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여정의 '세 치 혀'가 정초부터 오두방정을 떨고 있다. 당중앙위의 대변인 격으로 대남 선전선동을 해 온 그가 이번에는 서해 포사격을 조롱 대상으로 삼았다. 남북 간 군사적 긴장 고조라는 심각한 사안을 한낱 저급한 선동거리로 활용한 것이다. 기회 있을 때마다 '북의 위협'을 대대적으로 홍보해 온 우리 합동참모본부(합참)도 긴장 완화와 거리가 먼 결정을 하고 있어 우려를 자아낸다. 나쁜 징조다.
김여정의 오두방정
김여정 북한 당중앙위 부부장은 7일 조선중앙통신 담화를 통해 "우리 군대는 (6일) 130㎜ 해안포의 포성을 모의한 발파용 폭약을 60회 터뜨리면서 대한민국 군부 깡패 무리들의 반응을 주시했다"라면서 "해당 수역에 단 한발의 포탄도 날려 보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대한민국 군부깡패들은 우리가 던진 미끼를 덥석 받아 물었다"고 말했다. 조선중앙통신TV는 북한 병사들이 폭약을 설치, 터뜨리는 장면이 담긴 사진과 동영상을 공개했다.
합참은 북한의 6일 포사격과 김여정의 주장과 관련해 세 번 입장 표명을 했다. "북한군이 6일 오후 4시부터 5시까지 연평도 북서방에서 60여 발의 사격을 실시했다"고 밝힌 게 첫 발표였다. '폭약'은 언급하지 않았다. 7일 김여정의 담화가 발표되자 재차 공지를 통해 "오늘 김여정 담화문은 코미디 같은 저급한 선동으로 대군 신뢰를 훼손하고 남남갈등을 일으키려는 상투적인 수법"이라고 일축했다. 더 자세한 설명은 8일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나왔다.
이성준 합참공보실장(대령)은 '북한의 기만작전이 맞는지 말해달라'는 질문에 "여기서 공개적으로 맞다, 틀린다를 말하기는 어렵다"면서 "(북한이) 기만하는 정황이 있어서 그걸 구분해서 기자단에 공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 군은 북한군의 (폭약) 발파와 포사격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발파하는 정황과 포사격 정황을 각각 포착해서 포사격 정황에 대해 횟수와 장소를 말한 것"이라고도 했다.
우리군 대포병레이더, 포탄 궤적도 확인 가능
우리 군이 북한의 포사격을 탐지하는 방법은 네 가지다. 과거 포성으로 탐지했지만 2000년대 이후 해상 레이더와 열영상관측장비(TOD) 및 대포병레이더를 동원해 파악하고 있다. 해안포를 바다에 발사한다면, 해상 레이더로 물결을 일부 포착하고 TOD로 물기둥이 솟는 걸 촬영할 수 있다. 대포병레이더는 포탄의 궤적도 포착, 이를 토대로 원점 타격도 가능하다.
관측장비를 십분 활용해 북한의 폭약 폭발과 포사격을 탐지할 수 있다. 그는 탐지 수단을 묻는 <시민언론 민들레>의 질의에 "무엇으로 확인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며 "다만 우리 군은 (폭약) 폭발과 포병의 포탄 소리는 구분할 능력이 있어, 6일에도 폭음과 포탄 소리를 구분해서 포탄 60여 회 발사라고 공지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실장은 그러나 당일 발표 때 북한군의 폭약 폭발을 언급하지 않았다. 폭발과 포탄 소리를 구분하고 있었다는 설명은 북한이 폭약 설치 장면을 공개한 뒤에 나온 것이다.
연합뉴스는 8일 익명의 군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북한이 연평도 북서방 개머리 진지에서 폭약을 먼저 터뜨리고 포사격을 했으며, 포사격이 끝난 뒤 다시 한번 폭약을 터뜨렸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포사격 전후 폭약이 터진 횟수는 모두 10여 차례였다"면서 "이런 행위는 처음이었고 결과적으로 우리 군을 기만하려는 의도였다"고 말했다.
우리 군이 실명·익명으로 밝힌 설명을 믿지 않을 이유는 없다. 기실, 이번 사안의 진위는 덜 중요하다고 본다. 연초부터 치졸한 선전선동술을 내보인 김여정의 '입'에 더 큰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의도적으로 남측의 오판을 유도하기 위해 기만작전을 벌였다는 사실이 더 심각하다. 연합뉴스가 인용한 군 소식통의 말대로 북이 처음 시도한 기만술이었던 만큼 우리 군이 당일 이를 따로 구분하여 발표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저급한 코미디'이더라도 북이 사진·동영상까지 공개한 만큼 우리 군 역시 탐지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었다. 합참의 어사무사한 반응은 아쉬움을 남긴다.
불안한 '말의 전쟁'
더 심각한 사실은 한반도 상황이 이제 전쟁 위험을 두고 장난질 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는 점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각국 전문가와 당국자들이 작금의 한반도 안보 상황이 위험하다고 진단하는 까닭은 남북이 각각 작심하고 전쟁을 벌일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다. 상대방 의도에 대한 오해(misconception)가 과잉 평가로 이어져 우발적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을 더 우려하고 있다. 말과 말이 부딪혀 발생한 불티가 전쟁으로 비화한 사례도 허다하다.
미국과 소련은 냉전 시절 상대방 움직임에 대한 오해로 핵전쟁 직전까지 간 적도 있다. 1983년 두 달 간격으로 두 차례나 3차 대전 위기를 넘겼다. 남북 지도자가 새해 일성으로 각각 한미 핵전쟁 연습(남)과 핵 군비 강화(북) 다짐을 내놓은 한반도 상황에서 허투루 넘길 수 없는 일이다. 이 점, 김여정에게 스스로 내뱉은 말을 되돌려 줄 수밖에 없다. "오판, 억측, 억지, 오기는 만회할 수 없는 화난을 자초할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군이 밤낮으로 노심초사하더라도 국민은 마지막 순간까지 편안하게 일상을 영위해야 한다. 그게 통수권자 이하 군 당국이 봉급을 받는 이유다. 우리 국방부도 북의 위협을 필요 이상으로 홍보하는 행위를 자제할 필요가 있다. 군은 지난 5일 북이 200발 정도의 해안포 사격을 하자, 400발 발사로 대응했다. 지난해 말 북이 해상완충구역에 방사포를 발사했을 당시 군 통수권자가 지시했던 '비례 대응' 원칙과 동떨어진 과잉 대응이었다. 연평도, 백령도 주민을 긴급 대피시키기도 했다. 설령 필요했었다고 해도 전체의 20%도 안 되는 주민만 대피시킨 것은 명백한 대피의 실패였다. 공연히 부산을 떨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북한 총선 개입용 직접 군사도발?
국방부는 지난해 11월 우리 측의 9.19 남북군사합의 일부 효력 정지에 이어 북한이 전면 파기를 선언한 지 나흘 뒤 브리핑에서 북한군 병사들이 동부전선 최전방 감시초소(GP)를 수리하는 사진과 무반동총 및 고사총을 반입하는 사진을 우정 공개했다. 다음날 많은 기성 언론이 북한의 위협을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이런 식으로 북의 위협을 널리 알리는 게 과연 한반도 안정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
기실, 안보 불안의 또 다른 원천은 신원식 국방장관의 '입'이다. 3일 BBC코리아 보도에 따르면 신 장관은 전화 인터뷰에서 "북한이 오는 4월 총선에 개입하기 위해 대한민국을 겨냥해 지대공 미사일 발사 등의 직접적인 군사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작 '군 당국이 현재 북한의 군사 행동 징후를 포착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노 코멘트"라고 답했다. 설령 도발 징후가 있더라도 공개하지 못할 정도라면 조용히, 그러나 철저히 대비할 일이다. 이리 '확성기'에 대고 떠들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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