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관계를 "적대적인 두 국가, 교전 중인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남북관계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을 선언했다. 김 위원장은 당중앙위 제8기 제9차 전원회의 마지막 날인 30일 '2024년도 투쟁방향' 의정의 결론에서 이같이 밝히고 전쟁을 전제로 당의 대남 담당기구 개편을 예고했다. 이는 북한 노동당이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 두 개의 제도'를 기반으로 한 통일 노선을 버리고, 전쟁 대비 체제를 구축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북한은 지난 26일부터 30일까지 제9차 전원회의를 당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에서 진행했다.
북한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내보내는 공식 결정은 스스로 '적대국'이라고 규정한 남한을 포함, 미국과 세계를 대상으로 한다. 발표 내용을 꼼꼼하게 읽되, 상상력을 가미하지 않는 게 좋다. 지레 북한의 의도를 예상하고 과잉 대응할 빌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읽는 것과 한반도 안보 상황을 섣불리 예단하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남북관계 총평
전원회의 결론은 현 한반도 정세를 "군사분계선 지역에서 사소한 우발적 요인에 의해서도 물리적 격돌이 발생, 확전될 수 있다"면서 통제 불능의 위기상황이 항시적으로 지속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주목되는 것은 현 남측 정부에 대한 비판을 넘어 역대 남측 정부의 정책 연장선상에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남측 정권이 10여 차례 교체됐지만 "우리 제도와 정권을 붕괴시키겠다는 흉악한 야망은 '민주'를 표방하든 '보수'의 탈을 썼든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고 평가하면서 "현실은 북남관계와 통일정책에 대한 입장을 새롭게 정립해야 할 절박한 요구를 제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통일정책을 전환해야 할 이유로는 남측의 '자유민주주의체제 하의 통일' 기조와 남측이 "외세와 야합해 '정권붕괴'와 '흡수통일'의 기회만을 노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남측을 '남조선 것들' '족속' '대한민국 것들' 등으로 지칭하면서 "화해와 통일의 상대로 여기는 것은 더 이상 범하지 말아야 할 착오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현재 조선반도에 가장 적대적인 두 국가가 병존하고 있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면서 "그 언제 가도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어 "현실을 냉철하게 보고 인정하면서 당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를 비롯한 대남사업부문 기구들을 정리, 개편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며 근본적으로 투쟁원칙과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반도에서 언제든지 전쟁이 터질 수 있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남반부 전 영토를 평정하려는 우리 군대의 강력한 군사행동에 보조를 맞춰나갈 준비"를 중요 과업으로 제시했다.
북한이 전쟁 준비를 강조해 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남측의 흡수통일에 대한 경계와 미국으로부터 자주적인 태도 전환을 촉구한 것도 기존 방침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21세기 들어 '우리민족끼리'를 강조해 온 북한이 남한을 다른 국가로 규정한 것은 지난 7월 10, 11일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의 담화에서부터다. 이후 기존의 '남조선' 대신에 '대한민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 당 차원의 통일정책 재고를 다짐하며 적대관계를 제도화할 것을 확약한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안보환경
전원회의 보도는 올해 미국이 일본, 남조선과 벌인 합동군사연습 횟수가 지난해에 비해 무려 2배가 늘어난 사실은 미국이 우리와의 군사 대결 준비에 더욱 몰두하고 있음을 말해준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실은 미국이 고질적으로 남발하는 반공화국 적대행위가 단순히 수사적 위협이나 과시성 목적에 국한된 게 아니라 실제적인 군사행동으로 이어져 쌍방 무력충돌을 유발할 수 있는 범행단계로 진화됐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한반도 정세를 악화시킨 한미의 군사행동으로 △초대형전략핵잠함의 남측 기항 △핵전략폭격기의 사상 첫 착륙 △핵동력 항공모함 타격집단 등 미국 핵전략수단의 수시 전개 △'역대 최대' '사상 최고'의 합동군사연습을 꼽으며 강 대 강, 정면승부의 대미 대적 투쟁원칙의 견지를 다짐했다.
윤석열 정부의 9.19 남북군사합의 효력 정지에 대해서는 "윤석열 정권의 반공화국 대결 망동으로 불신과 적대를 덧쌓고 형식적으로나마 무력충돌 방지라는 미약한 사명을 놀던 합의의 파기라는 결과까지 낳았다"고 지적했다. 윤 정부가 유엔군사령부를 제2의 한국전쟁 도발을 위한 다국적 전쟁기구로 확대하고 군 수뇌부를 극단적인 호전광으로 교체했다고 주장했다.
통신은 국방전략과 관련, 2024년에도 핵무기생산을 지속적으로 늘일 토대를 구축하고 미사일 개발 및 생산의 목표와 과업을 제시했다고 전했다. 지난 11월 21일 발사한 만리경-1호에 이어 새해에 3개의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할 것이라고 공표했다. 앞서 지난 28일 회의 결론에선 "조선반도의 엄중한 정치군사 정세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에 기초해 인민군대, 군수공업부문, 핵무기부문, 민방위 부문이 전쟁준비 완성에 더욱 박차를 가할 전투적 과업들이 제시됐다"고 발표했다.
"군·군수공업·핵무기·민방위 부문 전쟁준비 완성"
북한의 대남 입장은 최근 3년 새 급격한 변화 과정을 거쳤다. 김 위원장은 2021년 1월 7일 제8차 당대회 사업총화에서 '남조선 당국'에 "비정상적이며 반통일적인 행태를 엄정 관리하고 근원적으로 제거할 때 비로소 공고한 신뢰와 화해에 기초한 관계 개선의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라며 남북 합의의 이행을 촉구했다.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인 2022년 1월 1일 자 제4차 전원회의 보도에서는 대미, 대남 관련 기술을 하지 않았다.
2023년 신년사 격인 1월 1일 자 당중앙위 제8기 제6차 전원회의 확대회의 결정서에서는 "남조선 괴뢰들이 의심할 바 없는 우리의 명백한 적"이라고 규정하고, 전쟁동원준비를 강조했다. 그러나 남북관계의 근본적인 전환을 거론하지는 않았다. 새해에도 남과 북이 경쟁적으로 대결 구도를 계속 심화한다면 한반도 안보상황은 더욱 가팔라질 수밖에 없다.
난수표같은 조태열 외교장관의 취임 일성, 행동은 달라야 (0) | 2024.01.13 |
---|---|
일개 합참 대령이 '남북 완충구역 무효'를 발표하는 나라 (1) | 2024.01.13 |
북 저급한 기만작전과 우리 군 과잉 대응, 모두 나쁜 징조다 (1) | 2024.01.13 |
신년 벽두부터 포문 연 남북…'9.19 없는 서해'의 미래인가 (1) | 2024.01.06 |
북한 김여정이 윤석열 대통령을 '찬양'한 이유는 뭘까 (1) | 2024.0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