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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잇따른 동, 서해 미사일 발사가 한반도 정세에 잇단 비상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이태원 참사로 뒤숭숭한 국민은 연이틀을 북한 미사일 발사 속보로 시작하게 됐다.
북한의 미사일 집중발사는 한·미 공군이 지난 10월 31일 시작한 비질런트 스톰(Vigilant Storm) 공중연합훈련과 맞물린 것으로 남과 북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모의 전쟁을 벌이는 형국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의 국방부가 눈에는 눈 식의 맞대응 기조를 내보임으로써 우발적인 분쟁으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 3일 아침 최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을 발사했다. 오전 7시40분쯤 평양 순안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발사된 화성-13형은 최고고도 1920km로 760km(최고속도 음속 15배)에 달했다. 북한은 오전 8시 39분쯤에도 평안남도 개천 일대에서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2발을 발사했다. 우리 군은 북한이 최근 발사한 이스칸데르(KN-23), 북한판 에이태컴스(KN-24) 계열로 추정했다.
북한은 하루 전인 11월 2일에도 오전 6시 51분쯤부터 오후 5시 10분까지 4차례에 걸쳐 총 25발의 미사일을 발사했다. 이중 8시 51분쯤 동해 NLL 남쪽 공해상에 떨어진 1발이 남측의 맞대응으로 이어졌다.
대통령의 작전 지시와 남측의 비례대응
당초 울릉도 방향으로 날아가는 것으로 포착돼 울릉군 전역에 공습경보가 내려지는 소동이 빚어졌다. 이 미사일은 NLL 남쪽 26km, 속초 동쪽 57km, 울릉도 서북쪽 167km의 공해상에 떨어졌다.
오후 1시 27분부터는 북측 강원도 고성군 일대에서 동해 NLL 북방의 해상완충구역으로 100여발의 포사격을 강행했다. 이는 2018년 9·19 남북 군사합의에 위배된다.
우리 공군은 이날 오전 11시 10분부터 F-15K, KF-16 전투기를 발진시켜 슬램(SLAM)-ER 등 공대지미사일 3발을 NLL 북방 공해상에 정밀사격 했다. 북한 미사일 낙탄 해역과 상응한 거리의 공해상이었다.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군의 대응이 사실상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로 취해졌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은 2일 오전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 "북한의 도발이 분명한 대가를 치르도록 엄정한 대응을 신속히 취할 것"을 지시했다. 어느 나라이건 군부가 군사적 대응에 앞장서는 것과 달리 정치지도자가 앞장 선 점을 주목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같은 자리에서 군당국이 대비하라고 지시한 북한의 추가적인 고강도 도발은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일각에서 꾸준하게 제기하는 북한의 핵실험일지 아니면 다른 도발을 예상하고 있는 것인지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에게 전달됐을 모종의 정보가 무엇인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북한 미사일 집중발사를 떼어놓고 보는 것은 안보 기상도를 파악하는데 유효하지 않다. 오히려 군사적 긴장고조가 제도화, 일상화되는 경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울력'으로 긴장 끌어올리는 남과 북
초점을 한반도 남쪽으로 돌리면, 한·미 양국 공군은 최신 군용기 240여대를 동원해 비질런트 스톰을 벌이고 있다. 우리 공군의 F-35A 스텔스 전투기를 비롯해 F-15K, KF-16 전투기 및 KC-330 공중급유기 등 140여대와 미군의 F-35B 전투기, EA-18 전자전기, U-2 고공정찰기, KC-135 공중급유기 등 100여대가 동원됐다. 특히 이와쿠니 미군기지에 주둔하는 F-35B 스텔스 전투기는 미 해병대가 보유한 기종으로 국내기지에 처음 착륙했다.
한·미 공군은 훈련 기간 1600차례의 출격을 예정하고 있다. 이는 비질런트 스톰 훈련 역사상 최다 출격이다.
동시에 미 해군의 핵추진 잠수함 키 웨스트함이 부산에 정박 중이다. 북한이 지대공 미사일을 많이 발사한 것은 압도적인 우위의 한·미 공군력에 대한 비대칭 대응으로 해석된다.
북한이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행위 역시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는 남과 북이 비례 대응의 원칙을 지킨다고 해도 강 대 강의 구도 속에서 갈수록 긴장이 심화될 수 있다. 긴장이 높아진 상태에서는 자칫 우발적인 군사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현 추세대로라면 북한의 잇따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핵실험으로 조성된 긴장 속에서 북·미가 일촉즉발의 위기를 야기했던 2017년 상황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열려 있다.
북한 "비질런트 스톰은 침략적, 도발적 훈련"
북한의 박정천 조선노동당 중앙위 비서가 지난 1일 조선중앙통신에 내놓은 담화는 이러한 우려에 근거를 제시한다.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자리를 겸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그는 비질런트 스톰이 자신들을 겨냥한 침략적이고 도발적인 군사훈련이라고 단정했다. 동원한 전투기 대수와 훈련 규모, 작전명 등 3가지를 근거로 한 말이다. 작전명은 1990년대 초 걸프전 당시 미군이 이라크를 침공할 때 작전명 사막의 폭풍(데저트 스톰)에서 따왔다는 것이다. 억지주장으로 비치지만, 중요한 것은 북한이 그렇게 인식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는 또 "미국과 남조선이 겁기 없이 무력사용을 기도한다면 가공할 사건에 직면하고 사상 가장 끔찍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북한 무력의 특수한 수단들을 지체없이 사용할 것을 경고했다.
특수한 수단들은 핵탄두와 ICBM 등 북한이 보유한 비대칭 무력을 말한다. 미국 국방부가 지난 10월27일 발표한 2022 핵태세 보고서에서 북한의 핵무기 사용이 곧 북한 정권의 종말로 귀결될 것이라고 적시한 것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미사일 집중발사를 하루 앞두고 내놓은 담화로 비질런트 스톰에 대한 강경 대응을 예고한 것이다.
주목할 대목은 그가 말한 핵무기 사용은 자신들에 대한 한·미의 무력사용이 이뤄질 경우를 전제로 한 경고다. 역으로 "한·미의 공격이 없다면 핵무기 사용을 할 일이 없다"는 말과 같다. 북한이 오래전부터 해왔던 말의 연장에 불과하다. 미국은 북한의 주장을 일축했다.
팻 라이더 미국 국방부 대변인(준장)은 2일 브리핑에서 "비질런트 스톰은 오랫동안 계획된 연습으로 한국과 이 지역 우방국들을 방어하기 위해 (미·한) 공군의 합동작전역량을 제고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과 이종섭 국방장관은 이날 펜타곤에서 열리는 제 54차 한·미 안보협의회(SCM) 회의에서 북한군 동향과 한반도 안보정세 평가, 대북정책 공조 및 확장억제 실행력 제고 방안, 연합방위태세 평가와 강화 방안, 글로벌 안보협력 등 동맹 현안을 논의했다.
2017년과 달리 미국이 잠잠한 까닭
현 안보 위기가 2017년 당시 위기와 다른 점은 북한의 잇단 미사일 발사에 대한 미국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5년 전 계기가 있을 때마다 자극적인 발언을 내놓았던 도널드 트럼프와 달리 조 바이든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당시와 달리 북한 ICBM이 미국민에게까지 직접적인 위협을 제기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 미사일이 하와이에 떨어졌다는 잘못된 경보가 나올 정도로 미국민이 긴장하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간선거(11월 8일)에 즈음해 정치의 계절이기도 하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위반이라는 비난과 함께 한반도와 지역 안보를 불안케 하는 행동이라는 정도의 정해진 입장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북한이 아랍국가를 우회해 러시아에 포탄을 제공하고 있다는 백악관 발표에 더 비중을 실었다.
지난 20여년 동안 미국이 북한의 ICBM발사 때마다 안보리를 소집해 대북 제재안을 내놓았던 정해진 수순이 어려워진 점도 미국 반응의 강도를 약하게 하는 요소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와 중국이 안보리에서 협조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아무런 실효성이 없는 총회 성명 정도만 내놓고 있다. 이번에도 안보리 개최에 실패했다.
'화염과 분노' '북한의 완전한 파괴'를 공언하면서 전쟁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던 트럼프가 더이상 미국 대통령이 아닌 점은 현재 위기국면에서 다행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맡았던 역할을 윤석열 정부가 맡는다면 2017년 상황의 재연은 불가피하다. 위기를 심각하게 관리하되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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