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2001-01-04|10면 |45판 |국제·외신 |컬럼,논단 |1101자 |
전세계적으로 2001년은 차분하게 시작됐다. 지구촌 곳곳에는 '예년 수준'의 사건과 사고가 있었을 뿐이다. 21세기를 맞는 세계의 분위기가 지극히 심상한 것은 지난해 앞당겨 요란한 행사를 치렀기 때문이다. 1년전 전염병처럼 세계화됐던 밀레니엄 열기의 정체는 무엇일까. 지난해 31일 개장 1년만에 문을 닫은 영국 밀레니엄 돔의 짧은 역사는 인류가 빠졌던 '집단 오류'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단서이다.토니 블레어 총리의 영국 정부는 밀레니엄 잔치에 가장 열정적으로 참가했다. 1999년 말까지 영국 정부가 186개의 밀레니엄 프로젝트에 쏟아부은 자금은 당시 환율로 약 12조원에 달한다. 이런 비정상적인 밀레니엄 열기에 대해 "영국이 밀레니엄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비아냥도 나왔다. 1조5천억원을 들인 그리니치의 밀레니엄 돔은 이중의 백미였다. '지름 365m의 세계최대 규모로 에펠탑을 누일 수 있을 정도'라며 프랑스의 자존심을 은근히 건드렸던 돔은 12개의 테마공원과 2,000석의 경기장까지 갖춘 대작이었다. 내부 면적은 4백15만㎡. 문화적인 대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블레어 총리는 정치적으로 대영제국의 향수를 복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돔을 건립케 했던 것은 밀레니엄 특수를 노린 '경영마인드'였다. 영국 정부는 국민을 무서워할 줄 알았다. 돔의 건립자금은 세금을 건드리지 않고 복권을 판매한 수익으로 충당됐다. 그러나 국민 전체를 무서워한 것은 아니었다. 세계의 관심을 끌었던 개관식 홍보는 런던시내 부촌에 집중돼 비난을 받았다. 약 4만원의 비싼 입장료도 국민의 많은 부분을 소외시켰다. 문화 접근권이 구조적으로 봉쇄된 것이다. 엄청난 건립기금은 '대박의 꿈'을 갖고 호주머니를 털었던 보통사람들이었지만, 그것을 향유할 수 있었던 계층은 일부였다. 영국 정부는 연간 1천2백만명의 관광객을 수용해 타산을 맞춘다는 계획이 빗나가자 지난해 9월부터 돔의 민영화를 추진해왔다. '문화공간'은 민간기업에 매각돼 놀이공원 또는 오피스타운 등의 '비즈니스 공간'으로 탈바꿈할 것으로 예상된다. 밀레니엄 돔은 공적부문이 경영마인드로만 무장할 때 명분은 공허해지고 '공적 가치'는 퇴색한다는 교훈을 준다. 밀레니엄 열기의 정체는 상업주의였다. 김진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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