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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정략에 포획돼 '안보 위기' 키우는 윤석열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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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가 '대북삐라 vs 오물풍선'의 더러운 싸움을 기어코 안보 위기로 키우고 있다. 국가안보실이 내린 결정이다.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은 9일 오전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개최하고 북한 오물풍선의 상응 조치로 이날 중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선언했다. NSC는 결정의 빌미로 북한의 8~9일 오물풍선 살포를 내세웠다.

2004년 6월 서부전선에서 국군 장병들이 남북 간 합의에 따라 대북 확성기를 철거하고 있는 모습. 2010년 이후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방송을 재개했다가 다시 중단됐지만, 윤석열 정부의 결정으로 9일부터 재개된다.  2024. 6.9. [연합뉴스 자료사진]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위험한 불장난의 '나비효과'

대북 확성기 방송은 군사작전이다. 신원식 국방장관은 이날 전군 주요 지휘관 화상회의를 열고 "예상되는 북한의 도발 대비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일개 탈북자단체의 대북 삐라 살포로 촉발된 오물풍선 살포가 전군이 동원된 군사작전으로 비화한 것이다. 다음 단계는 탈북자단체와 윤석열 정부가 합작한 위험한 불장난이 초래할 안보 위기다. 대한민국에서 상황 악화를 주도한 두 명의 장본인은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 박상학과 국가안보실 제1차장 김태효다. 물론 최종 결정과 그 책임의 정점에는 대통령이 있다. 사태 악화의 순서로 보면, 국가와 국민을 위험으로 몰아넣는 '향도'는 놀랍게도 탈북자 박상학 씨(56)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떨어진 북한 오물 풍선에 국민적 관심이 쏠린 건 지난달 28~29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옥상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쓰레기 세례를 받았다.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은 29일 담화에서 오물풍선 살포가 북한 인민의 '표현의 자유'라면서 대북삐라에 대한 응답임을 분명히 했다. 이때까지도 많은 국민은 의아해했다. 오물풍선 살포 8일 전 박씨의 대북 전단 살포가 크게 주목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씨는 며칠 뒤(6월 3일), 자유북한운동연합이 5월 10일 인천 강화도에서 김정은의 망언을 규탄하는 대북 전단 30만 장을 K팝, 드라마 동영상 USB 2000개와 함께 애드벌룬에 띄워 북한에 살포했다고 밝혔다. 이후 전개 과정은 전형적인 '치킨 게임'이었다. 북한은 이달 1~2일 재차 오물풍선을 띄운 뒤 2일 김강일 국방성 부상의 담화로 "대북 삐라 살포가 재개되면 백배의 오물을 살포하겠다"면서 오물풍선 부양의 잠정 중단을 발표했다. 박씨는 "천배, 만배의 보복"을 다짐했다. 박씨의 자유북한운동연합은 6일 새벽 경기 포천에서 대북 전단 20장을 보냈다. 7일 밤에는 탈북자단체 겨레얼통일연대(대표이사 장세율)가 전단 20만 장을 잇달아 살포했다. 탈북자단체들의 경쟁이 벌어진 꼴이다. 북한의 8~9일 3차 오물풍선 살포는 그 답이다.

올해 1월6일 오전 인천 옹진군 대연평도 조기역사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도 한 해안마을 인근에 설치된 해안포의 포문이 열려있다. 북한은 이날 오후 연평도 북서방 개머리 진지에서 방사포와 야포 등으로 포탄 60여발을 발사했으며, 이 중 일부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이북 해상 완충구역에 낙하했다. 연합뉴스

삐라 살포 경쟁에 나선 탈북자단체들

지난 5월 이후 탈북자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와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가 각각 세 차례인 것은 북한이 정확히 비례적 대응을 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윤석열 정부가 '협업'에 나선 건 5월 31일 자 '정부입장'을 통해서다.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에 '북한이 감내하기 어려운 상응 조치'를 경고한 뒤 4일 국무회의 의결로 9.19 군사합의 전면 파기 선언과 함께 대북 확성기 재개 방침을 확인했다. 남북 당국 간 싸움으로 확대된 출발점이다. 9일 긴급 NSC 상임위를 주재한 건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이지만, 실질적인 주체는 윤석열 정부 외교안보 정책을 주도해 온 김태효 제1차장이다. 이 정부 외교 관료들은 "아무런 의견도 내지 않고 정권에 영합, 출세에만 관심이 있다"라는 모욕적 평가를 받아온 터이다. 김 차장은 2004년 노무현 정부가 중단했던 대북 확성기 방송을 2010년 재개했던 이명박 정부에서도 핵심 참모였다.

윤석열 대통령은 모든 결정의 최종 인가자이자, 이념과 정략의 총지휘자이다. 대통령은 지난 현충일 추념사에서 오물풍선과 관련, "정상적인 나라라면 부끄러워할 수밖에 없는, 비열한 방식의 도발"이라고 비난하면서도 그 원인으로 백일하에 드러난 대북 전단 살포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정부는 '표현의 자유'라는 작년 9월 헌법재판소 결정을 앞세워 전단 살포를 막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사실상 탈북자단체들의 활동을 격려하는 것으로 '전단 살포 vs 오물풍선'의 악순환을 장려하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념적 소신에 그치지 않는다. 정략적 판단으로 의심할 이유가 넘치기 때문이다.

 

탈북자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이 6일 새벽 대북 전단 20만 장을 경기도 포천에서 살포했다면서 언론에 배포한 사진. 2024.6.6. 연합뉴스

여당의 4.10 총선 참패와 20%대를 위협하는 지지율, 여기에 채상병 특검 거부권 행사와 본인, 부인, 장모를 둘러싼 비리로 비리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올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뻔히 눈에 보이는 안보 위기로 정치적 곤경에서 빠져나올 한수로 상황 악화를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안보적 결정을 정략적 이유에서 내리는 오류에 외교안보 관료 집단까지 적극적으로 가담한 꼴이다.

정치적 위기 탈출의 묘수?

특히 김 차장의 역할이 주목되는 것은 대통령의 지난 3일 동해 가스전 발표와 마찬가지로 이명박 정부의 현란했던 자원외교와 유전자가 같기 때문이다. 국민에 '노다지 환상'을 심어주는 한편, 안보 위기를 더 큰 위기로 키우는 방식도 붕어빵이다. 그 피해는 이번에도 고스란히 국민적 불안과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김정은 정권의 행동 방식으로 볼 때 대북 전단의 상응 조치가 오물풍선이라면, 대북 확성기 방송의 상응 조치는 대포다. 2015년 박근혜 정부의 확성기 방송에 서부전선 포격 도발로 응답했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서해에 꽃게가 돌아오는 한반도의 6월은 이념적, 정략적 돌파구로 안보 결정을 선택하기에 최악의 시점이다. 남북은 신변 벽두부터 해안포 사격을 주고받았고, 북한은 자신들이 설정한 해상경계를 남측이 넘어 올 경우 무력 대처를 공언했다.

MB 정부의 추억이 악취를 풍기지만, 그때는 집권 여당이라도 제정신이었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가 2008년 12월 5일 박상학씨를 만나 대북 전단 살포 중단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었다. (뉴스 토마토) 지금 국민의힘은 무작정 '용산'을 추종할 뿐이다.

국방장관은 전군 지휘관에게 "북한의 직접적 도발 시에는 즉,강,끝 원칙에 따라 단호하게 응징할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 내놓은 말이 가관이다. "국민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군 본연의 임무를 완수하라는 것." 적극적, 주도적으로 국민적 불안을 키워놓고 국민 안심을 운운하는 전복적 사고의 기막힌 아이러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길 권한다. 진실로 고민하는 게 국가안보인지, 정권안보인지.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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