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 지원, 한반도 안보에 백해무익…러시아 관계 파멸
"무엇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한국의 경제적, 인도적 지원에 감사를 표한다. 한국이 지원을 계속하되, 더 했으면(step up) 한다. 군사적 지원이라는 구체적인 이슈는 결국 한국이 결정할 사안이라고 말하겠다."
지난 29~30일 방한했던 옌스 스톨덴베르크 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이 내놓은 말이다. 스톨덴베르크 총장은 직접적인 군사지원 요청을 하지 않았다. 우회적으로 전쟁 장기화로 나토 회원국들의 탄약고가 비어가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함께 지원 희망을 내비쳤다.
적어도 우리 정부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그가 윤석열 대통령과 박진 외교부 장관,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의 회동 자리에서 무기 지원을 공식 요청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비록 희미할지언정 그가 제시한 한국과 나토 간 군사적 협력 움직임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여름부터 본격화된 중국에 대한 나토의 강화된 위협 인식도 주목된다.
무기 직접 지원은 한·러 관계 파탄, 우리 안보에 악재
스톨덴베르크 총장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거론한 것은 지난 30일 최종현학술원에서의 질의 응답 과정에서였다. 그는 결정은 한국에 달렸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분쟁국가에 무기 수출을 금지해온 독일과 노르웨이, 스웨덴이 최근 우크라아나에 무기를 제공키로 했음을 우정 상기시켰다. 이어 "우크라이나는 더 많은 탄약과 더 많은 무기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고 있다"면서 "이를 확보하지 않는다면 러시아 침공군을 몰아내지 못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스톨덴베르크가 독일·노르웨이·스웨덴의 무기 수출 결정을 강조한 것은 역시 공격용 무기 제공을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유지해온 한국 정부의 노선 변경을 희망한 것으로 해석된다. 나토에 더해 미국이 무기 지원을 요청한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을 방산 수출의 호기로 판단하는 윤석열 정부가 얼마든지 방침을 변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31일 역시 방한중인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과의 공동기자회견 자리에서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에 관한 질문을 받고 "구체적으로 답변하지 않겠다"며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지난 30일 스톨덴베르크의 예방을 받으면서 "앞으로도 우크라이나 국민을 돕기 위해 국제사회와 협력해 가능한 역할을 하겠다"고 두리뭉술하게 말했다.
한국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은 한반도 안보에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이후 서방의 대 러시아 제재로 발이 묶인 한·러 관계를 파멸적인 상황으로 몰아감으로써 한반도 안보에 악재가 될 수밖에 없다. 직·간접적인 무기 수출로 악화된 무역수지를 다소 개선할지 몰라도 잃는게 너무 많은 선택이다.
한국, 폴란드·미국 통해 이미 간접 지원
한국은 이미 두 개의 나토 회원국에 국산 무기·포탄을 수출하고, 해당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군사적 지원을 하고 있다.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방산 수주액이 170억 달러에 달한 것은 폴란드에 무기 수출을 늘린 덕택이다. K239천무 다연장 로켓과 K2전차, K9 자주포, FA-50 훈련기 등의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폴란드는 한국산 무기가 도입되는데로 기존의 낡은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고 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지원으로 자국내 155㎜ 포탄 비축량이 줄어들자 한국산 포탄 10만 발을 수입해 이를 메우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에 공개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면서 한국의 직접적인 우크라이나 무기 제공을 레드라인으로 설정한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9일 모스크바 발다이 국제회의에서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나 포탄을 제공하면 러·한 관계는 파멸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독일·노르웨이·스웨덴이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결정한 까닭은 스톨덴베르크가 설명했듯이 러시아의 침공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한국은 누구로부터의 침공을 걱정하며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해야 할까. 그는 이 부분을 얼버무렸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가 절실하게 무기를 필요로 한다는 말을 되풀이 강조했다.
나토 '2022년 전략개념'에 중국 위협 명시
스톨덴베르크는 방한 1박2일 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한국과 나토의 안보는 서로 연결돼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안보협력 사안으로는 '사이버 안전' 만을 제시했다. "유럽에서 발생한 일은 인도·태평양에도 중요하고, 아시아에서 발생하는 일은 나토에 중요하다"면서 북한과 중국을 공동의 위협으로 지목했지만, 역시 연결논리가 빈약했다. 그는 '한반도 유사시 한국이 나토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정확히 어떤 일이 이 지역에서 일어날 것인가를 추측하는 것은 조심스러워야 할 것 같다"라며 즉답을 피했다.
스톨덴베르크는 "지난해 마드리드 나토 정상회의 이전까지 '중국'이라는 단어가 단 한번도 '나토의 전략적 개념'에 등장한 적이 없었지만, 이제는 나토 아젠다에 훨씬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면서 중국이 나토의 가치와 이해 및 안보에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군사적으론 중국이 △나토 영역에 도달하는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포함한 군 현대화에 대한 막대한 투자와 △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 강화 △남중국해에서의 위압적인 행동을 위협으로 꼽았다. '나토의 전략적 개념'은 나토의 기본 문서다. 마드리드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2022 개념'에 중국의 위협을 명시했다.
그러나 '나토와 한국의 새로운 협력관계가 중국과의 분쟁으로 이어지거나, 중국이 경제적으로 보복할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과도한 경제적 의존을 피하라고 충고했다. 그는 "자유무역이 번영을 촉진하지만 자유나 안보적 이해 만큼 중요하지는 않다"면서도 "한국과 유럽, 북미는 특히 중국산 생필품과 자원 및 희토류에 너무 의존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북한과 중국은 스톨덴베르크의 방한에 민감한 반응을 내놓았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30일 스톨덴베르크의 방한과 관련해 '아시아판 나토 창설을 부추기자는 것인가'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게재, "신냉전의 불구름을 몰아오는 대결 행각이자 전쟁의 전주곡"이라고 비난했다. 마오 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30일 브리핑에서 스톨덴베르크가 중국을 중대한 도전으로 지목한 것에 대해 "중국은 모든 나라들과 협력 파트너이지 도전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마오 대변인은 이어 "나토는 냉전식 사고와 대치하려는 사고를 포기하라"고 촉구했다.
북한·중국 "냉전적 사고" 반발
한국과 나토의 군사협력은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지만, 점차 협력 범위를 넓혀갈 것으로 보인다. 나토는 지난해 정상회의에 처음으로 한국과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 아시아 4개국을 초청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의 다자간 군사동맹인 나토와 아시아의 양자 동맹 사이를 연결, 중국의 위협에 공동 대응하려는 미국의 의도에서 비롯된 결정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위협은 아직 분명치 않다. 스톨덴베르크는 지난 30일 용산 대통령실로 윤석열 대통령을 예방하고 오는 7월 리투아니아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에 초청했다.
나토는 멀리서 협력을 구하지만, 정작 회원국 사이에도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입장이 갈린다. 헝가리와 크로아티아 등 일부 나토 회원국들은 우크라이나 공격무기 제공에 부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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