괌에 위치한 미 공군의 앤더슨 기지는 서태평양의 안보를 담당하는 전초기지다. 미국은 2004년부터 B-1B 랜서, B-52, B-2 스피리트(스텔스) 등 3종 전략폭격기를 로테이션 방식으로 상시 배치(CBP)해왔다. 펜타곤은 CBP가 동아시아 및 서태평양 동맹국들에 확장 억제력 제공과 안보 확약의 핵심요소라고 강조해왔다. 그런데 2020년 4월 17일 전략폭격기 3종을 돌연 미국 본토의 사우스 다코다주에 영구배치하고, 괌에는 수시 배치하는 방식으로 변경했다.
미 전략군 사령부는 당시 "전략폭격기를 본토에 영구배치함으로써 보다 멀리 광범위한 해외지점에서 작전할 수 있게 됐다"는, 다소 생뚱맞은 발표를 내놓았다. 그러나 랜드연구소의 국방전문가 티모시 히스는 CNN에 "전략폭격기의 괌 상시 배치는 중국 전략가들에게 쉬운 타겟을 제공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2015년 중국이 '괌 킬러'라고 불리는 동풍-26 미사일을 배치하고, 2017년 북한이 화성12형으로 '괌 포위사격' 위협을 제기한 데 따른 조치였다. 미국이 수십 년 동안 누려온 서태평양 제공권에 심각한 위협이 발생한 것이다.
섬과 섬을 이어 서태평양에서 제해권을 넓히려는 중국의 도련(島連·Island Chain)전략은 아메리칸 헤게모니의 주축인 미 해군에 '눈엣가시'다. 2010년까지 오키나와-대만-필리핀-보르네오를 잇는 제1도련선의 제해권을, 2020년까지 일본 오가사와라 제도-괌-사이판을 잇는 제2 도련선의 제해권을 장악한 뒤 2040년까지 인도·태평양에서 미 해군을 억제한다는 전략이다. 이중 제1, 제2 도련선은 이미 상당 부분 구축된 것으로 평가된다. (조성렬 북한 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동아시아에서 미·중이 군사적 경쟁을 벌여온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 미국은 그러나 전쟁을 계기로 중·러 전략적 협력의 위험성을 극대화하며 아시아에서의 군비확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은 여전히 국방예산과 국방기술 면에서 미국에 족탈불급이다. 그러나 미국은 탈냉전 뒤 서태평양에서 누려온 압도적인 지위가 흔들리는 것을 '위협'으로 규정하고 대비해왔다. 인민해방군이 2개의 항모를 취역시키고 1개를 추가 건조하는 등 해군력을 급속히 신장시키는 것도 주목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2021년 출범과 동시에 중국에 협력(cooperation)과 경쟁(competition)을 같이 하자면서 '협력적 경쟁(coopetition)'을 제안했었다. 기후변화와 펜데믹 등의 문제에선 협력하되 첨단기술과 군사 부문 등에선 경쟁하자는 제안이었다. 이후 전개되는 양상을 보면 방점은 분명하게 경쟁에 놓였다. 바이든 행정부는 한·일·대만과의 '칩(CHIP)4 동맹'으로 중국에 대한 반도체 장벽을 쌓는 한편, 미·일·호주·인도의 다자간 안보협의체 쿼드(Quad)와 호주·영국·미국 간 핵잠수함 동맹을 중심으로 군사적 경쟁에 몰두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바이든의 행보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바이든은 "대만 방위를 위해 미군을 보낼 수 있다"는 입장을 4차례나 내놓았다. 그때마다 마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을 비롯한 행정부 고위 관리들이 "미국의 대만정책은 바뀌지 않았다"는 말로 어르고 달래는 전략을 구사했다. 하지만 미국이 1979년 미·중 수교 뒤 유사시 대만 무력 개입에 대해 유지해왔던 '전략적 모호성'이 흔들리는 건 분명하다.
바이든은 2023 회계연도 국방예산으로 사상 최대 규모인 8580억 달러(약 1120조원)를 확보했고 밖으로는 더 큰 전략적 기회를 얻었다. 유럽에서 독일을 비롯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들이 자발적으로 군비확장에 나섰다면,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지난해 12월 국가방위전략을 개정, 적기지 반격능력(실제론 적기지 선제공격능력)을 확보할 발판을 마련했다. 특히 독일과 일본의 재무장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미국에 선사한 망외의 선물이다. 각국이 군비를 확장할수록 미 방산업체는 미증유의 호황을 누린다.
한·미 동맹 및 한·미·일 군사협력을 신봉하는 윤석열 정부가 '미국의 망토'에 먼저 뛰어들어온 것도 미국엔 행운이었다.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은 지난달 31일 서울을 방문, "전략자산을 더 많이 전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는 1일과 3일 미 공군의 B-1B 2대와 F-22, F-35B가 한국군 F-35A 등과 확장억제 공약 실행력을 시위하는 연합공중훈련을 벌였다.
오스틴 장관은 1일 마닐라를 방문, 대만 남쪽 루손섬의 필리핀군 기지 4곳에 미군을 순환 주둔시키기로 합의했다. 미군은 현재 필리핀군 기지 5곳에 병력을 순환 배치하고 있다. 필리핀은 미국에 남중국해(필리핀 서해) 및 대만해협 방위에 요긴한 전략적 요충이지만, 1990년대 수빅만 미 해군기지와 클라크 공군기지를 폐쇄한 뒤 외국군의 영구주둔을 헌법으로 금지했다.
추가된 기지 4곳에는 유사시 대만에 투입될 미 육·해·공군 및 해병대가 각각 주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이 난세이 군도에서 미·일 국방협력을 강화키로 함으로써 대만 북쪽에 교두보를 마련했다면, 루손섬 기지들은 유사시 대만 남쪽에서 진격의 발판이 된다. 미국은 태국과 오는 27일부터 한국군이 포함된 다국적 연합훈련(Cobra Gold)을 대규모로 실시키로 했다. 한·일이 참여하는 태평양 섬나라들과의 '푸른 태평양 대륙을 위한 2050 전략'은 서정적인 이름과 달리 미·중 간 군사기지 확충 경쟁을 포함한다.
나토도 품앗이를 하고 있다. 옌스 스톨텐베르크 나토 사무총장이 지난달 말부터 한국과 일본을 잇달아 방문한 것은 미국의 중국 압박과 무관치 않다. 같은 테마의 변주곡인 셈이다.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을 우회적으로 요청했지만, 그보다 아시아에서 미·중 군사적 대치의 전선을 넓히려는 포석이다. 나토는 지난해 마드리드 정상회의에 사상 처음으로 한·일·호주·뉴질랜드 등 아시아 4개국 정상을 초청했다.
서태평양은 평화시 한국의 원유와 원부자재, 수출품의 대부분이 지나가는 해상교통로이자, 유사시 미국 '확장억제력'의 거점이다. 미·중 간 잠재적인 분쟁에 대비하는 것은 긍극적으로 우리와도 무관치 않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급속도로 확대되는 군비경쟁은 동아시아를 상호 위협의 악순환으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윤석열 정부는 명시적으로 미국의 군사주의에 편승함으로써 대만 해협에서 출렁이는 파고에 연루될 위험을 안게 됐다.
동아시아에 드리워진 먹구름은 미·중 모두의 책임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을 전후해 군사력으로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쪽은 미국이다. 바이든의 군사주의를 비판해온 미국의 아시아 안보 전문가 밴 잭슨의 표현을 빌면 "미국은 '선군(Military First)정책'으로 아시아를 화약고로 만들고 있다."(포린 어페어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지난 1월 9일 발표한 미·중의 대만해협 모의전쟁의 결과는 승패와 상관없이 미국은 군사적 헤게모니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중국은 공산당 정권의 기반이 흔들리는 결과가 예상된다. 모두가 지는 게임인 것이다.
미국의 ‘선군정책’ 동아시아 군비경쟁 부추긴다 < 외교안보 < 기사본문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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