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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철도기행/프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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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no's 2012. 2. 23.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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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정보
1995/12/23 (토)     45판 / 11면
분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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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고도 체코 프라하(유라시아 철도기행: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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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마다 역사의 향기… 외국관광객 “밀물”/「프라하의 봄」 「돈 조반니」 공연장앞 한겨울에도 인파 북적
블타바강 유역에 자리잡은 중세 고도.
프라하는 음습한 대륙성 기후로 잔뜩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외국관광객들로 북적거렸다. 조각가 로댕이 「북쪽의 로마」라고 극찬했다는 프라하는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중세의 아름다움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
건립에만 1,000년이 걸려 체코 역사와 맥을 같이한다는 비투스성당과 프라하성, 구시가지 광장, 말라 스트라나(소지구), 구시가지의 틴 교회, 카렐다리 등 시 전체가 관광객을 흡입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고딕과 르네상스, 바로크,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들은 물론 마차가 다녔던 포도와 좁은 골목 하나하나에 역사의 향기가 배어 있었다.
○숫자 거꾸로 쓰인 유태인 시계
프라하를 찾은 외국관광객은 지난 해 1천7백만명. 프라하 주재 한국대사관의 이상학서기관은 『체코는 20억달러에 달한 작년 관광수입으로 무역수지 적자를 경상수지 흑자로 전환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프라하가 문화유산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은 역사적으로 단 한 차례의 폭격도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가 주변 강대국들의 침략으로 철저하게 파괴된 것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오랜 지적·문화적 전통은 프라하만이 갖고 있는 「관광 인프라」의 또 다른 축. 연례 음악축전 「프라하의 봄」이 개막되는 루돌피눔 음악당과 모차르트가 「돈 조반니」를 초연했다는 스타보프스케 극장등 공연장 앞에는 한겨울에도 인파로 붐볐다.
프란츠 카프카 생가와 그가 「성」등 대표작을 집필하면서 머물렀다는 프라하성내 황금골목 등에는 집단주의에 대한 개인의 소외와 저항을 대변했던 그의 자취가 남아 있었다.
도시 속의 도시로 자리잡고 있는 유태인 지구(요세포프)는 유럽 대륙에 남은 유일한 게토. 현재 1,000명도 안되는 유태인만 살고 있지만 스타로노바(신구) 시나고그를 비롯해 6개의 유태교 교회와 유태인 시청, 묘지, 박물관이 보존돼 있었다. 프라하의 유태인들은 여전히 「그들만의 시간」 속에 살고 있었다. 유태인 시청에 달린 유태인 시계에는 일반 시계와는 다르게 거꾸로 쓰인 히브리어 숫자판이 달려 있다.
유태인 희생기념관이 세워진 핀카스 시나고그 내부 벽면은 온통 노랑·빨강·검정 글씨로 장식돼 있었다. 모퉁이에 놓인 걸상에 앉아 있던 백발 노인은 『나치에 희생당한 유태인 7만7천9백27명의 이름과 출생지, 생년월일』이라고 또박또박 설명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그는 『유태인 기념관을 보존한 것은 바로 학살의 주범인 히틀러 자신이었다』고 전해주었다.
○카렐대 한국학과 50년에 설립
히틀러는 42년 「멸종 인종 박물관」을 세우려는 의도로 체코 전역에 흩어진 152개의 게토에서 유태인 물품을 수집해 보관토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신시가지 중심인 바츨라프 광장에는 중세와 현대의 「영웅」들이 함께 모셔져 있었다. 광장 위쪽에 있는 성 바츨라프 기마상 앞에는 68년 「프라하의 봄」 당시 소련군에 저항하다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는 꽃과 촛불, 사진들이 놓여 있었다.
89년 민주화시위가 열렸던 바츨라프 광장은 대형상가와 사무실, 서점 등이 밀집해 있는 프라하 최대 번화가. 행인과 자동차가 바삐 오가는 거리 곳곳에는 영어교습 광고가 붙어 있어 젊은이들 사이에서 불고 있는 「미국 붐」을 짐작케 했다.
600년이 넘는 중부유럽 최고의 역사를 자랑하는 카렐대학은 한국학 연구에서도 상당한 경륜을 갖고 있다. 50년 설립된 한국학과가 소속된 동양학부는 프라하 시내 한복판에 있었다. 한국학과 주임교수를 맡고 있는 블라지미르 푸체크박사(62)는 『프라하에서는 이미 30년대부터 한국작가들의 작품이 번역되기 시작했다』면서 『카렐대학에는 현재 신입생부터 5년생까지 20명의 학생이 한국학을 전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체코는 이웃 헝가리와 함께 경제개혁의 쌍두마차로 불리는 나라. 그러나 전통적인 농업국가였던 헝가리와 다르게 체코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부터 선진 산업지역이었다. 공산정권 시절에도 기계공업과 군수산업을 중심으로 앞선 기술수준을 자랑했었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산업기반이 취약한 슬로바키아가 93년 평화적으로 분리됨으로써 체코의 개혁은 오히려 가속도가 붙게 됐다. 체코는 지난달 말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가입, 성공적인 개혁을 인정받았다.
경제개혁과 함께 전통 서구사회로의 복귀를 희망하고 있는 체코 정부는 서구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낙후한 도로와 철도 등 사회기반시설 현대화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지리적으로 유럽의 중심에 위치한 체코는 빈과 베를린을 잇는 전통적인 남북유럽 철로의 연결지점. 오스트리아와 독일과 인접해 있어 유럽연합(EU)의 중요 수송루트로서 인프라 확충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독일과 과거청산 문제로 갈등
체코 정부의 역점사업은 프라하를 중심으로 빈∼베를린과 바르샤바∼빈을 잇는 국제 간선철도망의 현대화. 파벨 카프카 체코 교통부장관 비서실장은 『운송비용을 줄여 수출품의 가격을 내리는 것이 최대 관건』이라면서 『각각 제1·제2 회랑으로 명명된 이들 노선의 체코통과 구간에서 열차운행 속도를 시속 160㎞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당면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유럽부흥개발은행(EBRD)과 일본은행에서 이미 재원을 확보한 상태라며 내년 초 착공해 2002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갈길 바쁜 체코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인접한 독일과의 과거청산 문제였다. 독일은 현재 대체코 최대 투자국이면서도 제1의 가상적국이다. 역사적으로 기름진 땅을 찾아 남진했던 독일인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했던 주데텐지방을 둘러싼 해묵은 긴장이 현재진행형으로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체코 동부의 주데텐지방은 히틀러에 의한 체코인 추방과 2차대전 뒤 체코정부의 독일인 추방이 몇년 간격으로 단행됐던 곳. 주데텐에서 쫓겨난 2백70여만명의 독일인들은 현재 독일 바이에른주와 오스트리아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현지 우파 세력을 등에 업고 체코정부에 재산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주한 체코 대리대사를 역임한 야로슬라브 바린카(64)는 『일본은 한국에 대해 망언만 일삼고 있지만 독일인들은 체코에 실질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족주의 열정이 「오른쪽」으로 기울 경우 나타나는 일그러진 모습은 체코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프라하에는 유럽 어느 도시에서나 쉽게 눈에 띄는 집시들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슬로바키아와의 분리 당시 체코정부는 집시들에게 국적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이들을 간접적으로 「청소」했기 때문이다.<프라하=김진호 특파원>

중세고도 체코 프라하(유라시아 철도기행: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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