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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정동탑

<정동탑> 적과 동지

by gino's 2012. 2. 25.

[경향신문]|2003-01-30|07면 |45판 |오피니언·인물 |컬럼,논단 |1913자

 

나치 친위대(SS) 총책임자 히믈러는 독일이 항복하기 직전에 프랑스의 샤를 드골 장군에게 밀서를 보냈다. 히믈러는 "앵글로 색슨과 협력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독일과 프랑스가 울력으로 미국과 영국에 대항하자는 제안을 했다. 드골은 이를 묵살했지만 국제정세를 읽는 히믈러의 식견까지 무시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프랑스 지식인들 사이에서 19세기 이후 3차례의 전쟁을 치른 독일과 프랑스가 최대 우방이 된 연유를 설명할 때 종종 인용되는 일화다. '위대한 프랑스'를 꿈꾸면서도 역사적 라이벌인 영국 런던에서 레지스탕스를 지휘했던 드골은 자존심에 상처를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노르망디로 상륙한 연합군 병사들을 반기면서도 한편으론 태반이 미국과 영국, 호주, 캐나다 등 앵글로 색슨계였던 그들을 보던 심사가 착잡했을 법하다.

전후 예상대로 미국의 헤게모니가 급속하게 확산되자 드골은 1963년 1월22일 '적과의 동침'을 선택한다. 피흘려 싸우던 독일과 우호협력조약(엘리제조약)을 체결한 것이다.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개선은 어찌보면 한번도 전쟁을 치른 적이 없는 동.서독의 통일보다도 더 기적적인 사건이었다.

드골의 반란은 역사의 에피소드로 끝났다. 미국은 당시에도 이미 압도적인 힘을 행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주적인 유럽을 바랐던 이상이 실현되지 않았더라도 독.불간의 화해는 유럽연합(EU)이라는 공영의 화수분을 남겼다. 양국관계를 유럽이라는 큰 틀 안에서 보는 안목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북한핵 위기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독.불관계는 동북아의 미래에 상서로운 모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양국간 화해와 협력이 유럽 공영의 출발점이었다면 동북아 평화의 매듭은 한반도 긴장완화에서 풀어야 한다. 사할린 및 시베리아 가스관의 북한 통과로 에너지와 평화를 빅딜하는 방안 같은 것은 이런 점에서 희망의 근거이다. 러시아는 북한핵 해결에 가장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고 있다. 과거사 청산 등의 문제로 발언권이 약해지긴 했으나 일본도 역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최근 언급한 '과감한 접근'의 배후에는 미국 에너지 기업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의외의 해결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하는 대목이다.

반대로 부시 행정부가 집념을 갖고 추진하는 미사일방어(MD) 시스템 추진의 근거로 여전히 북한 미사일을 삼고 있다는 사실은 한반도에 불안한 그림자를 던진다. 미국은 2004년 실전배치를 목표로 이미 지난해 말 80억달러의 예산을 확보해놓고 있는 상태다. 향후 10년간 최대 2천억달러가 소요된다는 MD는 미 방산업체에 큰 밥그릇을 약속하고 있다. 부시의 올해 연두교서는 '악의 축'에서 '무법정권'으로 표현을 누그러뜨렸다. 그러나 여전히 북한은 미국 우파가 MD 등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언제든지 활용할 수 있는 위협의 원천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라크 사태에 코가 빠져 있는 부시 행정부가 미국 정치를 좌우하는 양대 자본 가운데 에너지 자본의 손을 들어주는 듯 하지만 언제 돌변할 지 모르는 형국이다. 이런 점에서 위기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한반도의 운명이 걸려 있는 양 극단의 가능성 속에서 평화의 희망을 일궈내는 것은 관련국들 간의 창조적인 외교력일 수밖에 없다. 강.온파 간에 양분된 상태를 벗지 못한 듯한 부시 행정부도 속내야 어쨌든 한반도 문제 해결에 다자간 접근을 줄곧 강조하고 있다. 북한핵을 남북한간 또는 북 .미간 양자구도에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동북아라는 좀더 큰 판에서 해법을 찾는 발상의 전환을 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주적이나, 과거의 맹방에만 연연할 필요는 없다.

독.불 관계가 적에서 친구로 변하기까지 과정이 간단했던 것은 아니다. 엘리제조약 이후 70여차례의 정상회담과 상호 7백만명 이상의 학생교류는 두나라간 지난한 노력의 단면을 보여준다. 평화는 거저 오지 않는다.

김진호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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