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리포트 김진호 특파원
봄이 되면 워싱턴 시내 한 구석에 ‘한국바람’이 분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새로운 시작, 미·한동맹’ 2차보고서 발표회를 시발로 서울·워싱턴포럼 등이 이어졌다. 반복되는 레퍼토리다. 아주 가끔 영감을 주기도 하지만, 대개 고만고만한 한반도 전문가들이 어제는 이곳, 내일은 저곳에서 별 차이 없는 내용을 되풀이한다. 많은 경우 우리 국민의 세금으로 치러진다.
그나마 국내 신문사들이 기업체 돈을 당겨와 벌이는 무슨 포럼이니, 무슨 콘퍼런스니 하는 행사들은 줄었다. 주제도 어슷비슷하다. 북한핵 위기가 없었으면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단골 주제다. 창조적인 아이디어도, 긴장감도 없는 이런 행사는 졸음 몰려오는 봄날 오후와 사촌이다. 하지만 북한의 장거리 로켓발사 직후인 지난 6일 ‘동아시아 평화 안정의 미래’를 주제로 민주평통자문회의와 존스홉킨스대학 미·한 연구소가 함께 열었던 토론회에서는 느닷없는 청중의 질문으로 작은 파격이 있었다.
“여러 패널의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반도 통일에서 미국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금석 콜로라도 덴버 평통 협의회장의 질문이었다. 한바탕 분석과 전망 등을 마친 패널들 사이에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자금줄인 한국경제연구소(KEI)의 잭 프리처드 소장은 느닷없이 “미국은 남북한 통일을 전적으로 지지하되, 남한 국민의 선택에 따른 통일이길 바란다”는 미 행정부의 공식입장으로 갈음했다. 국무부 부대변인 출신의 앨런 롬버그 스팀슨센터 연구원은 “그건 한국민의 문제이지 미국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을 잘랐다. 조엘 위트 컬럼비아대 동아시아연구소 연구원은 아예 코멘트를 삼갔다.
“남북한이 영원히 갈라져 있을 수는 없다.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20~30년이 지난 뒤, 아니면 그 전에 우리는 더이상 두개의 코리아에 대해 말하지 않게 될 것이다.” 사회를 보던 <두개의 코리아>의 저자 돈 오버도퍼의 마침말에서 그나마 사유의 흔적이 만져졌다. 국무부 관리들이나 한반도 전문가들도 통일에 대해 물으면 입을 다문다. 심각하게 고민해본 적이 없다는 말이다.
최근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미국이 중국의 대북 영향력을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이 나온다. 중유·식량지원 줄을 잡고 있는 중국에 기대려는 역대 미 행정부의 입장을 두고 대북정책을 중국에 ‘아웃소싱’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미 동맹이 있는 한 통미봉남은 없다”고 되풀이하는 정부는 북핵문제를 미국에 아웃소싱한 꼴이다. 정부는 정책을, 관변·민간 전문가들은 한반도 문제 해법 아이디어를 미국에 아웃소싱한다.
“우리는 돈들여 미국 전문가들 말을 듣고, 신문에 무슨 행사했다고 보도하면 할 일 다했다고 생각하지만, 실효가 없는 것 같다. 차라리 유대인들처럼 매년 미국의 차세대 지도자들과 관리, 전문가들을 서울로 불러들여 친한파로 의식화시키는 게 낫지 않을까.” 우리 생각을 키우고, 우리 사람을 만들자는 오 회장의 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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