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코 남북한 군당국 간에 '적대적 공생' 관계가 복원됐다. 27일 국방부 브리핑에 따르면 그렇다. 전선 지역에 긴장이 고조되면 누가 더 걱정하고, 더 대비해야 할까. 국민일까, 군대일까. 그런데 국방부 브리핑은 국민을 향해 던진 "긴장하라"는 메시지로 읽힌다. 친절한 설명은 신원식 국방장관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이날 브리핑은 남측이 9.19 남북 군사합의의 일부 효력정지를 하게 된 빌미였던 북한 정찰위성의 성능 분석과 합의 파기 뒤 북한군 동향을 전하는 자리였다. 군 관계자가 전한 북한 정찰위성의 성능과 위력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과거 대포동 2호와 광명성 위성과 같이 궤도에 진입했지만, 며칠 뒤 고장나 추락한 것에 비하면 '일부 기술적 진전'을 이룬 것으로 잠정 평가했다. 성능 확인에는 "일반적으로 수 개월의 기간이 필요하다"는 게 국방부 설명이다.
지레 심각한 위협이라고 호들갑을 떨며 9.19 합의 중 비행금지구역(1조 3항)을 일방 폐지한 정부의 결정에 정면으로 반하는 설명이다. 우리 육군이 '북 주장 정찰위성 발사에 따른 현 상황의 엄중함'을 강조하면서 내놓은 경계 강화 특별 지시도 뻘쭘하다. 북의 전면 파기 선언은 긴장을 높이는 '협업'이었다.
지난 22일 남측의 일부 효력정지 결정과 23일 북측의 전면 파기 선언 이후의 북한군 동향 역시 다행히 조용했다. 적어도 '엄청난 위협'은 아니었다. 9.19 합의에 따라 전선 지역 내 파괴했던 감시초소(GP) 10개 중 일부를 다시 설치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군 관계자는 구조물을 만들고 있는 장면과 페인트칠 한 장면, GP 내 무반동총과 고사총을 반입하는 장면 등이 담긴 사진 4장을 공개하며 설명했다. 9.19 합의에 따라 덮었던 해안포 장막을 여는 사례 역시 늘었다. 기존에 평균 1개소, 1~2개 문이었다면 몇 배가 늘었다.
그런데 당장 국민의 일상생활에 심각한 위협을 제기하지 않는, 북한군의 구체적인 움직임을 왜 국민이 세세히 알아야 할까. 나라 지키는 것으로 밥을 버는 군인들이 경계하고 대비할 게 아닌가. 그 의문은 "그동안 (북한군 동향에 대해) '확인해 줄 수 없다'고 했는데 '국민도 알고 있는 게 좋겠다'고 장관님도 생각하시고 해서 설명드린다"라는 국방부 관계자의 설명에서 풀렸다. 작은 단서에서 우리 군 수뇌부의 사고의 일단이 잡힌다. 전략소통(SC)이 '정치소통'이 된 순간이기 때문이다.
한겨레신문 27일 자 '한겨레 프리즘(권혁철 통일외교팀장)'에 따르면 국방장관은 우리 정부의 9.19합의 일부 효력정지 결정에 대해 "남북 합의를 남측이 먼저 깬 첫 사례"라고 보도한 경향신문 보도를 두고 "강도를 옹호하는 전형적인 스톡홀름 신드롬에 입각한 편향된 기사"라고 주장했다. 한겨레신문도 "남북 간 첫 문서 합의인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이후 남북합의서의 효력을 공식 정지시킨 정부는 윤석열 정부가 처음이다"라고 보도했다.
사실에 입각한 보도를 두고 납치된 사람이 납치범의 사고에 동조하는 것을 의미하는 '스톡홀름 신드롬'을 운운한 장관의 심리는 미스테리다. '편향 보도'에 대한 이해 못할 분노와, 안타까움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게 이날 국방부 브리핑이 아닌가 싶다.
남북이 분단 이후 경험한 최악의 충돌은 서해 교전과 강릉 무장간첩 사건과 같은 북한군의 직접 침투였다. 북한은 "지상·해상·공중에서 합의를 전면 파기하겠다"고 밝혔지만, 다행히 아직 본격적인 움직임은 없다. 바다가 거칠어지는 계절이라 서해 북방한계선(NLL)도 조용하다. 우리 육군도 예하부대에 경계 강화를 지시했다고 하니, 군사분계선(MDL) 양측의 청년 병사들만 고생하게 됐다.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이 정도의 북한군 동향도 국민에게 알려 9.19 합의 일부 효력정지 결정이 옳았다고 우기려는 노력으로 읽힌다.
분단의 긴 역사를 남한의 극우 세력과 북한의 극좌 세력이 각각 체제 유지를 위해 '적대적 공생'해 온 관계로 해석한 건 한완상 전 부총리다. 북한과 달리 선거를 치러야 하는 남한은 '북풍' '총풍'을 벌인 전력도 있다. 정권 차원의 '긴장 높이기'와 달리, 일부 군 수뇌부는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갖고 있어 온 게 분단 역사의 불편한 진실이다. "전쟁이 나도 미군이 도와준다"는 생각과 동전의 양면을 이룬다. 해서, 지난 주말 개봉 나흘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서울의 봄> 속 전두환(전두광)은 전방의 노태우 9사단을 쿠데타에 동원하면서 "전쟁은 절대 나지 않는다"고 확신했던 게 아닌가 싶다. 영화가 아닌, 역사인 동시에 여전히 군 수뇌부가 갖고 있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국방 장관이 한가하게 주식 거래 관련 문자를 주고받는 걸 보고 갖게 되는 생각이다. 작년 11월 18일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하고 국가안보회의(NSC)가 '중대도발'이라고 규탄해도 다음날과 다다음날 태연하게 골프채를 잡은 장군이 보란 듯이 합참의장에 임명된 건 또, 어떤가. 육군이 지난 22일 내린 특별지시는 장성급 및 2급 이상 군무원의 골프 금지 기간을 딱 5일(22~26일)로 제한했다. 정녕 군사적 긴장이 높다면 있을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전·현직 장군들이 '국방 원팀'을 구성했다.
장관이 되고도 청년 장교의 헤어 스타일을 고집하는 신 장관은 말이 앞선다. 23일 국회 국방위에서는 "9.19합의가 이때까지의 남북합의 중 최악이다" "폐기하는 게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데 훨씬 더 도움이 된다" "일부 효력정지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이 1조원이라면, 손해는 1원에 불과하다"는 등의 현란한 말을 한바탕 쏟아냈다.
최고 수준의 국방의 풍경은 군 수뇌부는 밤잠을 설치고 고민하며 만반의 대비에 전력을 다하되, 국민은 평온하게 생업에 종사함으로써 완성된다. 온 국민이 긴장하고 대비하는 국민총동원 체제는 전시에나 긴요하다. 국민에게 "긴장하라"는 메시지는 더 이상 내보내지 말았으면 한다. 군 수뇌부가 늘, 먼저 긴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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