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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정동탑

<정동탑> 인천과 노르망디

by gino's 2012. 2. 25.

[경향신문]|2005-09-20|22면 |45판 |오피니언·인물 |컬럼,논단 |1445자

 

전쟁은 끝났고, 푸른 눈의 장군은 자리를 지켰다.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 동상을 둘러싼 진보세력과 수구세력의 갈등은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바꿔놓지 못했다. 맥아더가 노근리를 비롯한 양민학살의 주범이자 냉전의 상징이라고 몰아대는 철거론자들과 자유대한의 수호 군신(軍神)이라는 동상 사수론자들의 입장은 애시당초 접점을 찾기 어려운 문제였다.

철거론자들의 주장대로 동상의 목에 밧줄을 걸어 끌어내린다면 결과적으로 한.미동맹의 근간을 부인하는 자충수가 된다. "중공군의 전진을 지연시키기 위해 26개의 원자폭탄이 필요하다"고 말했던 그의 호전성을 재평가하는 것과 동상을 철거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우방국에서 존경받는 인물의 동상을 철거한다면 상대방 국가의 국민감정을 덧들일 수밖에 없다.

사수론자들의 주장 역시 쉽게 수긍할 수 없다.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이 서울 수복과 한반도 남쪽의 공산화를 막았다는 점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렇다고 맥아더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라고 매도하는 시대착오적인 논리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동상의 존폐와 상관없이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의 우상으로 떠받들어졌던 맥아더에 대한 재평가는 불가피해 보인다.

인천은 종종 프랑스 노르망디와 비교된다.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이 한반도 남쪽의 적화를 막았다면, 아이젠하워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나치의 군홧발 밑에서 유럽을 해방시킨 출발점이 됐다. 2차대전 전승 60주년 기념식이 열렸던 지난해 6월6월 노르망디 오마하 해안에서는 성대한 축제가 벌어졌다.

2차대전의 적이었던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물론, 프랑스에서 유독 인기가 없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도 환대를 받았다. 프랑스인들은 "아이크(아아젠하워의 애칭)가 없었다면 유럽이 나치의 지배에서 더 늦게 해방됐을 것"이라며 감사를 표하는 데 인색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난 15일 인천상륙작전 55주년 기념일이 축제가 되지 못한 것을 한탄할 필요는 없다. 노르망디와 인천은 다르기 때문이다.

아이크가 프랑스를 해방시켰던 과정에는 피란민 대열을 향한 기총소사가 없었다. 그는 패퇴하는 독일군을 더 빨리 제압하기 위해 원자탄을 투하, 대서양에서 지중해까지 프랑스를 수십년 동안 생명이 살 수 없는 지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어록을 남기지도 않았다.

마찬가지로 프랑스 내에서 '아이크는 자유민주주의의 수호신'이라는 평가도 없으며, 국가안보에 필수적인 미군의 주둔을 강력히 요청하는 넋나간 프랑스인도 없었다. 오마하 해안은 일종의 2차대전 테마파크가 조성돼 관광명소가 된 지 오래다. 언젠가 맥아더 동상쯤은 관광객들을 유혹하는 풍경의 일부가 됐으면 한다. 물론 한국전쟁에서 그의 공과가 분명히 가려진 뒤에야 가능한 일이다.

한국전쟁을 "마르스(전쟁의 신)가 선사한 선물"이라면서 70대 노욕을 불태우는 과정에서 빚어진 오류를 '전쟁영웅'이라는 베일로 마냥 덮어둘 수 없음이 분명해졌다.
김진호 국제부차장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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