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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가 나토에 가입한 까닭

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by gino's 2023. 4. 7.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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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31번째 회원국이 됐다. 핀란드가 소련과 서방 사이의 중립국에서 서방 집단 동맹의 일원이 된 것이다. 페카 하비스토 핀란드 외교부 장관은 4일 벨기에 브뤼셀의 나토 본부에서 공식 가입문서를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에게 전달했다. 나토 본부 앞 회원국 국기 게양대에 핀란드 국기를 게양하는 의식도 진행됐다. 공교롭게 나토 창설 74주년이었던 이날 기념식에 참석한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은 "오늘은 핀란드에 위대한 날"이라고 선언했다.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가 지난 2일 총선에서 지지를 호소하며 미소를 짓고 있다. 2023.4.2. EPA 연합뉴스

핀란드의 '우크라이나화'?

핀란드의 나토 가입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대표적인 지정학적 변화로 꼽힌다. 무엇보다 나토의 동진을 우크라이나 침공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의도가 정반대의 결과로 귀결됐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에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블링컨 장관은 나토 본부에서 "푸틴 씨(Mr.푸틴)에게 감사하고 싶은 유혹이 든다"라며 푸틴 대통령을 한껏 조롱했다. "한때 자신이 막으려던 일이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되레 앞당겨졌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 일각에선 우크라이나의 '핀란드화(Finlandization)'가 평화해법의 하나로 제기됐었지만, 오히려 핀란드가 '우크라이나화한' 셈이다. 서방은 핀란드의 나토 가입으로 당장 얻을 전략적 이해를 크게 보고 있다.

우선 1200여㎞였던 나토와 러시아와의 국경선이 두 배 이상(2500여㎞)으로 늘었다. 유사시 공격 공간이 그만큼 늘어난 것이다. 핀란드는 대책 없이 나토에 국방에 맡기려던 우크라이나와 달리 준비된 군사 강국이다. 특히 대포 전력은 기존 나토 회원국 중 최상이다. 자주포 700대와 로켓발사대 100개 등 1500문의 포를 보유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포격전에서 우위를 점할 전력이다. 지난해 11월 미국 윌슨 센터의 분석에 따르면 '전국민 국방(Civilian Total Defense)' 체제를 갖추고 있어 동원 가능한 병력이 90만 명에 달한다. 노키아 보유국답게 5G 정보통신과 사이버 안보에도 강점을 갖고 있다. 

조만간 나토 회원국이 될 스웨덴과 함께 노르딕방위협력(NORDEFCO)의 일원으로 나토 안에 또 다른 군사동맹 체제를 구축하는 효과도 있다. 스웨덴·노르웨이·핀란드·덴마크 등 4개국 국방장관은 지난달 25일 독일 람스타인 공군기지에서 모여 연합 편대를 구성할 것이라 발표했다. F-35와 그리펜 기종(스웨덴) 등 4개국 공군이 보유한 최신 전투기 250여 대를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 통합 운영한다는 것이다. 이중 F-35는 재래식 무장과 핵무장이 모두 가능한 이중용도 항공기(DCA)이다. 노르딕 국가 간의 군사협력은 전체 해안선의 53%가 북극해와 면해 있는 러시아를 상대로 북극해 방위에 듬직한 방책이 된다. '북극 실크로드 이니셔티브(Polar Road initiaive)'를 내걸고 북극 항로에 뛰어든 중국도 동시에 견제할 수 있다. 핀란드·스웨덴의 나토 가입은 미국 입장에서 전략적 횡재에 가깝다.

유럽 대러시아, 대중 대응력 강화

서방 언론은 핀란드의 탈중립화를 강대국 간 세력균형의 관점에서 본다. 하지만 나토의 대러시아 전선이 늘어났다는 말은 역으로 핀란드가 동쪽 위협에 그만큼 노출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냉전의 한복판에도 중립국으로 평화와 번영을 누려왔던 핀란드가 이제 나토의 최일선 국가가 됐기 때문이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핀란드의 나토 가입을 '러시아의 안보와 국익에 대한 공격'이라면서 “러시아는 전술적, 전략적 차원에서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나토는 지난 2일 총선 결과 새로 출범할 핀란드 정부를 상대로 협상에 돌입할 예정이다. 핵심은 나토군의 핀란드 주둔 및 핵무기 배치 여부다. 중도좌파 사민당(SPD)의 산나 마린 총리는 "나토 가입 뒤에도 외국군의 영구주둔과 핵무기 배치에 반대한다"라는 입장이었다. 20세기에만 러시아와 두 차례 전쟁을 치른 핀란드가 과도한 위협에 노출되는 것을 선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푸틴은 2016년 7월 헬싱키 방문 당시 "핀란드가 나토에 가입한다면 접경지역에 군병력을 추가 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핀란드가 가입하면) 나토는 마지막 핀란드인이 남을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도 했다. 푸틴 대통령이 최근 영국의 대우크라이나 열화우라늄탄 지원에 "마지막 우크라이나인이 남을 때까지 싸우자는 것"이라고 경고한 것과 같은 표현이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지난해 5월 러시아가 핀란드 국경에 12개 사단 병력을 주둔시킬 것이라고 발표했다. 

역사적으로 핀란드는 스웨덴과 러시아 사이에 존재했다. 수백 년 동안 강대국 스웨덴의 일부였다가 1809년  제정 러시아 내 공국으로 귀속됐다. 1차대전 당시 독립을 추구하는 과정에 볼셰비키가 지원한 적군과 백군 간 내전을 겪었다. 2차 대전 기간에는 소련과 두 차례 전쟁을 치렀다. 영토의 11%를 할양하고 독립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다. 2차 대전 뒤에도 마샬플랜의 지원을 거부하면서 미국과 소련 사이에서 중립을 택했던 연유다.

사울리 니니수퇴 핀란드 대통령(왼쪽)이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과 함께 지난 4일 브뤼셀의 나토 본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4.4. UPI연합뉴스

마린의 사민당 경제난에 고전

탈냉전 뒤 발트 삼국이 나토에 가입했지만, 핀란드는 현상 유지를 택했다. 2015년 유럽연합(EU)에 가입했을 뿐이다. 역사적으로 얽혔던 러시아와의 관계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기를 맞았다. 지난해 EU의 러시아 제재에 동참함으로써 러시아의 비우호 49개국 리스트에 올랐다.

미국은 핀란드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탓에 갑자기 노선을 변경한 듯 선전하지만, 기실 핀란드는 탈냉전 이후 약 30년 동안 몇차례 되풀이된 국민적 토론의 결과로 나토 가입을 선택했다고 봐야할 것 같다. 중립국이건, 나토 회원국이건 평화를 지키려는 방법론적 선택일 뿐이다. 동아시아 분단국 지도자가 유난을 떠는 것 처럼 그 무슨 가치 동맹이니,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니 하는 '거품'이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핀란드 의회가 나토 가입안을 188대 8의 압도적인 표 차이로 의결한 것은 국론이 정리됐음을 말해준다.

마린의 SPD는 러시아에 맞서는 결정을 했지만, 역설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가스·유가 인상에 따른 경제난 탓에 원내 1당의 지위를 빼앗겼다. 재정적자를 집중적으로 파고든 중도우파 국민연합당(NCP)이 48석을 얻어 제1당이 됐다. SPD(43석)는 NCP와 극우 민족주의 정당 핀란드인당(Finns, 46석)에 밀려 원내 3위 정당이 됐다. 외교·국방을 주도하는 니니스퇴 대통령도 NCP 소속이다.

2019년 말 34세의 세계 최연소 지도자로 등극한 마린은 코로나19 대책 및 우크라이나 전쟁 뒤 러시아 제재 및 나토 가입을 결정하는 등 인상적인 리더십을 펼쳤다. 지난해 8월 음주와 가무 동영상이 공개된 뒤 자진해서 마약 검사를 받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슈퍼스타 총리'라는 평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6년 연속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핀란드는 지난 20일 발표된 유엔 지속가능한발전 솔루션 네트워크의 연례 '세계행복 보고서'에서 6년 연속 가장 행복한 나라로 꼽혔다. 평화와 번영에 더해 행복까지 얻었던 것은 중립국으로서였다. 핀란드의 선택이 북유럽 지정학과 함께 국내에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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