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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수미 테리 사건화' 덮을 시간 13개월이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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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 테리가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조사를 받은 건 두 차례였다. 연방검찰의 기소장은 조사를 테리의 '자발적 인터뷰'였다고 표현했다. 2014년 11월 첫 번째 자발적 인터뷰는 FBI가 일종의 경고를 한 자리였다. FBI 수사관들이 국정원 요원들과의 접근 사실을 알리자 테리는 눈에 띄게 예민해져서 말을 더듬으며 앉은 의자에서 자세를 바꿨다. 테리는 국정원 사람을 만났지만,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가 잠시 후 (뉴욕에서 만난) 국정원 요원-1의 성을 댔다. FBI가 국정원이 다시 접근해 한반도 정책 관련 세미나에 은밀하게 돈을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할 수 있다고 경고하자, 테리는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기꺼이 FBI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연방검찰 기소장 14항)

미국 연방 검찰이 17일 한국계 한반도 전문가 수미 테리(김수미·54, 뉴욕)를 전격 기소한 것은 한미 관계의 냉엄한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사건이다. 미 법무부 보도자료와 기소장에는 단언컨대 테리의 활동이 미국 안보를 위협했거나, 한미 관계에 악영향을 미친 행적이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역사적으로 한미동맹이 가장 굳건하다며 샴페인을 터뜨려 온 윤석열 정부의 잔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건 분명하다. 동시에 미국이라는 나라의 유전자(DNA)와 한미 관계의 본질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준다.

기소장에 따르면 FBI는 테리가 요원-1(유엔대표부 공사)과 만난 사실을 주목하고 있음을 전하고, 추후 조심하라는 정도의 충고만 던졌다. 이후 FBI가 다시 테리를 조사한 것은 2023년 6월 5일이다. 8년 7개월 만에 두 번째 자발적 인터뷰를 한 테리는 FBI가 제시한 그동안 자신의 행적을 인정하고, 자신이 국정원의 정보원(source)이었음을 시인했다는 내용만 나온다. (52~57항) FBI는 같은 날 테리의 집을 수색해 테리가 선물로 받은 보테가 베네타 핸드백과 크리스티앙 디올 재킷(요원-2이 사준 돌체&가바나 코트를 반품하고 구매한 것), 루이 뷔통 핸드백(요원-3의 선물)을 압수했다. 또 요원-3과 통화 및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테리의 휴대폰을 압수했다. (58~59항)

첫 번째 조사에서 테리가 약속한 대로 국정원 요원들과의 접촉 내용을 FBI에 보고했는지는 기소장에 나오지 않는다. 역으로 테리가 국정원 요원들에게 자신이 FBI의 감시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말했는지도 분명치 않다. 테리가 접촉했던 한국 정부 관계자는 국정원 요원-1과 요원-2 및 그의 후임인 요원-3 (워싱턴 대사관 공사참사관), 대사관 주재 외교관 등이다.

수미 테리 미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2020년 8월 12일 워싱턴의 한 그리스 레스토랑에서 국정원 요원-2와 요원-3과 함께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장면. 미국 연방검찰이 기소장에 수록한 사진이다. 2024.7.17. [기소장 캡처] 연합뉴스

두 번째 조사는 기소 전 최종 조사였다. 기소장은 이후 테리의 행적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자택 압수수색을 했다면 법원의 영장도 발부받았을 터. 기소를 위한 모든 조사와 증거물 확보를 해놓고도 지난 16일 기소 및 신병을 확보할 때까지 13개월 동안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테리는 그 사이 작년 11월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자신이 제작자로 참가한 탈북 다큐멘터리 '비욘드 유토피아' 상영회에 참석, 당시 박진 외교부 장관과 대화를 나눴고, 지난 5월 말에는 제주 포럼에 참석해 한국 언론과 인터뷰도 했다. FBI가 스파이 행위인 양 묘사했던 것과 별 차이 없이 한국 정부와 꾸준히 접촉하며, 버젓이 협력해 온 것이다. 이 기간 FBI의 침묵 또는 '용의자' 방치에 의혹이 가는 대목이다.

1차 조사를 하기 이전에도 FBI는 테리의 의심스러운 행적을 확보해 놓고 있었지만,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외국대리인등록법(FARA) 위반 사실을 통지하거나, 등록을 권하지 않았다. 테리가 뉴욕에서 국정원 공사와 처음 만난 건 2013년이다. 이때부터 FBI의 첫 번째 조사까지 테리는 요원-1에게 한반도 평화·통일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한 견해와 자료를 요청했고, 요원-1이 제공한 초안에 기초해 관련 연설을 했다. 주미 한국 대사관의 제안에 따라 포린어페어스 2014년 6월 18일 자에 기고문도 게재했다. FBI는 이러한 행동에 대해 어떠한 경고도 하지 않았다. 첫 번째 조사에서는 국정원 요원-1과 접촉한 사실만 확인시켰다.

이후 두 번째이자 마지막 조사 때까지 9년 가까이 테리는 국정원이나 대사관 관계자(외교부)의 제안이나 부탁을 받고 △한미 양국의 신문, 잡지 기고 및 TV 출연 대언론 활동 △ 2016년 12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NSC 관계자 만남 주선 노력(실패) △한반도 관련 세미나 개최 △미국 전현직 관료들과 한국 국정원장이 참가하는 이벤트, 의회 스태프들과의 '해피 아워' 이벤트 조직 △주일 미국 대사 회동 결과 공유 등의 활동을 했지만, FBI는 동향만 지켜보았다. 그런데 왜 갑자기 작년 6월 자택 압수수색과 증거물 압수 등의 사법 행동을 했을까. 또 그로부터 13개월 동안 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을까. 행동과 부작위에 각각 이유가 있었을 터.

국정원 요원-3이 2021년 4월 16일 루이뷔통 가방을 신용카드로 구매하는 장면. 옆에 수미 테리가 서 있다.  상점 감시카메라에 찍힌 사진이다.  2024.7.17. [기소장 캡처] 연합뉴스
수미 테리와 국정원 요원-3이 2021년 4월 16일 루이뷔통 백을 구매한 뒤 세워 놓은 주미 대사관 번호판의 승용차로 걸어가고 있다. 두 사람은 워싱턴의 스시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 한 뒤 한 호텔의 루프톱 바에서 시간을 보낸 뒤 헤어졌다. 미 연방검찰이 기소장에 수록한 사진이다. 2024.7.17. [기소장 캡처] 연합뉴스

테리가 국정원 요원들과 접촉을 한 건 훨씬 전부터였다. 그는 두 번째 조사에서 자신이 2008년 CIA에서 해고되지 않기 위해 사직 형태로 그만두었다고 밝혔다. CIA 근무 시절에도 국정원 요원과의 접촉이 문제가 됐었기 때문이다. 이때도 테리 행적의 '의도'와 '결과'가 미국 국가기밀을 건네거나, 미국 국익에 저해되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사직으로 정리했음이 분명하다. 아니라면 역시 기밀을 다루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와 국가정보협회(NIC)에 곧바로 취업(2008~2011)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2차 조사를 전격 결정하기까지 테리의 최근 행적이 문제가 됐을 가능성은 있다. 연방검찰과 FBI가 여론에 집중적으로 홍보한 테리의 명품 선물 수수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기 전의 일이다. 윤석열 정부 국정원은 테리에게 △핵협의그룹(NCG)과 관련한 여론 조성 △한일 화해 △미 전략핵잠함·전폭기 등 전략무기 수시 배치 △한미 동맹의 중요성 강조 등을 집중적으로 주문했다. 이 중 무언가 FBI로 하여금 행동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한 '방아쇠'가 있었을 거라는 가정이다.

국정원이 윌슨 센터나 외교협회(CFR) 등 테리가 몸담고 있던 싱크탱크에 37000달러(약 5100만원)의 거금을 기부한 것도 2022년 5월 이후다. 그러나 테리가 언론 기고 등을 통해 홍보한 것은 한미 정상의 작년 4·26 워싱턴 선언과 8·18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의로 구현된 내용이다. 어느 나라가 먼저 제안했건, 어쨌든 한미, 한미일 차원에서 합의함으로써 종결된 것이다.

수미 테리가 남편이자 칼럼니스트인 맥스 부트와 공동집필한 '한국이 일본과의 화해라는 용감한 발걸음을 내딛었다'는 제목의 워싱턴 포스트 칼럼. 기소장에는 주미 한국 대사(조현동)과 국가안보실장(조태용)이 각별한 감사의 뜻을 전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2024.7.20. [워싱턴 포스트 누리집] 시민언론 민들레

물론 '워싱턴 선언' 석 달 전부터 핵무기를 손에 쥔 미국 대통령은 정작 '핵무기'를 거론하기보다 ‘모든 옵션’이라는 표현으로 여지를 두는 데 되레 한국 대통령이 기회 있을 때마다 미국 핵무기를 운운하며 미국의 힘에 의한 평화를 강조하는 메시지의 불일치가 불편했을 수는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작년 1월 2일 자 조선일보 인터뷰를 통해 "한미가 미국 핵전력을 공동기획(Joint Planning), 공동연습(Joint Exercise) 개념으로 운용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핵무기는 미국 것이지만 정보 공유와 계획, 훈련을 한미가 공동으로 해야 한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도 마찬가지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다음날 "아니다(No)"라며 일축했다. 연방검찰 기소장은 (윤 대통령이 덜컥 발표한 뒤) 국정원 요원이 테리에게 이러한 아이디어를 미국 언론에 설파해달라고 여러 차례 부탁했음을 적시했다. 메시지의 불일치일 뿐 아니라 거꾸로 일을 추진한 것이다.

2013년부터 꼬박 10년 동안 테리의 행적을 감시해 온 FBI가 어떤 형식으로든 사건을 마무리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한 정보 전문가는 <시민언론 민들레>에 "테리의 혐의 자체가 무겁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FBI로선 사건 마무리를 할 시점이 됐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는 테리와 국정원 요원이 명품 쇼핑을 하는 장면이나,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장면 등이 폐쇄회로TV(CCTV)에 고스란히 찍힌 것과 관련, "국정원이 은밀한 공작의 기본 규칙을 전혀 지키지 않은 걸 보면 역으로 수미 테리가 공작의 대상이 아니었다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기밀정보를 취급하는 신분이 아니라, 평범한 싱크탱크 전문가이다 보니 편하게 만났던 것 같다는 말이다.

워싱턴에서 활동하는 미국 한반도 전문가 수미 테리(김수미)가 작년 11월 서울 도렴동 외교부에서 열린 탈북 다큐멘터리 '유토피아 너머(Beyond Utopia)' 상영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테리는 영화 제작자로 참가했다. 2024.7.17. 연합뉴스

그렇다고 해도 작년 6월 뒤 FBI가 손 놓고 있었던 13개월 동안의 부작위는 설명이 안 된다. 이 대목에서 작년 4월 불거진 미 국방부 기밀문건 유출 사건을 연관지어 생각해볼 수는 있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대통령실 김성한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외교비서관의 통화내용을 감청한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정보 전문가 사이에서는 "한국 정부가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갔지만, 미국이 상당한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면서 "필요한 경우 바터(교환)용으로 수미 테리 사건을 활용하려고 했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하지만 대통령실 도청을 한 NSA와 미 국내 수사 기능을 맡고 있는 FBI 간에 팀플레이를 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NSA는 국방부, FBI는 법무부 소속이기도 하다. 작년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불거진 대통령실 도청 문제에 대해 윤석열 정부는 미국 측에 항의는커녕 "미국이 우리에게 어떤 악의를 갖고 했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번 일이 양국 간 정보 공유가 강화되는 계기가 될 것(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라며 되레 미국 입장을 두둔하는 데 급급했다. 정상회담 의제로 올리지도 않았다. 한국민의 자존심을 한국 정부가 외면한 꼴이다. 미국이 이처럼 대미추종적인 윤석열 정부의 반발을 우려해 '보험용'으로 테리 사건을 터뜨렸다고 보기는 쉽지 않다. 결과적으로 한국 정부는 미국의 도청 의도에 '악의'가 없다는 터무니없는 이유로 면죄부를 주었는데 미국 정부는 테리의 한국 협조 활동의 '의도'가 스파이 행위인 양 몰아 기소를 강행했다. 웃는 낯에 침을 뱉은 격이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어페어스 2014년 6월 18일 자에 실린 수미 테리의 기고문. '완전하고 자유로운 하나의 코리아'라는 제목으로 한반도 통일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역시 국정원 간부의 제안으로 쓴 글이다. 테리의 언론 기고문은 그러나 미국 국가안보에 위해가 되는 요소나, 한미 관계, 한반도 문제에 악영향을 끼칠 내용이 없다. [포린 어페어스 누리집] 시민언론 민들레

테리 사건에 대한 FBI의 부작위보다 더 관심을 끄는 건 윤석열 정부의 부작위다. 작년 6월 5일 FBI가 압수한 테리의 휴대폰에는 국정원 요원-3(주미 대사관 공사참사관)과 주고받은 암호화된 음성 통화만 100통이 넘었다. 이날 자 문자메시지도 3개 발견됐다. (기소장 59항) 사흘 뒤 자동 삭제되도록 설정해 놓았기에 문자메시지 수는 적었다. 이 사실은 국정원 요원이 테리에 대한 FBI의 수사를 인지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음을 말해준다.

테리는 이후에도 한국을 오가면서 한국 정부와 협력해 왔다. 그 과정에서 압수수색까지 당한 자신에 대한 FBI의 수사를 말했을 개연성이 높다. 한국 정부는 뻔히 알면서도 FBI가 아무런 추가 행동을 하지 않은 13개월을 허비했다는 말이 된다. "사상 최고"라는 한미 관계의 분위기를 십분 활용해 조용히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다. 미국의 사법절차 진행에 우리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

미국은 물론 법치주의 국가이지만, 국익에 필요하다면 오히려 행정부가 나서 법을 우회할 방안을 모색한다. 대표적인 예가 2005년 가을 미국 재무부가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 계좌에 있던 북한의 예금계정을 동결한 사건이다. 국무부는 북핵 6자 회담 진척을 위해 우선 와코비아를 비롯한 미국 은행과 교섭했다가 나중엔 중국과 러시아 은행에 협조를 요청했다.

미국 관련법에 따라 불법계좌 동결 해제에 참여한 금융기관은 2차 제재를 받기 때문에 미국과 중국 은행은 손사래를 쳤고, 결국 러시아 은행이 미국 측의 편의를 봐주었다. 테리가 외국대리인등록법(FARA)을 위반했을지언정 미국이 한미 관계 개선을 국익으로 판단했다면 얼마든지 외교적 타협책을 찾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미국 법무부가 수미 테리 기소 사실을 공표한 지난 17일 그가 일했던 워싱턴의 싱크탱크 윌슨센터 누리집 접속이 안 됐다. 이번 사건은 미국 사회에도 큰 충격이다.  2024.7.17. 시민언론 민들레

한국 정부가 타협을 시도했는데도 통하지 않았다면 더 문제다.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해 국내법 우회를 무릅쓴 미국이 한미 관계 개선을 위해서 움직이지 않았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한미 관계가 속으로 곪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로버트 김 사건 이후처럼 미국 내 한인 사회가 한국 정부에 협조를 꺼리는 분위기만 생기는 게 아니다. 주미 대사관의 합법적인 대미 활동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테리 사건을 한미 관계의 위기라는 관점에서 봐야 하는 까닭이다.

미국 정보·수사기관이 대통령실 도청과 테러 기소를 통해 1년 새 두 차례나 대한민국 국민에 모욕감을 주었다.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그것도 같은 한국 대통령 임기 중에 일어난 일이라는 게 믿기 어려울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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