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부 장관이 군사대표단을 이끌고 평양을 방문한다. 27일 북한의 6·25 정전협정 7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한국전쟁의 공식 참전국이 아닌 러시아가 국방장관을 단장으로 대표단을 파견하는 것은 지극히 이례적이다. 또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북한이 러시아를 적극 지지해온 반면에 남한은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고 우크라이나에 직간접적인 지원을 하는 상황에 이뤄지는 방문이다.
조선중앙통신은 24일 쇼이구 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러시아 군사대표단이 조국해방전쟁 승리 70돌에 즈음해 축하 방문한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이어 군사대표단 방문은 전통적인 양국의 친선관계를 시대적 요구에 맞게 승화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쇼이구 장관은 북한 당 중앙위원회와 북한 정부 초청으로 평양을 찾는 중국 대표단과 함께 방북하는 것으로 평양에서 열릴 열병식을 비롯한 기념행사에 참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조선중앙통신은 중국 측 방문 인사들에 대해서는 '군사대표단'이 아닌, '당 및 정부 대표단'이라고 표현했다.
우리 외교부는 25일 중·러 대표단의 방북과 관련해 "중·북, 러·북 관계가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기자들을 만나 "정부는 중·북간, 러·북간 교류를 포함한 한반도 정세 관련 사안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과 러시아가 자국 대표단의 평양 방문 사실을 우리 측에 알려왔느냐는 질문에 "한·중, 한·러 양국은 필요한 소통을 하고 있다"는 말로 얼버무리면서 사전 통지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
외교부가 이례적으로 러시아와 중국 대표단의 방북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두 갈래로 해석된다. 우선 지난 18일 핵탄두를 적재한 미국 전략핵잠수함(SSBN) 켄터키함이 42년 만에 한국을 방문하고,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비롯해 단거리탄도미사일(SRBM)과 순항미사일 등을 잇달아 발사하는 등 군사적 긴장이 높아진 상황에서 이뤄지는 방북이기 때문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남북관계 복원은커녕 한·미 동맹과 한·미·일 군사협력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가운데 북·중·러의 군사협력 가능성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음을 말해준다.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후 한·러 관계는 악화 일로를 걷고 있다. 윤 정부는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는 한편, 직간접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해왔다.
윤석열 대통령은 리투아니아 빌뉴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참석에 이어 지난 15~16일 키이우를 전격 방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지금 우크라이나가 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안보를 담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히는 등 노골적으로 반러 행보를 보여왔다.
주한 러시아 대사관은 이에 대한 시민언론 <민들레>의 입장 표명 요구에 "러시아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에 깊은 주의를 기울였다"면서 "특히 대한민국이 살상무기를 지원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계속 유지되고 있는 점을 주목한다"고 밝혔다.
한·미·일 군사협력이 갈수록 확대되는 가운데 러·북이 군사협력을 재개한다면 한반도 안보에 획기적인 변수가 될 수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모스크바 발다이 국제회의에서 한국의 대우크라이나 살상무기 지원을 양국 관계의 금지선(red line)으로 설정했다. 푸틴 대통령은 한·러 관계의 파탄은 물론 러·북간 군사협력 가능성 등 두 가지를 경고했다.
러시아 정부는 이후 같은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워싱턴 방문을 앞둔 지난 4월 19일 로이터 통신 인터뷰에서 민간인 규모 희생 등의 경우에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전달할 수 있다고 말하자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우크라이나 무기 전달을 "공개적인 반러시아 적대행위로 간주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드레에 쿨릭 주한 러시아 대사는 같은 달 21일 시민언론 <민들레> 인터뷰에서 "무기 지원 가능성을 시사한 것 자체가 (한국이 보여온) 비우호적 입장의 반영"이라면서 "무기 전달 경우 한반도 사안에서 러시아와 한국의 협력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단언한 바 있다.
정부가 쇼이구 장관의 방북 자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한·러 관계가 악화된 가운데 북·러 관계가 진전되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조선중앙통신은 북·러 공동선언 채택 23주년이었던 지난 19일 "새 세기 조로 친선의 리정표를 마련해준 력사적 선언"이었다면서 양국 관계의 강화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북·러 공동선언은 푸틴이 2000년 평양을 방문해 맺은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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