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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시효없다" '피고 대한민국'에 첫 국가배상 판결

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by gino's 2023. 2. 12.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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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쟁에서 자행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피해자에게 국가배상을 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원이 개인의 베트남전 전쟁범죄에 대해 형사 책임을 물은 적은 있지만 민사상 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아직 1심 판결이지만, 대법원 확정 판결로 이어진다면 한국 정부와 베트남 민간인 피해자 간 과거사 정리에 획기적인 전기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또 베트남인 학살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소송도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베트남전 당시 자행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극에서 가족을 잃고 부상을 입은 응우옌 티탄이 7일 서울 서초구 서울 중앙지법에서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1심 판결에서 승소한 뒤 화상 통화를 통해 소감을 말하고 있다. 2023.2.7 연합뉴스

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 박진수 부장판사는 7일 베트남 국민 응우옌 티탄(63)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원고가 청구한 3000만 100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응우옌은 청룡부대(해병 제2여단) 군인들이 북베트남과 베트콩의 구정대공세 당시인 1968년 꽝남성 디엔반현 퐁니 마을에서 민간인 70여명을 학살한 사건에서 가족을 잃고 자신도 총격으로 부상을 입었다며 2020년 4월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원고 측이 제출한 증거와 참전 군인, 퐁니 마을 민병대원 등의 증언을 통해 원고의 주장을 대부분 인정했다. 

판결에 따르면 1968년 2월 12일 오전 10시 30분부터 15시 사이 대한민국 해병 제2여단 1중대 소속 군인들이 원고의 집에 난입, 총격을 가했다. 1중대는 당시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의 공세를 격퇴하고 잔여 인력을 수색, 섬멸하기 위한 '계룡 1호' 작전을 수행중이었다. 

응우옌의 가족과 친척 등 7명은 집 방공호에 숨어 있었지만, 한국군이 총과 수류탄으로 위협해 모두 밖으로 나와야 했다. 군인들은 응우옌과 가족에게 총격을 가해 원고의 언니와 남동생, 사촌 동생, 친구 등 5명이 그자리에서 숨졌다. 이모는 군인들이 집에 불을 지르려하자 이를 막는 과정에서 칼로 살해당했다.  응우옌과 오빠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지만 심각한 부상을 입은 사실이 인정됐다.

재판부는 군인들의 행위를 명백한 불법행위로 판시하며 당시 외출중이었던 응우옌의 어머니도 피해자로 인정했다. 어머니는 군인들이 주민들을 끌어내 마을 3곳에서 집단학살하는 과정에 역시 사살당했다. 변호인들에 따르면 생명 및 신체 침해의 경우 원고 본인뿐 아니라 가족에 대해서도 위자료 청구가 가능하다.

 

베트남전 당시인 1968년 한국군의 퐁니 마을 학살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고 생존한 피해자 응우옌 티탄이 지난해  8월 9일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대회의실에서 국가배상소송 법정 진술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2..8.9 연합뉴스

국가 간의 소송은 상호보증이 인정돼야 한다. 재판부는 베트남이 외국 국민과의 소송절차에 있어서 자국민과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보장한다는 점에서 상호보증이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또 피고 대한민국은 소멸 시효가 완성됐다고 주장했지만, 객관적으로 채권자가 권리행사를 할 수 없는 사유가 있었다고 봤다. 

민법에 따르면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의 소멸 시효를 가해자가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와 피해자가 가해자를 안 날부터 3년이 지나면 소멸한다. 

피고는 한국군이 가해자임을 입증할 수 없고, 게릴라전으로 전개된 베트남전의 특성상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했지만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피해의 정도, 배상의 지연, 물가 및 통화가치의 변화에 따른 증액의 필요성 등을 고려해 위자료를 4000만원으로 산정했지만, 응우옌의 청구금액 3000만 100원 한도에서 배상금을 결정했다. 다만 소송을 제기한 2020년 11월 15일부터 2023년 6월 7일까지 연 5%, 그 다음 날부터 연 10%에 해당하는 지연금을 지급토록 했다. 

이번 판결은 사건이 베트남에서 발생했고 피해자가 베트남인, 가해자가 우리 공무원이라는 점에서 국가배상법에 해당된다고 보고 피고의 소 각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국군의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이 2015년 4월 8일 서울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수요집회에 참석해 김복동(앞줄 왼쪽)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와 함께 하고 있다. 뒷쭐 왼쪽이 서울지법의 1심 판결에서 승소한 응우옌 티탄이다. 2015.4.8  연합뉴스

변호인들에 따르면 베트남전 학살 피해자들이 문제 제기를 시작한 것은 20여년 전부터다. 퐁니 마을 학살과 관련해서는 2019년 4월 청원인 103명이 청와대에 청원서를 제출, 학살 사실 인정 및 사과, 피해 회복을 위한 적절한 조치를 요구했었다. 국방부는 한국군의 개입 사실이 입증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응우옌은 이날 대리인단이 연결한 화상 통화를 통해 "퐁리 학살사건에서 희생된 74명의 영혼들에게 오늘 이 기쁜 소식이 위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퐁리 마을 주민들에게 기쁜 소식을 나누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대리인단의 임재성 변호사는 기자회견에서 "피해자들의 배상 요구는 20년 전부터 있었지만 공식적으로 인정된 적이 없었다"면서 "사법부가 최초로 대한민국 정부가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판결"이라고 말했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는 시민언론 민들레에 보내온 논평을 통해 "이번 판결은 아직도 공백으로 남아 있는 베트남전 학살의 공백을 메우기 시작하는 역사적 사건"이라며 "일본군의 성노예 문제에 비분강개하면서도 가해자로서의 우리 역사에 침묵해온 위선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이라고 평가했다.

손 교수는 또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은 고립된 사건이 아니라 제주 4.3과 산청·함양·거창 민간인학살로부터 1980년 광주 학살에 이르는 일련의 흐름 속에서 파악돼야 한다"면서 "국내의 비극적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베트남전 학살 사건에 대해서도 진상 규명과 피해자 명예 회복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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