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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자체에 의미? 53개월 만에 재개된 한일중 정상회의

시민언론 민들레(Dentdelion)

by gino's 2024. 5. 28.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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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상호 이해와 신뢰가 한일중 3국 협력의 원동력이라고 강조하면서 인적 교류, 미래세대 간 교류와 소통을 앞세웠다. 일본 역시 인적 교류, 특히 대학 간 교류와 관광을 먼저 강조했다. 중국도 소통을 강조했지만, 결이 달랐다. 3국이 장기적인 공동이익에 주목하고, 선린 우호를 보여줘야 한다면서 '전략적 소통'과 '정치적 상호신뢰의 심화'를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를 열기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오른쪽은 리창 중국 총리. 2024.5.27. [대통령실 제공] 연합뉴스

청년 교류와 관광이 최우선?

27일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각국 정상이 공동기자회견에서 최우선으로 내세운 회의 성과였다. 의장국인 한국이 내놓은 '의제'가 무엇인지는 감지하기 어려웠다. 한·일 한 팀과 중국의 대화를 방불케 했다. 대한민국 처지에서 가장 중요한 한반도 안보 환경에 대해서는 어떠한 공감대도 없었다. 달리 말하면 한국이 의제 설정에 실패했다는 말이다.

공식 발표한 '제9차 한일중 3국 정상회의 공동선언'은 38개 항의 합의를 담았다. 각국 정상의 공동기자회견 모두 발언에는 A4용지 8쪽의 방대한 선언 내용 중 자신들이 생각하는 우선순위에 따라 소개하기 마련. 첫 번째로 강조한 게 공동선언 중 각국의 우선순위라고 해도 무방하다. 공동기자회견은 동시에 공동선언에 담기지 않은, 자국의 입장을 소개하는 자리로 활용된다.

53개월 만에 열린 3국 정상회의였건만, 그동안에 벌어진 글로벌, 지역적 차원의 안보·외교·경제안보 환경의 변화는 거의 담지 못했다. 만남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면, 허망한 회의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인적·문화적 교류에 뒤이어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무역·투자 환경 조성과 안전한 공급망 구축 등 경제협력 분야, 대기오염을 비롯한 환경문제, 공중보건 위기 및 초국경 범죄 공동 대응 등 글로벌 이슈를 강조했다. 3국 정상이 공동의 협력 대상으로 강조한 것은 아세안이었다. 아세안 국가들과의 캠퍼스 아시아, 신생기업 육성, 지식재산 협력을 언급했다. 몽골과의 황사 줄이기 협력도 포함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의 발언을 듣고 있다. 왼쪽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2024.5.27. [대통령실 제공] 연합뉴스

두루뭉술한 한·일, 실질적 경협 강조한 중국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강조 내용도 어슷비슷했다. 우선 △인적·문화적 교류를 앞세운 뒤 저출생·고령화 대책과 같은 공통의 사회·경제적 과제, 글로벌 과제 해결 협력 △아세안과의 협력 추진의 중요성을 설명한 뒤 △한반도 문제를 순서대로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절차 논의 및 3국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속도를 높이는 논의를 추가했다. (공동선언 24항)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는 전략적 소통과 정치적 상호신뢰를 강조한 뒤 △실질적인 상생 경제협력과 △한반도를 포함해 장기적인 평화·안정 실현을 거론했다. 한·일 정상이 최우선으로 꼽은 인적 교류는 실질적 경제협력 중 △경제·무역의 폭발적 연결 심화, 산업망·공급망 협력 강화 △인공지능·디지털 경제·녹색 경제를 중심으로 첨단 과학기술 협력 심화에 뒤이어 배치했다.

3국 정상은 마지막 역내 평화와 안정 부문에 가서야 비로소 '한반도'를 다뤘다. 윤 대통령은 '자유롭고 평화로운 통일 한반도 실현'이 공동의 목표인 양 강조하면서 유엔 안보리 결의의 충실한 이행을 강조했다. 뒤이어 북한이 이날 예고한 위성 발사가 안보리 결의 위반임을 지적하면서 "(3국이 아닌) 국제사회가 단호하게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기시다 총리는 자신이 정상회의에서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 예고가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고 밝히면서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안정이 3국의 공동의 이익이라고 강조했다. 납치자 문제 역시 빼놓지 않았다. 리창 총리는 정부 공식 입장을 반복하는 데 그쳤다. "중국은 시종일관 한반도 평화와 안정,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관련 측은 자제를 유지하고, 사태가 더 악화하고 복잡해지는 것을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위성 발사는 물론, (북한 또는 한반도) '비핵화' 자체를 언급하지 않았다. "서로의 핵심 이익과 중대 관심사를 배려해 주며, 진정한 다자주의를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을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8차 한일중 비즈니스 서밋에서 연설을 마친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왼쪽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2024.5.27. [대통령실 제공] 연합뉴스

한반도 문제 각국 주장 '각각' 열거

공동선언 35항에 담은 한반도 문제는 △역내 평화와 안정 △한반도 비핵화 △납치자 문제에 대한 입장을 '각각' 재강조했다고 기술했다. 또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긍정적인 노력을 지속하기로 한다"라고 명시했다. "한반도 및 동북아 평화·안정·번영이 공동이익이자, 공동 책임임을 재확인했다"면서 이를 구현하기 위한 어떠한 방법론도 포함되지 않았다, 그냥 각각 강조하고 싶은 내용을 나열했을 뿐이다. 리창 총리가 공동기자회견에서 '비핵화'를 언급하지 않고, 납치자 문제가 일본의 최우선 관심인 점을 감안하면 '역내 평화와 안정'의 총론에는 3국 정상이, '한반도 비핵화'는 윤 대통령이, 납치자 문제는 기시다 총리가 각각 주장한 것으로 추정된다. 적어도 한일중 정상회의는 한반도 문제 해결에 어떠한 공동제안도, 추진 의지도, 해결 전망도 낳지 못하는 '불임 회의체'임을 만천하에 공개한 꼴이다.

한일중 정상회의가 원래부터 맹탕은 아니었다. 특히 2015년 서울에서 열린 제6차 회의엔 우리의 관심사가 뚜렷이 담겼었다. 6차 회의 공동선언문은 아예 선언문 명칭부터 '동북아 평화 협력을 위한 공동선언'이었다. 3국 협력의 완전한 복원과 경제적 상호의존·정치안보상 갈등 병존 현상 극복, 역사 직시·미래지향 정신에 입각한 양자 관계 개선 및 3국 협력 강화 의지를 담은 전문에 이어 '지역 및 국제사회 평화·번영에 공헌' 항목(49~50항)에 한반도 정세 관련 공동 대외메시지를 발신했다. △핵무기 개발 확고히 반대 △긴장 조성 및 안보리 결의 위반 반대 △평화로운 방식의 한반도 비핵화 실질적 진전 위한 6자회담 재개 등이었다. 중국과 일본이 한반도 분단을 평화적으로 극복하려는 (한국의) 노력을 지지했고, 남북 간 신뢰 구축과 교류·협력 증진 구상도 평가했다. 제9차 회의의 결과문을 보면, 아예 회의 명칭을 '3국 경제·사회·문화 협력 정상회의' 또는 '비전략 대화'로 수정하는 게 나을 듯하다.

물론 3국 정상회의가 열린 것 자체도 의미는 있다. 중단됐던 3국 대화 기제가 재가동됐고, 경제·사회· 문화 교류 부문의 소통이 가동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3국 정상회의가 열리지 않은 4년 5개월 동안 코로나19의 대유행만 있었던 건 아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등장 이후 한‧미연합훈련에 전략핵잠함(SSBN)이 출몰하고,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 선언을 계기로 한미일 군사 협력체가 출범했으며, 미·중이 중거리핵전력(INF)를 중심으로 동아시아를 무기고로 만드는 기간이기도 했다. 러시아와 중국도 연합훈련 강도도 강해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고, 대만해협의 위기도 높아졌다.

제9차 한일중 정상회의를 비롯한 방한 일정을 마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7일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자동차에서 내려 귀국행 비행기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2024.5.27. 연합뉴스

러·중 양국이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에 어깃장을 놓고, 1718위원회 전문가 패널을 종식시켰다. 그 끝에 3국 정상이 만나 한가하게 인적교류(윤석열·기시다)나 실질적 경협(리창)을 강조한 것은 회의체의 뚜렷한 한계였다. 한·일과 중국이 각각 전략, 전술 무기를 동원한 대규모 훈련을 벌이면서 청년 인적 교류와 관광이나, 경제협력을 논의하는 것 자체가 어이없는 현실이다. 좋게 말해 한·미·일 협력 강화 또는, 한·일에 대한 미국의 확고한 장악력을 확인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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