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할 때 더 빛나는 우리?' 11개월 뒤 대한민국 강원도에서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주최하는 세계적인 올림픽 행사가 열린다. 제4회 청소년동계올림픽(YOG)이다. 그런데 국가적인 대사를 앞둔 지금, 주최국에서조차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희한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YOG는 성인올림픽, 장애인올림픽과 함께 IOC가 주도하는 3대 올림픽. '2024 강원'은 비유럽권에서 열리는 첫 동계대회다. 강원도가 2020년 1월 단독 신청해 96%의 지지로 유치했다.
15~18세 청소년이 참가하는 YOG는 성인올림픽과 달리 경쟁과 배움, 경험의 공유에 방점을 둔 축제마당이다. '더 높이, 더 빨리, 더 강하게' 실력을 겨루되, 경쟁이 테마가 아니다. '청소년을 위한, 청소년과 함께하는, 청소년에 의한(For, With, and By Youth)' 축제의 마당을 기본 정신으로 한다. 대회장 안뿐 아니라 대회장 밖에서 아이들의 참여와 교육, 문화 활동이 성공 여부를 가늠한다. 유럽지역 청소년올림픽이 '축제'로 불리는 까닭이다. 강원 대회는 인스브루크(2012), 릴리함메르(2016), 로잔(2020)에 이어 비유럽권 국가에서 열리는 첫 동계 YOG이다. 참가선수들만 1900명으로 평창동계올림픽(참가선수 2833명)에 못지않은 글로벌 행사다.
직무 유기에 가까운 홍보, 준비 안 된 경기 시설
그러나 현재 진행 상황을 보면 정부와 국회, 강원도, 대한체육회가 모두가 '국가적인 실패'를 향해 질주하는 것 같다. 대회 유치 2년여 동안 정부와 강원도, 대한체육회 등은 대회 준비는 물론 YOG의 의미에 대한 인식조차 흐릿하다. IOC와 강원도가 기획했던 '평화'는 총체적인 부실 속에 물거품이 되고 있다.
국민 대다수가 대회 자체를 모르고 있는 것은 조직위원회의 홍보활동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조직위는 지난 2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2기 조직위 출범식을 갖고 '사격 황제' 진종오 선수와 '빙속 여제' 이상화 선수를 공동조직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지난 1월에는 공식 마스코트 '뭉초(Moongcho)'를 선정했다. 그뿐이다. 대회 유치 2년 동안 무엇을 해왔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홍보의 실패라고 하기엔 홍보의 직무 유기 수준이다.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의 관계자들이 참석해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 민주당 김경협·임오경 의원이 연 토론회에서 그 일단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였던 제갈성렬 의정부 시청 빙상 총감독은 "동계올림픽을 치른 나라 중에서 경기 시설이 줄고, 선수층이 죽어가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라면서 "강릉 국제빙상장은 몇 년째 다른 용도로 대여돼 도저히 경기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평창동계올림픽 뒤 단 한 차례도 국제경기를 치르지 않았다.
그는 "성인올림픽의 경우 보통 대회 1년 전이면 프리 대회를 연다"라면서 "YOG가 다소 성격이 다르지만, 대회 시설은 어떻게 준비하는지 정보도, 홍보도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설상 종목이나 슬라이딩 센터, 컬링 등 다른 경기 시설에 대해서도 어떠한 정보도, 준비상황도 깜깜이다.
정치가 짓밟은 '눈 없는 나라' '난민' 아이들의 꿈
토론회에 참석한 동계 스포츠인들 사이에선 "올림픽이라는 큰 잔치를 유치해놓고, 과연 대회를 치를 마음들은 있는지, 대회를 치를 수는 있는지조차 불투명하다"는 통탄이 나왔다. "모두가 막연하게 지켜보는 상황"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이대로는 국가적인 망신을 넘어 국가적으로 거대한 실패가 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팽배했다.
지난 6월 1일 지방선거에서 강원지사가 교체된 이후 어른들의 정치가 아이들의 스포츠 페스티벌에도 악영향을 끼쳤다. 강원도는 최문순 지사 시절인 지난해 아프리카를 비롯한 '눈이 없는 나라' 청소년들에게 대회 참가할 기회를 주기 위한 지원 사업에 착수했다. 지난해 3월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아프리카 국가올림픽위원회 연합(ANOCA) 총회에 '2024 강원' 지원위원회 김경성 위원장을 파견, 아프리카 54개국과 업무협약을 체결케 했다.
무스타파 베라프 ANOCA 회장이 적극 협력함으로써 아프리카 13개국 113명의 청소년 선수단을 평창으로 초청, 2주간 전지훈련을 받게 했다. 올해는 아프리카 난민선수단과, 우크라이나 난민선수단을 구성해 전지훈련을 받게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김진태 지사의 강원도는 이를 철저히 외면했다. 국회 역시 난민선수단 지원을 위한 예산(15억원) 배정을 외면했다.
아프리카와 우크라이나 난민선수단 훈련지원을 중단한 것은 단순히 국내 정치가 국제무대에서 몽니를 부린 게 아니다. 어른들의 정치가 아이들의 꿈에 재를 뿌린 격이다. 정부와 지자체, 국회 등 국가 전체가 개념 없이 글로벌 행사를 앞두고 있다.
사라진 평화, 손 놓은 어른들
최문순의 강원도는 2020년 1월 대회 유치 때부터 '평화'를 기획했다. IOC가 주최하는 올림픽은 대회명에 도시 이름을 넣지만, 올림픽 역사상 처음으로 광역지자체 이름을 넣은 이유다. IOC와 강원도는 분단 현실을 감안, YOG라도 남북 강원도가 공동 개최할 길을 열어놓았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남북한 정부가 합의하면 IOC는 공동 개최를 성사하기로 약속했다.
물론 악화된 한반도 정세와 국제정세 탓에 '2024 강원'이 희망한 평화는 녹록지 않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회담이 실패한 뒤 남북관계는 갈수록 가팔라지고,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되면서 국제정세마저 얼어붙었다. 그렇다고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체육회, 강원도가 모두 남북관계 탓만 하고 있는 태도가 용납되는 건 아니다. 역설적으로 이럴 때일수록 아이들의 스포츠 페스티벌이 평화의 언어를 발할 절호의 기회다. 세계 아이들이 얼음을 지치고, 눈발을 달리겠다는데, 굳이 북한 아이들만 예외로 둬야 하겠는가. 지금이야말로 IOC가 역할을 할 계제이건만, 정부가 스포츠 외교를 하려는 생각조차 갖고 있지 않으니 성사될 가능성은 0%다.
'2024 강원' 대회는 우리 청소년들의 글로벌 인지도를 높이는 '글로벌 공교육의 체험학습장'이 될 절호의 기회다. 대회 마스코트 '뭉초'는 '뭉치다'라는 말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지금 상태로는 거대한 실패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저 태양보다 더 높은 곳에, 함께 할 때 빛나는 우리." 대회 공식 주제가 '우리는 높이(We Go High)'의 가사다. 아이들은 높이 가고 싶어하건만, 어른들은 낮게 가는 (They Go Low), 기막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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