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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읽기/좋은 미국, 나쁜 미국

미국 총기참극, 버지니아텍 조승희는 왜...

by gino's 2021. 3. 17.

[美 총기참극] 美학생들 “개인 범죄일뿐” 되레 한국인 위로

2007-04-18 18:24 입력 2007-04-18 18:24 수정

‘참극의 현장’은 언제 끔찍한 일이 벌어졌나 싶을 정도로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17일(현지시간) 찾은 버지니아공대 본관 건물에 걸린 검은 조기가 비극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악몽을 털어내려는 학생과 교직원들의 차분한 노력이 엿보였다. 넘어서야 할 비극은 되레 모두를 하나로 묶어준 것 같았다. 친구들을 비명에 보내야 했던 전날 강풍에 진눈깨비까지 날렸던 하늘은 맑았고, 따사로운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17일 버지니아공대 워샴 스타디움에서 열린 총격사건 희생자 추모제가 열리는 동안 두 여학생이 손을 맞잡고 슬품을 함께 하고 있다.

한국과 페루, 인도, 인도네시아, 이집트, 독일, 미국령 푸에르토리코. 광기의 총격을 퍼부은 조승희씨를 포함해 숨진 사람들의 출신국만 7개국 이었다고 수사관계자는 전했다. 그래서인지 남은 사람들은 피해자와 가해자의 국적에 개의치 않았다. 교직원 수잔 트루러브(여)는 “범인이 어디에서 왔는지가 무엇이 중요하겠는가”라면서 “대학과 블랙스버그 공동체의 마음은 여전히 열려 있다”고 말했다.

30명이 친구들이 곁을 떠난 노리스홀 건물은 주 경찰당국에 의해 봉쇄돼 있었다. 노란색 테이프 밑에는 학생들이 갖다놓은 추모의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슬픔은 곳곳에 널려 있었다. 오후 2시 열린 추도식에서는 자식을 잃은 학부모들이 학생들을 부둥켜 않고 우는 모습이 보였다.

조지 부시 대통령 내외는 “오늘은 온 나라가 슬픔에 잠긴 날”이라며 슬픔을 나눴다.

추모객들은 행사장인 캐슬 콜롯세움을 메웠다. 인근 미식축구장에도 수천명의 추모객들이 모였다. 한인 학생들도 삼삼오오 모여들어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전날 팔에 관통상을 입고 치료를 받았던 박창민씨(토목공학·석사과정)도 친구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많은 한인 학생들은 ‘죄인 아닌 죄인’이라는 생각을 떨쳐내지 못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학생은 “범인이 중국계라고 해도 미국인이 보기엔 같은 아시아인이기에 위축될 텐데 한국인이라니…”라면서 “미안할 뿐”이라고 말했다.

버지니아공대 총격 사건으로 부상을 입은 박창민씨가 17일 대학내에서 진행된 희생자 추모행사에 참석했다.

노리스홀에서 10여m 떨어진 잔디광장 드릴필드의 나무들에는 희상자 수대로 32개의 검은 리본이 둘러쳐 있었다. 다른 나무들에는 학교의 상징색인 주황색과 자주색 리본이 매달렸다. 저녁 8시부터 열릴 촛불집회에 앞서 이 학교 건축학과 학생들이 꾸며놓은 것이다. 기 탈라리코 (건축학과2·23)는 “검은 리본을 32개로 할지 아니면 범인을 포함해 33개로 할지 잠시 토론이 있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오늘 행사가 추모를 위한 것인 만큼 범인을 제외하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는 설명이다. “범인에 대해서는 주변에서 고립된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한손엔 촛불을 들고 다른 손엔 친구의 손을 잡았다. 저마다 크고 작은 원을 그리며 둘러 서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거나 기도를 올렸다. 눈시울이 붉어져 있기도 했다. 기도어에는 추모의 마음과 함께 ‘회복’ ‘치유’라는 단어가 많이 들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만나는 미국 학생들마다 "한국 학생은 물론 아시아계 학생들에까지 피해가 미치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얼추 20명 가까이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단 한명도 예외없이 되레 이를 걱정하는 기자를 안심시키느라고 애를 썼다. 블랙스버그 주민 브랜디 오웬스(21·여·상점 점원)는 “(범인은) 누구라도 될 수 있다. 아무도 알 수 없다. 성과 인종, 출신국은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 태생 일본인 2세 아키라 카네사카(20)는 “백인학생들의 반발이 걱정됐지만 그리 심각한 것 같지는 않다”고 전했다.

촛불행사가 채 끝나기 전 운동장에 배포된 대학신문 컬리지에이트 타임스에는 ‘가슴통(Heartache)’이라는 굵은 헤드라인이 박혔다. “여전히 수많은 의문을 남긴 어제의 사건은 어쩌면 영원히 우리의 기억 속에 남을 것”이라고 슬픔을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순간적인 광란에 산산히 깨졌던 세계를 그 이전 상태로 되돌려 놓기 위한 재건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하나의 공동체로서”라며 다짐으로 끝을 맺었다. 밤 11시가 임박한 시간. 잔디광장을 굽어보는 보러스홀 건물 앞 화단에서는 며칠째 계속된 추운 강풍으로 누워버린 붉은 튤립이 일어설 채비를 하고 있었다. 광장에는 여전히 수천 개의 촛불이 밝혀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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