단을 안내하기 위해 로테르담을 찾은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의 김만석 상무관은 『오랜 상업적 전통으로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끼치지 않는 한 외국인들에게 깍듯하다』고 말했다. 국민의 70%이상이 영어를 구사하고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면 외국어 2∼3개를 말할 수 있어 우선 의사소통이 가능한 것도 외국인을 편하게 대하는 이유라고 그는 덧붙였다.

○카페들어선 스페인부두 명물
시 중심가의 올드 하버(구항)와 변두리의 델프스 하벤은 비교적 옛 모습이 남아있는 곳. 올드 하버는 미국 인디언들로부터 맨해튼 섬을 사들이고 멀리 카리브해와 인도네시아까지 진출했던 네덜란드의 「황금시절」을 대표한다. 좁은 수로에 작은 배들이 한가로이 정박해 있고 카페가 들어선 스페인 부두는 로테르담의 명물이다. 부두 한쪽에는 1898년에 세워졌다는 유럽 최초의 오피스빌딩 「화이트 하우스」가 서 있다.
시 외곽의 델프스 하벤은 가톨릭교도들의 박해를 피해 신대륙으로 떠났던 필그림 선조들의 교회가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교회 앞 수로에는 메이플라워가 떠나던 선착장이 남아있고 풍차와 술도가 거리도 보존 돼 있다.
빈약한 부존자원에 국토의 27%가 해수면 보다 낮은 가혹한 환경을 극복해야 했던 네덜란드인들에게 바다는 고통의 원천이자 기회의 터전이었다. 네덜란드 내 다른 항구와 마찬가지로 로테르담의 과거와 현재도 바다와의 인연으로 점철된다. 시대별 배 모형과 항해장비가 전시된 로테르담 해양박물관에서는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열심히 바다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마스강 좌안 허름한 건물의 호텔 뉴욕은 로테르담의 암울했던 시절의 기념비.
93년 호텔로 개장한 이 건물은 금세기 초 기회의 땅인 미국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몰렸던 증기선 회사의 선착장 건물이다. 「홀랜드­아메리카 증기선」이라고 씌어져 있는 호텔 로비에는 가난을 피해 고향을 떠났던 사람들과 눈물의 전송장면이 담긴 빛바랜 사진이 걸려있었다.
그러나 고향을 지켰던 사람들은 이제 고통의 바다에서 부를 길어올리고 있었다. 45㎞ 길이에 총면적 1만5백43㏊에 달하는 로테르담 항만(유로포르트)에서는 하역작업이 한창이었다.
항만에서 나오는 수입만으로 네덜란드 국민총생산(GNP)의 15%를 점한다는 유로포르트는 직·간접적으로 30만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시 경제의 주춧돌이다. 196개의 크레인과 무인 자동화 터미널, 복합운송시스템을 갖춘 유로포르트는 민·관 협조체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항만 건설에 필요한 부지매입과 인프라는 시 당국이, 하역장비와 창고 등 지상건조물과 항만운영은 민간회사 ECT가 맡는다.
네덜란드 무역국의 한스 브론은 『시 당국은 항만 대여에서 나온 수입중 일부를 다시 해양휴양지 조성에 투입해 균형개발을 도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ECT가 처리하는 컨테이너 가운데 철도로 운송되는 물량은 10∼15%정도. ECT는 항만내 화물 전용철도를 통해 157㎞ 떨어진 독일 국경 벤로까지 셔틀 열차를 운행하고 있다. 91년 대단위 집하시설을 갖춰 놓은 벤로는 네덜란드 최대 물류기지. 이 곳에서부터 컨테이너는 트럭에 실려 뒤셀도르프(55㎞), 쾰른(90㎞)등 독일내 주요도시로 운송된다.

○숨가쁘게 달려온 대장정
네덜란드 교통부 공보관 카롤 반 로알텐은 『로테르담에서 모스크바까지 잇는 화물전용 셔틀열차 운행도 계획하고 있지만 철로규격과 관세문제등으로 가까운 시일 내에 실현되기는 힘든 실정』이라고 말했다.
황해 앞바다의 연운항에서 출발, 중앙아시아와 이란구간을 거쳐 이스탄불에서 유럽대륙에 진입한 뒤 숨가쁘게 달려 온 유라시아횡단열차의 철륜이 멈춘 곳. 기나긴 여정이 끝나자 길은 또 다시 시작되고 있었다.<로테르담=김진호 특파원>

마지막 목적지 네덜란드 로테르담(유라시아 철도기행:33·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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