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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전쟁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는 '한반도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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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의 전쟁이 아니지만, 한반도 위기는 우리 '발등의 불'이다. 미·러 갈등 분위기 속에 북한과 러시아가 맺은 군사-정치적 동맹 조약이 대한민국을 다시 우크라 전쟁의 소용돌이로 밀어 넣고 있다. 한국과 러시아, 러시아와 미국이 각각 '만약(if)'을 전제로 위험한 게임을 벌이기 시작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2일 모스크바 크렘린궁 인근 알렉산드로프스키 정원에 있는 '무명용사의 묘'에 헌화하고 있다. 2024.6.22. AFP 연합뉴스

'우크라 무기 제공'의 불확실성

장호진 국가안보실장은 23일 '만약' 러시아가 북한에 고도의 정밀무기를 제공한다면, 우크라 무기 제공을 재개할 것을 시사했다. 지난 20일 '북러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을 규탄하는 정부성명을 발표하면서 내놓은 '우크라 살상무기 지원 재검토'의 조건을 공개한 것이다. 장 실장은 이날 KBS 일요진단에 출연, "(한국이 우크라에 제공할 무기는) 살상 무기든 비살상 무기든 여러 단계의 조합을 만들 수 있고, 그 검토 작업은 이미 끝났다"고 말했다.

'만약' 서방이 우크라에 무기를 제공, 러시아에 대해 공격하도록 한다면, "북한을 포함해 우리 무기를 세계 다른 지역으로 공급할 권리가 있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20일 하노이 기자회견 발언과 맞물린다. 푸틴 대통령은 전날 평양 언론성명에서도 "서방이 우크라에 무기를 공급, 러시아를 공격하라는 신호를 주는 상황에서 북한과 군사-기술 협력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했었다.

한국의 선택지를 벗어난 영역에서 '만약'이 현실화하는 경우는 더 위험하다. 몇 개의 '만약'이 최악의 시나리오로 전개된다면 서방 첨단무기를 이용한 우크라의 러시아 본토 공격→러시아의 북한 및 이란 등지로 첨단 정밀무기 제공→한국의 대우크라 무기 직접 제공→러시아, 한국이 감내하기 어려운 '상응조치'의 4단계 소용돌이 속에 휘말릴 수 있는 것이다.

미국과 프랑스를 필두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핵심 회원국들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정밀무기로 러시아를 공격해도 좋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사진은 미국 육군이 2021년 12월 14일 뉴멕시코주 화이트샌드 미사일 발사장에서 미사일 시험발사를 하고 있는 장면. 2024.6.22. [AP 자료사진] AP 연합뉴스

미국, 소용돌이 '1단계' 착수

위기 시 군사 지원'을 담은 푸틴은 '북러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의 제4조에 대해서도 "북한이 피침 당할 것을 전제로 한 것"이라면서 "한국의 북한 침략이라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면 걱정할 게 없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한미 동맹에 포획된 윤석열 정부가 과연 '전략적 자율성'을 행사할 것이냐는 점이다. '만약 게임'은 상대방 또는 제3자의 결정에 따라 행동에 돌입하겠다는 구조를 특징으로 한다. 미국은 "한국이 결정할 문제이지만, 우크라에 대한 무기 지원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내보이고 있다. 전쟁의 직, 간접적 당사국은 상대국의 완전한 파괴를 향해 무한 질주한다. 그러나 미국조차 한국의 전략적 입장을 건너뛰어 무조건 무기 제공을 압박하지는 않고 있다. 그만큼 한국이 부담할 위험성이 크기 때문일 터이다.

이 대목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은 그동안 반복됐던 윤석열 정부의 '과잉 액션'이다. 더구나 오는 7월 9~11일 워싱턴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 한국 대통령의 참석이 예정된 상황이다. 북러 군사-정치적 동맹은 우크라 전쟁뿐 아니라 작년 4.26 '워싱턴 선언' 이후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역대급 규모로 확대된 한미, 한미일의 연합군사훈련을 배경으로 한다. 전략핵잠함(SSBN)과 전략 전폭기 등 미국 전략핵무기가 정기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백악관은 북러 조약 체결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소용돌이의 제1단계' 착수를 다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국빈만찬 특별공연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미국 싱어송라이터 돈 매클린의 친필 서명이 담긴 기타를 선물받고 있다. 2023.4.28 [공동취재] 연합뉴스

존 커비 백악관 전략소통 보좌관이 20일 밝힌바 "우리는 필요에 따라 인도·태평양 전역에서 (방위) 태세를 평가할 것"이라며, 한국을 비롯해 다른 나라에 제공할 예정이던 패트리엇 미사일과 나삼스 지대공 미사일을 우크라에 우선 공급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윤석열 정부는 20일 북러 새 조약을 규탄한 '정부성명'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한미 동맹의 확장억제력과 한미일 안보협력 체계를 더욱 강화할 것(제4항)"을 다짐했다.

여전히 안 보이는 '대러 외교'

시아가 지난 1일 싱가포르 한미일 국방장관회의에서 결정된 3국의 첫 연합훈련 '자유의 모서리(Freedom Edge)'를 러시아와 중국에 위협이라고 밝힌 상태에서 동아시아에서 추가로 확대되는 군사주의는 우크라 전쟁에 이어 한반도 위기를 악화시킬 또 다른 뇌관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히 '대통령 리스크'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은 작년 4월 방미를 앞두고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우크라 민간인의 대량 살상을 전제로 살상무기 제공 방침을 공언해 평지풍파를 일으킨 것을 시작으로 굵직한 상황 악화의 화근이 됐다. 작년 7월엔 리투아니아 빌뉴스 나토 정상회의 참석에 이어 키이우를 방문, 우크라가 '생즉생, 사즉사'의 각오로 승전할 것을 기원했다. 9.13 북‧러 정상회담 뒤에는 북러 간 무기 거래를 기정사실로 한 미국의 주장을 복창, 한‧러 간 갈등을 부추겼다. 결과적으로 북러가 군사-정치적 동맹을 맺음으로써 한러 관계를 격하시키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셈이다. '(미국의) 힘'에 의한 평화'를 외쳐 온 대통령이 나토 정상회의 자리에서 또다시 한러 관계를 악화시키는 발언을 내놓는다면, 한반도 위기는 미·러 간 강대국 정치의 소용돌이 속으로 한 발짝 더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된다.

국가안보실 수장이 공영방송에 출연해 한국의 대우크라 무기 제공 검토의 조건을 밝힘으로써 불확실성을 다소 걷어낸 것은 평가할 대목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러시아를 상대로 '만약(if) 게임'에 몰두할 때가 아니다. 한‧러 간 고위급 대면 대화를 통해 러시아의 속내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먼저다. 지금 상황은 작년 9.13 북러 정상회담 결과를 5개월 뒤에 전해 듣는 우를 다시 범할 정도로 여유가 없다.

대니얼 크리텐브링크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가 러시아-베트남 정상회담 이틀 뒤인 22일 하노이를 방문, 부이 탄 손 베트남 외교장관과 회동했다. 사진은 지난 5월 21일 필리핀 타구이구에서 발언하는 크린텐브링크 차관보. 2024.6.22. [AP 자료사진] 연합뉴스

발 빠른 미국 외교

이와 관련, 미국의 발 빠른 대응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대니얼 크리텐브링크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를 22일 하노이에 파견했다. 크리텐브링크는 푸틴의 20일 베트남 방문과 무관하다고 언론에 밝혔지만, 이틀 전 러시아와 베트남이 전략적 협력을 확대한 정상회담의 결과 설명을 듣지 않았을 리가 만무하다. 그는 부이 탄 손 베트남 외교장관과도 회동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새 조약 체결 뒤 북·러 관계를 '동맹'이라고 표현했지만, 푸틴은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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