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꽁초와 퇴비(가축 분뇨), 폐건전지, 폐 천 조각…. 북한이 지난 28일 밤부터 29일까지 북방한계선 이북 여러 곳에서 된바람에 실어 남쪽으로 보낸 '오물 풍선'의 내용물이다. 합동참모본부는 30일 전단이나 USB, CD가 없이 순전한 쓰레기 더미였다고 발표했다. 화생방 오염물질은 없었다. 북한의 전례 없는 대규모 '오물 공격'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북한이 29일 서해상의 위성항법장치(GPS) 교란 전파를 발신하고, 단거리 탄도미사일 10기를 발사한 것과 오물 풍선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GPS 교란과 탄도미사일 발사는 공격적인 행동이지만, '오물 풍선'은 다분히 방어적인 성격이기 때문이다.
군 당국이 30일 오전까지 발견, 수거한 오물 풍선은 260개. 서울과 경기, 강원, 충남 계룡, 경남 거창 등 전국에 광범위하게 떨어졌다. 마른하늘에 쓰레기 더미가 떨어진 것이다.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옥상과 외교부 청사 주변도 오물 세례를 받았다.
이성준 합참 공보실장은 30일 정례브리핑에서 "우리 민간단체의 전단 부양을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자 반인륜적이고 저급, 치졸한 행위"라고 비난했다. 문제는 맞춤한 대응 방안이 없다는 점이다. 이 실장은 '격추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격추하면 풍선이 낙하하는 힘에 의해 피해가 발생할 수 있고, 위험물이 들어 있다면 오히려 (피해가) 확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회수가 더 어려워질 뿐 아니라 우리가 사격하면 탄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분쟁을 일으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원천적으로 막을 수도, 격추할 수도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하늘만 쳐다볼 수도 없다. 내용물을 알 수 없는 한 모든 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합참은 화상방신속대응팀과 폭발물처리반을 출동시켜 내용물을 일일이 확인해야 했다. 우리가 처한 곤혹스럽기 짝이 없는 상황은 정확하게 북한이 노린 점이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은 29일 담화에서 "우리가 저들이 늘상 하던 일을 좀 해보았는데 왜 불소나기를 맞은 것처럼 야단을 떠는지 모를 일"이라고 비아냥거렸다. 남측이 일부 탈북자 단체의 대북 전단을 보내는 것을 막을 수 없는 이유로 들었던 '표현의 자유'를 내세운 것이다. 담화는 "한국 것들은 (우리) 인민이 살포하는 오물짝들을 '표현의 자유 보장'을 부르짖는 자유민주주의 귀신들에게 보내는 진정어린 '성의의 선물'로 정히 여기고 계속 계속 주어담아야 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작년 9월 대북 전단 살포를 금지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대해 헌법상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에 어긋난다면서 위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탈북자 단체에서 남풍에 실어 보내는 풍선에는 1달러 지폐와 생필품 등과 함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이른바 '백두혈통'이라 불리는 북측 지도부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담은 선전 삐라가 담겼다. 조선왕조와 일본 군주제의 숭배 방식을 모델로 만든 '백두혈통'의 상징체계를 체제의 근간으로 여기는 북한에 대북 전단은 단순한 쓰레기가 아니다. 어떠한 고성능 폭탄보다 북한 체제를 위협하는 위험물로 여긴다. 대북 전단 풍선에 대한 사격을 경고하고, 2020년에는 남측이 개성에 건립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한 빌미였다.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박상학)으로 대표되는 탈북자 단체들이 보낸 대북 전단에는 북한 지도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자극적인 내용이 포함된다. 북한자유연합(회장 수전 솔티)을 비롯한 미국 민간단체들의 자금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사격은 우리 측 접경지 주민들의 안전은 물론 자칫 탄환이 군사분계선을 넘으면서 남북 간 충돌로 비화할 소지가 다분하다. 북한이 군사적 충돌 가능성을 배제하는 대신 남측을 최대한 곤혹스럽게 할 간접적 대처 방안으로 '오물 풍선'의 대대적 부양을 고안한 것이다. 이미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오물 풍선'을 '시험 삼아' 보내 민가의 지붕이 손상되는 피해를 줬었다. 이번엔 남측 전역에 대한 대대적인 오물 투척이었다. 총탄에는 총탄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오물에 오물로 대응하기도 어려운 처지다. 더구나 글로벌중추국가(GPS)를 지향한다는 정부 아닌가.
북한을 자극해 온 탈북자 단체의 대북 삐라 풍선을 막지 않는다면, 북한의 오물 풍선도 막을 방도가 없다. 김여정 담화는 마지막으로 "한국 것들이 우리에게 살포하는 오물량의 몇십 배로 건당 대응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대북 삐라와 오물 풍선의 '더러운 대결'은 동시적이지 않다. 시차를 두고 바람의 방향이 공평하기 때문이다. 1년 열두 달 중 첫 6개월은 주로 북에서 남으로 된바람이 불고, 뒤 6개월은 남에서 북으로 마파람이 분다. 북풍은 6월까지만 분다. 북한이 5월 말로 시점을 정해 오물 풍선을 보낸 것은 7월부터 시작되는 남풍의 계절에 날아 올 대북 전단을 선제적으로 막아보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김 부부장이 담화에서 '몇십 배의 건당 대응'을 강조한 것은 바로 대북 삐라를 보내지 말라는 명확한 신호였던 것이다.
이 대목에서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내세운 논리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헌재는 '기존 법률'로 대북 전단 살포를 막을 수 있음에도 추가적인 법률 제한으로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법리를 제시했다. 헌재가 적시한 기존 법률에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에 대응하기 위한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5조 제1항과 정당방위 및 긴급피난을 규정한 민법 제761조 제2항에 따라 국가가 대북 전단 살포 행위를 제지할 수 있다"는 2016년 대법원 판례가 포함된다. 대북 전단 살포를 막으면, 북한이 오물 풍선을 내려보낼 이유도 없어지는 것이다. 결국 윤석열 정부의 결정에 달려있는 문제다. 수수방관한다면, 대북 삐라와 대남 오물 풍선의 악순환은 무한 반복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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