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대남 오물풍선을 둘러싼 '더러운 싸움'이 정부의 대북 확성기 재가동 결정으로 이어지면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 올리고 있다. 4일 정부는 9.19 남북군사합의 전면 효력 정지를 결정, 분계선 인근 육, 해, 공에서 군사훈련에 본격 돌입할 것도 예고했다.
합참 "확성기 작전 당장 가능"
이성준 합동참모본부 공보실장은 4일 정례브리핑에서 군 당국이 2018년 철거했던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할 것임을 밝혔다. 그는 "이동형 확성기는 바로 작전을 시행할 수 있다"라면서 기정사실로 했다. 대북 확성기의 성능과 관련해 "(철거한 지) 시간이 좀 지나서 다시 구매하거나 업그레이드할 필요는 있을 수 있다"라면서 "추가 구매하는 장비가 있는지 확인해 보겠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일단 재가동 준비를 한 뒤 북한의 행동에 따라 즉시 대북 확성기 작전을 재개하겠다는 말이다.
탈북자 단체의 대북 삐라 살포(5․10)→북한의 대남 오물풍선 부양(5.28~6.2)→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및 분계선 군사훈련→남북 무력 대치의 악순환을 예고한 것이다.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가 있었던 지난 주말, '중대한 조치'라는 대통령 지시 사항이 새 나오고, 2일 국가안보회의(NSC) 상임위원회가 밝힌 '북한이 감내하기 힘든 조치'의 정체가 대북 확성기 방송의 재개였던 것이다.
NSC 상임위가 밝힌 대로 "국민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만전을 다하려면 위기를 줄여야 하건만, 거꾸로 위기를 키우면서 국민을 안심시키겠다는 말이다. 윤석열 정부 행동 방식의 전형적인 패턴이다. 북한을 가장 자극하는 비군사적 행동은 두 가지가 있다.
탈북자 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대표 박상학)의 대북 전단 살포가 있고, 두 번째는 군사분계선 인근에서 고성능 확성기를 통해 대북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이다. 북한은 두 가지 모두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와 체제를 위협하는 심각한 위협으로 간주, 맞대응을 해왔다. 대북 삐라와 대남 오물풍선은 탈북자 단체라는 민간 대 북한의 '작은 싸움'인 반면에 대북 확성기는 우리 군이 나서는, 남북 군 당국 간의 '큰 싸움'이다. 호미로 막을 사안에 가래를 동원하는 격이다.
대북 삐라 살포 제지는 현장 판단 사항
대한민국은 탈북자 단체의 대북 삐라 살포를 중단시킬 법적 근거와 경찰의 행정력을 보유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이를 활용해 대북 전단 살포를 막으려는 어떠한 의지도 보이지 않고 있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지난 3일 브리핑에서 대북 삐라 살포 자제 노력과 관련해 "표현의 자유 보장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를 고려해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관 직무집행법에 따라 현장에서 중대한 위험이 유발될 우려가 있으면 행정적으로 통제할 수 있지 않나"라는 언론의 추가 질문에 "(경찰관이) 현장에서 판단할 사항"이라고 못 박았다.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은 지난 5월 29일 대남 오물풍선 살포가 '(북한)인민의 표현의 자유'라고 강변했다. 김강일 북한 국방성 부상은 2일 오물풍선이 '반공화국 삐라 살포'에 대한 대응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2일 오물풍선 살포의 잠정 중단을 발표하면서 "대북 삐라 살포가 재개되면, 발견되는 양과 건수에 따라 백배의 휴지와 오물량을 집중살포하겠다"고 경고했다. '탈북민들의 전위대'를 자처한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박상학 대표는 3일 '인민의 원쑤 김정은'의 사과를 요구하면서 "천배, 만배로 보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개 탈북자 단체의 행동에 온 국민이 피해를 당하는 형국이다.
북한은 자유북한운동연합의 대북 전단뿐 아니라 우리 군 당국의 확성기 방송에도 '무차별적인 타격'을 경고해 왔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일방향이 아니다. 북한 역시 대남 확성기 방송으로 대응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북한의 대남 확성기 방송은 경기도와 강원도 접경지역 주민들의 일상에 불편을 자아냈다. 북한의 타격 경고에 불안도 상당했다.
국민불안 높이면서 국민안전 지키겠다?
국민적 불안이 뻔한데도 정부가 막다른 길로 돌진하는 것은 정치적 동기마저 의심케 한다. 4.10 총선 패배와 20%대로 주저앉은 대통령 지지율이라는 불편한 상황을 남북 군사적 긴장을 키우는 방식으로 회피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힘에 의한 평화'를 빙자해 국민의 일상에 불안을 조성함으로써 정치적 곤경을 벗어나겠다는 의도가 아니면 달리 해석할 길이 없다. 합참은 접경지역 국민 불안에 대해 "즉,강,끝(즉시 강력하게 끝까지) 응징이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동문서답을 내놓았다.
정부가 4일 국무회의에서 9.19 남북 군사합의 전체의 효력을 정지하는 결정을 내린 것은 더 큰 불안을 예고한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최근 북한의 계속되는 도발이 우리 국민에게 실제적인 피해와 위협을 가하는 상황에서 군사합의가 우리 군의 대비 태세에 많은 문제점을 초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남북한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합의 전부의 효력을 정지한다'고 발표했다. 거꾸로 된 결정이다.
합참 공보실장은 이미 1월 8일 "적대행위 중지 구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했었다. 국방부는 1월 9일 브리핑에서도 "분계선 5㎞ 이내에서 대규모 연대급 기동훈련이나 포병 사격훈련 또 해상 훈련 등 (9.19 군사합의에 의해) 제한받았던 부분이 해소됐다"고 거듭 확인했다. 뒤늦게 군사합의 탓에 군의 대비 태세에 문제가 있었다는 정부의 평가는 분계선 부근 육,해,공에서 본격적인 훈련과 무력시위를 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연초부터 출렁이던 서해 평화
하필 서해에 꽃게가 돌아오는 계절이다. 남북 간의 두 차례 연평해전(1999, 2002)은 모두 6월에 벌어졌다. 이 시기에 내려진 정부의 9.19 군사합의 공식 폐기 결정은 또 다른 충돌의 신호탄이나 마찬가지다. 북한은 2일까지 닷새째 서해 일대의 위성항법장치(GPS) 전파를 교란하고, 초대형 방사포 18대를 발사해 긴장을 높이고 있다. 남북이 포 사격을 주고받으면서 서해 평화는 신년 벽두부터 출렁였다.
김정은은 지난 2월 14일 신형 지대함미사일 '바다수리-6형' 검수사격시험을 지도하면서 우리 군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서해 북방한계선(NLL)의 무력화를 지시했다. "해상 주권을 그 무슨 수사적 표현이나 성명, 발표문으로 지킬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무력행사로, 행동으로 철저히 지켜야 한다"면서 "연평도와 백령도 북쪽 국경선 수역에서 군사적 대비 태세를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앞서 1월 15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북방한계선을 비롯한 어떠한 경계선도 허용될 수 없다"고 밝혔었다. 그는 그러나 "우리는 적들이 건드리지 않는 이상 결코 일방적으로 전쟁을 결행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 '분쟁의 바다'에 뛰어들어 강 대 강 대처를 하겠다는 게 윤석열 정부의 결정이다.
작년 1월 4일 국방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나온 대통령의 9.19 남북군사합의 효력정지 검토 지시가 정확히 1년 5개월 뒤 파기되는 과정은 매번 위기 확산으로 귀결됐다. 그러면서 '국민의 안전'을 명분으로 내걸고 있다. 탈북자 단체의 대북 삐라 살포가 부른 북한의 오물풍선 탓에 하늘을 바라봐야 했던 국민은 이제 한동안 잠잠했던 서해 분쟁까지 걱정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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