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결국 북한을 선택했다. 남한을 포기하지 않았으되, 두 개의 코리아와의 관계에서 무게중심을 북한에 놓았다. 우크라이나 전쟁 28개월째, 윤석열 정부 출범 25개월째 구현된 현실이다. 19일 북러 정상회담은 러시아의 전략적 선택이 사실상 끝났음을 웅변한다. 특히 윤석열 정부 들어 한러 관계는 급전직하한 반면에 북러 관계는 수직상승했다.
어긋나기 시작한 것은 두 개의 층위로 나누어 볼 필요가 있다. 한러 간 양자 관계의 층위와 글로벌 안보 환경의 층위가 그것이다. 우크라 전쟁과 윤석열 정부는 각각 독립변수가 아니다. 남한은 우크라 전쟁 뒤 미국이 주도한 대러시아 제재에 참여한 49개국의 일원이 됐다. 분단과 동맹에 포획된 처지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기획으로 세계가 친러시아, 반러시아로 분열된 상황에서 무작정 '동맹의 망토'를 벗어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그 자체를 문제 삼지 않았다. 2022년 3월 남한을 '비우호국' 리스트에 올렸지만, 기회 있을 때마다 관계 회복의 기대를 내비쳤다. 그러나 한러 관계의 부정적 승수효과를 높인 건 윤석열 정부였다.
대러 수출통제(상황허가) 품목을 57개(2022)→798(2023)→1,159개(2024)로 늘렸다. 사업단 교류 및 지자체 간 협력도 작년 초 100% 가까이 중단했다. 서울~모스크바, 서울~블라디보스토크 직항편을 없앴다. 취임 이후 한미 동맹과 한미일 군사협력에 집중한 윤석열 정부는 러시아와 중국을 일관되게 백안시했다. 대통령은 작년 7월 리투아니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 참석에 이어 키이우를 방문, 러-우 전쟁에서 우크라의 승리를 공개 기원했다. 반러 발언의 정점이었다. 북러 군사협력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비방해 왔다. 오죽하면 러시아 외교부가 "궁금하면 직접 물어보지, 왜 마이크부터 잡느냐'고 꼬집었겠나. 그 결과가 북러 관계의 발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러시아와 남북한의 관계에 변곡점이 찾아온 것은 정전 70주년을 맞은 작년 7월 말이었다. 어찌 보면 그때부터 이번 푸틴의 방북까지 1년이 러시아의 선택이 숙성된 시간이다.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을 필두로 러시아 군사대표단이 방북, 관계 재설정의 첫 단추를 끼웠다.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9.13 러시아 극동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후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과 최선희 외무상이 각각 평양과 모스크바를 교차 방문해 후속 협상을 이어갔다.
작년 10월 평양을 찾은 라브로프 장관은 북러 외교장관 회의 뒤 "러북이 새로운 전략 관계에 완전히 도달했다"라고 선언했다. 지난 3월 25~27일에는 세르게이 나리시킨 대외정보국(SVR) 국장이 방북했다. 국방, 외교에 이은 정보 협력은 양국 관계가 격상됐음을 상징한다. 경제, 문화 교류의 접촉면을 넓힌 건 물론이다.
북러 관계 발전의 총합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24년 만의 방북 수행단의 면면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국가수반의 국빈 방문에 외교(라브로프) 및 국방(안드레이 벨로우소프) 장관의 수행은 기본이다. 여기에 데니스 만투로프 제1부총리와 알렉산드르 노바크 에너지 담당 부총리, 알렉산드르 코즐로프 천연자원부 장관, 미하일 무라시코 보건부 장관, 로만 스타로보이트 교통부 장관이 따라왔다. 유리 보리소프 로스코스모스(국영 우주공사) 대표와 올레그 벨로제로프 국영 철도공사 대표, 블라디보스토크가 속한 프리모스키주 주지사는 구체적인 협력과 관련된 인물들이다.
북러 관계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1년 동안 한러 관계는 어떠했을까. 놀랍게도 차관급 대화가 전부였다.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이 외교부 제1차관이던 2023년 6월 모스크바를 방문했고, 안드레이 루덴코 아시아태평양 담당 외교부 차관이 지난 2월 4일 방한해 각각 차관급 대화를 가졌다. 작년 9.13 북러 정상회담 5개월 만에 성사된 루덴코 차관의 방한은 각별한 의미를 가졌다. 북러 정상회담의 결과와 의미, 러시아 정부의 방침에 대해 대면 브리핑을 받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정상적 관계였다면, 북러 정상회담 한 달 내 있었어야 할 자리였다. 윤석열 정부는 연연하지 않았다. 작년 북러 정상회담 뒤 북한 무기의 러시아 전달과 러시아의 군사기술 전수를 기정사실화하면서 러시아를 공개 비난하는 데 몰두했다. 루덴코의 방한은 그나마 그즈음 윤석열 대통령의 북한 비방 발언에 러시아 외교부가 "노골적으로 왜곡된 말"이라며 거칠게 반응하며 빚어진 외교 갈등 탓에 빛이 바랬다.
1990년 한-소 수교 뒤 러시아와 투 코리아의 관계는 대칭적이지 않았다. 러시아는 극동 개발의 파트너로 남한을 선택했고, 이를 위해 한반도 평화는 디폴트(초기설정값)였다. 북러 관계 발전은 제한했다. 러시아는 냉전시대 소련이 북한과 맺은 '우호 협조 및 상호 원조에 관한 조약(조-소 우호조약)'을 1996년 폐기했다. '푸틴의 시대'를 맞아 2000년 2월 '친선-협력 조약(친선, 선린 및 협력에 관한 조약)'을 맺을 때까지 국가 간 관계를 규정하는 어떠한 조약도 없이 지냈다. 남한이 소련 정부의 채무 30억 달러를 돌려받는 방식으로 러시아 군사기술을 도입해 '불곰사업'을 벌이던 시기다.
러시아는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와 같은 한반도 안보 이슈에서 늘 남한의 편에 섰다.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와 이행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물론, 러시아 내 탈북자 문제에도 남한 정부에 협력했다. 러시아는 지난 1월 탈북자 지원활동을 펼치던 선교사 백모 씨를 구금하면서 이러한 협력 관행도 깼다.
우리 외교부는 "러시아와 필요한 '소통'은 하고 있다. 대러 제재도 유럽 국가들에 비하면 약한 편이다"라는 설명으로 일관했다. 장호진 국가안보실장 역시 지난 16일 방송 인터뷰에서 "러시아와 '일정한 선'을 넘지 말라'고 경고성 소통을 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국가 간의 관계가 '소통'만으로 유지될까? 한러 관계를 역사적으로 러시아의 잠재적 위협을 겪어 온 서유럽 나토 회원국들과 비교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어떤 유럽 국가도 러시아 내에 20만 명의 동포(고려인)를 두고 있지 않다. 더 중요한 사실은 러시아가 한반도 평화의 한 축으로 주변 어떤 나라보다 항구적인 동북아 안보 협력 시스템 구축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라는 점이다. 단순히 외교적, 경제적 자산을 날린 게 아니라 안보 자산을 부채로 돌린 셈이다.
글로벌 안보의 층위에서 보면 한러 관계의 '격하'는 더 심각하다. 러시아는 우크라 전쟁 뒤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지정학적 실험'을 하고 있고, 그 실험의 첫 번째 희생이 남한이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되풀이했다. 윤 정부는 한미 동맹과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가 안보의 보증수표인 양 여기지만, 러시아, 중국의 안보를 위협한다는 점을 외면한다. 외교적 수단을 외면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군사주의에 적극적, 맹목적으로 편승한다.
한미일 국방장관이 지난 1일 싱가포르 샹그릴라 안보 대화에서 합의한 '자유의 모서리(Freedom Edge)' 연합연습이다. 육, 해, 공, 사이버공간을 포함하는 사상 첫 3국 훈련인 동시에 중국과 러시아를 대상으로 한다. 한미가 올 8월 을지 '자유의 방패(Freedom Shield)' 연습에서 북한에 대한 핵무기 공격 훈련을 2년째 하는 것도 심각하게 보고 있다. 바로 북러 정상이 19일 채택할 '북러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에 반영하겠다는 글로벌 안보 상황이다. 과거 남북 간에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면, 완충 역할을 해왔던 미국과 러시아가 유라시아대륙 양편에서 무한 대치를 멈추지 않고 있다. 그 과정에서 북한을 상대로 대화를 모색하기는커녕 '미국의 힘'에 의한 평화에 기대는 정부의 태세는 불안하다. 미국의 '선의'에 의지하는 것 외에 어떤 대안을 갖고 있는 지 궁금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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