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끝내 한미 동맹 수준으로 '격상'한 북·러 군사-정치 동맹

본문

"서방은 우크라이나에 최신 무기를 공급해 러시아를 공격하라는 신호를 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는 오늘 서명한 문서(조약)에 따라 북한과 군사-기술 협력을 배제하지 않는다. 역내 긴장 고조는 미국과 그 동맹에 책임이 있다. 조약은 일방이 공격당할 때 상호 원조 항목을 포함했다. 무기 금수를 포함해 미국이 주도한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는 수정돼야 한다. 러시아는 한반도 분쟁의 재발을 막기 위해 계속 정치적, 외교적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오늘 맺은 조약은 평화적, 방어적 성격으로 다극화 세계 창조를 가속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북한은 글로벌 전략적 안정을 유지하려는 러시아의 임무와 역할을 평가한다. 가장 강력한 새 조약은 '조선 인민의 가장 소중한 친구'인 푸틴 대통령의 뛰어난 선견지명과 별개로 생각할 수 없다. 조약은 일방이 공격을 당할 때 즉각적인 상호 지원을 담고 있다. 양국은 전쟁을 예방하고, 평화를 확보하기 위해 군사적 잠재력을 강화하는 체제를 만들 것이다." (김정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9일 평양 금수산 영빈관에서 북·러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에 조인한 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국빈 만찬장에서 연설문을 들고 서 있다. 2024.6.19. 로이터 연합뉴스

윤석열 이어 '강대국 정치'에 뛰어든 김정은 

주사위는 던져졌다. 푸틴은 세계를 한목에 보았고, 김정은은 주로 한반도를 보았다. 두 사람의 시야에 겹치는 '현실'은 한미 동맹과 한미일 군사협력이었다. 한반도는 이제 미·러 간 강대국 정치의 한복판으로 들어갔다. '윤석열의 남한'이 앞장선 길에 '김정은의 북한'이 뒤따른 것이다. 위의 인용문은 푸틴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9일 공동언론회견에서 밝힌 내용이다. 우크라 전쟁 관련 부분은 푸틴의 설명에서 나온다.

북·러 간 19일 체결한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에서 관심을 끈 항목은 군사협력 조항이다. 윤석열 정부가 우려했던 '유사시 자동개입 조항'은 빠졌다. 조선중앙통신이 20일 공개한 조약 원문에 따르면 조약 제4조는 "쌍방 중 어느 일방이 개별 국가 또는 여러 국가로부터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러시아 연방의 법에 준하여 바로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유엔헌장 제51조는 유엔 회원국 무력 공격을 받으면 안보리가 필요한 조치를 취하기 전에라도 개별 또는 집단 자위권을 허용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9일 정상회담 뒤 산책 장소까지 직접 운전대를 잡고 김정을 국무위원장과 시험운전을 하고 있다. 작년 정상회담에 이어 이번에 새로 김 위원장에게 선물한 최신형 러시아제 아우루스 승용차다. 2024.6.19. EPA 연합뉴스

조약문 곳곳에 배치한 '회색지대'

이는 북·러 간 2000년 '친선, 선린 및 협력에 관한 조약'에 포함됐던 '위기 시 협의' 조항을 대체한 것이다. 1961년 '우호 협조 및 상호 원조에 관한 조약'의 해당 조항과 비교하면 법적 근거가 전제됐다. 1961년 조약 제1조는 '일방이 다른 국가나 국가연합의 무력 공격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면, 다른 일방은 가용한 모든 군사 지원 및 다른 지원을 즉각 제공한다'고 명시, 어떠한 전제조건도 없었다. 반면에 새 조약은 유엔헌장 제51조와 북한 및 러시아 국내법 등 2중, 3중의 전제조건을 달았다. 여지를 남긴 것이다. 세르게이 리아브코프 외교 차관은 19일 스푸트니크에 제4조의 유사시 즉각 지원 원칙과 관련해 "전제조건들을 명시한 만큼 국제법에 어긋나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눈여겨볼 대목은 북·러 새 조약의 '유사시 상호 협의 및 상호 원조' 조항이 정확히 한미 상호방위조약 수준이라는 점이다. 한미 동맹에도 자동개입 조항은 없다. 조약 제3조는 "각 당사국은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하에 있는 영토와 각 당사국이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하에 들어갔다고 인정하는 금후의 영토에 있어서 타 당사국에 대한 태평양 지역에서의 무력 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 인정하고 공통한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각자의 헌법상의 수속(절차)에 따라 행동할 것을 선언한다"고 돼 있다. 행동의 전제조건으로 한국과 미국의 헌법을 두고 있다.

자동개입 조항, 북·중 조약 및 나토 조약에만 포함

현존하는 국가 간 또는 국가연합의 방위조약 중 자동개입 조항을 두고 있는 것은 1961년 '조·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북·중 조약)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조약 등 2개뿐이다. 북중 조약은 제2조에서 "체약 일방이 어떠한 개별 국가 또는 몇 개 국가들의 연합으로부터 무력 침공을 당함으로써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체약 상대방은 모든 힘을 다하여 지체 없이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나토의 집단방위 조항인 제5조는 "하나 또는 둘 이상의 조약국에 대한 무력 공격을 전체 조약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 유엔헌장 제51조의 규정에 근거해 북대서양 지역의 안전을 회복하고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행동(병력의 사용을 포함하는)을 즉시 취함으로써 공격을 받은 조약국을 원조한다"고 명시했다. 국제법을 전제했지만, 병력 사용을 포함한 자동개입 조항이다.

북·러 새 조약의 전제는 한미 상호방위조약 상의 전제인 두 나라의 (헌)법과, 나토 조약상의 전제인 유엔헌장 제51조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아무런 조건이 없는 북·중 조약이 가장 강력하고, 국제법적 자위권만 전제한 나토 조약→한미 상호방위조약→북·러 새 조약 순이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9일 평양의 금수산 영빈관 정원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자신의 백마를 소개하고 있다. 2024.6.20. [조선중앙통신] EPA 연합뉴스

이번 북·러 정상회담은 지난해 9.13 보스토치니 정상회담과 그 성격이 확연히 달라졌다. 무엇보다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의 준수 의지를 거듭 강조하던 러시아가 사라졌다. 되레 북한의 동맹국을 자처한 것이다. 조약상의 문구와 푸틴의 언론회견 발언은 정확히 미국과 '집단 서방'을 겨냥했다. '집단 서방'에는 동아시아에서 군사주의를 확대해 온 한국과 일본도 포함된다.

러, 대북 제재국에서 북한의 동맹국으로

작년 정상회담 뒤 러시아는 안보리 제재 준수 의지를 거듭 피력하는 한편, 미국이 빈 컨테이너 사진을 통해 주장했던 북한 무기의 러시아 전달이나, 러시아 군사기술의 북한 지원 주장에 대해 "근거를 제시하라"면서 부인해 왔다.

푸틴은 언론회견에서 "정상회담의 상당한 이슈는 안보 및 국제문제였다"라면서 "미국이 주도한 안보리 대북 제재는 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역시 우크라 전쟁 뒤 서방의 제재를 받는 처지. 푸틴은 "러·북 양국은 서방이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로 부과한 제재 관행에 계속 반대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러시아는 서방의 침략으로부터 안보와 주권을 보호하려는 북한의 의도를 지지한다. 이는 북한의 권리"라고 역설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국빈방문 중인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영빈관인 평양 금수산궁전에서 확대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2024. 06. 19 [타스=연합뉴스]

북한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북한은 자국의 안보를 위해 국방력을 강화하는 조치를 취할 권리가 있다"라는 말로 뭉뚱그렸다. 2008년 10월 9일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2019년까지 안보리 제재를 준수하면서 한반도 평화를 추구하던 '푸틴의 러시아'는 이제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되레 북한과의 군사-기술 협력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이와 관련, "양국은 핵에너지와 인공지능(AI), 정보기술(IT)의 평화적 이용을 통해 우주 탐사 분야에서도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안보리 대북 제재 이탈은 미지수

그러나 러시아가 안보리 제재 결의에서 최종적으로 이탈할 것이라는 선언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대북 제재 결의를 무효로 하려면 미국을 포함한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도·태평양 지정학을 전공한 빅토르 테오 박사는 스푸트니크에 "말은 쉬워도 실행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아티욤 루킨 블라디보스토크 극동대 교수는 "러시아가 안보리 제재 결의 준수를 중단하지 않더라도, 제재가 러·북 간 협력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겉으로는 제재 체제를 인정하면서도,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회색지대'를 염두에 둔 말이다. 이 역시 푸틴이 미국과 집단 서방의 움직임에 따라 여지를 둔 대목으로 읽힌다.

최악의 경우 유사시 러시아군이 한반도에 개입한다면, 일본 내 유엔사 후방 기지 7곳이나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의 괌기지보다 블라디보스토크의 러시아 태평양 함대가 더 가깝다. 그러나 북·러 조약과 양국 지도자의 말에는 어떠한 연합훈련의 단서도 포함되지 않았다. 북·러가 새 조약으로 한미 동맹 수준의 군사-정치 동맹 관계가 됐다고 해도 성격이 다른 점이다. '주체의 군대'를 표방해 온 북한 인민군은 냉전 시대는 물론 탈냉전, 탈탈냉전 시대에도 러시아는 물론, 조약상 유사시 자동개입을 명시한 중국 인민해방군과도 한미 동맹처럼 대규모 연합훈련을 한 적이 없다. 그러나 베트남전쟁에 은밀하게 참전한 적은 있다.

19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환영 행사에 동원된 북한 주민들이 환호하고 있다. 2024.6.19. TASS 연합뉴스

나토의 동진 러시아의 동진

러시아가 우크라 전쟁에서 패배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침략 위험에 처한다면 러시아에 군대를 파견할 가능성은 있다. 상황에 따라 러북 또는 북·중·러 연합훈련이 시행될 가능성도 있다. 가정에 가정을 더하면, 북·러가 공동 군사행동을 할 여지를 넓힌 것은 분명하다.

북한은 군사적 측면에 의미를 두지만, 러시아는 정치적 측면을 더 강조하고 있다. 루킨 교수는 북·러 새 조약의 의미를 동북아시아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해석했다. "지금까지는 역내에서 포괄적 군사-정치 동맹을 맺어 온 나라로 미국이 유일했지만, 거북이 군사-정치 동맹을 맺음으로써 아시아태평양의 심장에 미국의 군사-정치적 헤게모니에 직접적인 도전을 제기했다"는 말이다. 리아노보스티 통신은 이번 조약의 의미를 "푸틴이 '미국의 아시아'의 아랫배를 비대칭적으로 가격했다"라는 헤드라인에 요약했다.

러시아는 작년 4.26 '워싱턴 선언' 이후 한미가 핵협의그룹(NCG)를 결성하고, 전략핵잠함(SSBN)을 비롯한 핵무기를 동원한 대북 공격 훈련을 하는 게 동북아 위협의 원천이라고 지적해 왔다. 한·미·일 국방장관이 지난 1일 싱가포르 샹그릴라 안보 대화에서 사상 처음으로 러시아와 중국의 위협을 포함한 육해공·가상공간의 연합연습 '자유의 모서리(Freedom Edge)'를 벌이기로 한 것에 대해서도 "대응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강력한 경고를 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9일 오전 2시 국빈방문할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맞아하기 위해 평양 순안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다. 2024. 06. 19. [스푸트니크=연합뉴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교부 대변인은 19일 북러 정상회담과 관련해 "한미 간 핵 협의는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한편, 미국이 역내에서 공격적 정책을 추구하고 있음을 증명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일본 내 중거리미사일을 배치하고, 일본의 비핵국가 지위를 약화시키려는 미국의 계획은 러시아의 특별한 우려를 일으키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미국과 한국이 북한의 가상 위협에 대응할 뿐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을 전략적으로 억지하기 위해 공동의 핵 계획을 진행하고 있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았다.

러시아 입장에서 북러 조약은 미국의 군사주의가 팽배한 동아시아 전략공간에 러시아가 뛰어들 수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작년 7월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는 폐막 연설에서 인도·태평양 지역 국가들과의 협력을 다짐했다. 우크라 전쟁을 빌미로 영국을 비롯한 나토 회원국들이 동아시아 연합훈련에 참여하고, 일본이 상호 파병을 전제로 필리핀, 호주, 영국 등과 '상호접근협정(RAA, 원활화 협정)'을 맺고 있는 것에 대한 대응책으로 '북러 동맹'을 활용하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미국 수준'에 맞춰 온 푸틴의 행동궤적

북·러 새 조약이 한미 동맹 수준의 '유사시 상호 협조' 조항을 넣은 것은 우크라 전쟁 이후 '미국 수준'을 강조해 온 푸틴의 행동궤적과 일치한다. 실제로 핵무기 독트린과 대규모 연합훈련, 무기 배치를 비롯한 군사주의에 관한 한 미국이 늘 한두 걸음 앞서 걸은 게 사실이다. 푸틴은 특히 러시아도 핵무기 선제사용을 명시한 미국 핵 독트린과 같은 수준으로 핵 독트린을 수정할 가능성과 미국이 비준하지 않은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상 하지 않았던 핵무기 실험을 할 가능성을 흘렸다. 최근엔 미국이 나토의 5개 회원국에 배치한 100개의 B-61 전술 핵폭탄 사용 훈련을 해 온 것에 버금가는 훈련을 벨라루스와 벌였다.

푸틴이 북·러 정상회담 언론회견에서 나토가 우크라에 러시아 공격을 허용한 것을 강조하면서, "북한과의 군사-기술 협력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과 맥이 통한다. 북·러 새 조약은 한반도 안보 층위와 글로벌 안보 층위에 이중의 함의를 던진다. 북한에만 확대경을 들이대면 허방에 빠지기 십상이다. 북·러 관계의 격상은 한·러 관계의 격하를 의미한다. 성급하게 의미를 과장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현황을 자세히 살피고, 대한민국의 행보를 결정할 시점이다. 조성렬 북한대학원대학 초빙교수는 <시민언론 민들레>에 "북한은 러시아의 확고한 군사지원 약속 아래 전쟁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이제 경제건설에 전념할 여유를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