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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워싱턴리포트

북핵위기 속 한국은 안보전략 있나

by gino's 2009. 6. 8.

김진호 특파원


정치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정치적 고려를 하는 걸 무작정 탓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치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 안보상황에도 근시안적 꼼수를 둔다면 문제다.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권부 주변에서 장마철 폐수를 흘려버리듯 내뱉는 언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본인들 스스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가입하더라도 달라질 것이 없다”면서 우정 북한의 핵실험 뒤 가입을 발표하더니 “적이 1발 쏘면 3발 응사하라”는 식의 태세를 강조하고 있다. 과거 정부와 달리 북한의 도발에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강조하는 건 자유다. 문제는 정부가 퍼뜨리는 대북 강경 분위기 탓에 정작 2차 핵실험의 엄중한 의미에 대한 인식이 흐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워싱턴의 군사·정보통들은 이상하리만큼 북한의 핵실험 결과에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 핵실험을 두 번째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지, 구체적인 실험결과는 그 다음 문제라는 말이다.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을 비롯한 미군 지휘부는 ‘현시점’에서 북한의 도발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핵탄두의 소형화에 성공하고 대륙간탄도미사일 능력(사거리 5500㎞·대기권 재진입 수준)을 갖춘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미국이 우방국이 아닌 본토의 위협이라고 판단하는 순간, 음울한 시나리오가 담긴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는 것이다. 전례로 보아 미국의 선택은 두 가지다.

북한의 새로운 미사일 발사시설 (출처: 경향DB)



1990년대 빌 클린턴 행정부는 북폭을 심각하게 고려했다. 영·프·중·러 등 공인 핵보유국 외에 핵무기를 갖고 있는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 가운데 유일하게 안심할 수 없는 국가(파키스탄)와는 친구가 됐다.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은 최근 한 토론회에서 군사적 대응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에스컬레이션(상황의 고조) 방안을 포함해야 하며 그 끝에는 모종의 군사적 방안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페리가 거듭 강조했듯이 북한 내 핵무기·물질의 소재를 모르는 지금 90년대식 북폭론은 시효가 끝났다. 뒤집어보면 이제 미국이 검토할 대북 군사행동은 규모와 성격이 달라진다는 말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4년 임기 안에 북핵문제 해결을 낙관할 정도로 순진한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최근 프라하 연설에서 밝힌 ‘핵 없는 세상’에 대한 목표의식은 단호하다. 북한이 끝까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북·미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 어떤 한국 정부도 대북공격을 승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어떤 미 행정부도 미 본토의 위협을 좌시할 수 없다.

클린턴 행정부는 북폭을 앞두고 김영삼 정부와 사전협의를 하지 않았다. 오바마 행정부는 사전협의를 할 것이라고 기대해보자. 그럼에도 한국과 미국의 국익이 극명하게 갈리는 상황에서 미국의 선택이 어느 쪽으로 기울지는 그리 생각하기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든, 친구로 만들든 한국은 스스로의 전략과 구상을 갖고 있어야 한다. 물론 쉬운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큰 그림의 전략을 고민하는 모습이라도 보았으면 한다. ‘입심’은 이미 넘치도록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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