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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식 국방부는 휴전선서 과연 어떤 '사건'을 기다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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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사건이 일어나길 학수고대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막연하고 소극적인 기다림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북한을 자극함으로써 도발을 유도하고 있다. 군사분계선 상황이 심상치 않다. 말로는 국가 안보와 국민의 안위를 들먹이지만, 온몸으로 돌진하는 방향은 정확히 그 반대쪽이다.

조만간 남북 간 경계에서 여론의 관심을 일거에 끌어들일 '사건'이 발생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합동참모본부는 21일부터 사흘째 전 전선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개하고 있다. 23일은 대한민국의 발전상과 행복한 생활 모습, 대중가요(K-POP)를 방송하고 있지만, 내용은 수시로 바뀐다. "북한 주민이나 북한군에게 도움이 될 내용도 있고, 우리 체제를 선전하는 내용도 있다"는 설명이다. 오전 6시부터 밤 10시까지 종일 방송이고, 고정형·이동형 확성기가 모두 동원되고 있다.

합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대북 방송 이후 북한군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지만, 아직 설명할 사안은 없다"고 밝혔다. 하필 정전 71주년 기념일(27일)을 앞둔 시점. '대북 방송→북한군 동향 주시→?'가 분계선의 일상이 됐다. 북한의 오물 풍선 부양에 대한 대응으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오물 풍선과 무관하게 대북 방송의 목적을 감추지 않는다.

챗 GPT가 작성한 '터널 비전'의 이미지. 터널 속에선 출구만 바라보게 된다. 2024.7.23. 시민언론 민들레

"확성기 방송은 한 번 실시했다고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방송을 지속적으로 듣다 보면 천천히 효과가 날 것으로 예상한다"라는 게 이성준 합참 공보실장이 22일 밝힌 작전 목표다. "(북한군 병사들의) 내부 동요라든지 탈북 또 기강이 흔들리는 등 다양한 효과가 있을 것이고 이에 따른 2차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일부 탈북자 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에 따른 오물 풍선 사태가 이제 우리 군의 공식적인 대북 심리전으로 확대된 것이다.

미국의 '우회적 승인' 또는 '마뜩잖은 묵인'도 받았다. 패트릭 라이더 미 국방부 대변인은 22일 브리핑에서 한국군의 전면적인 대북 확성기 방송에 대해 "한국군 작전은 한국 측에 물어 보라"면서도 "한국의 주권과 국경을 보호하는 활동을 계속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대북 방송이 주권과 국경을 보호하는 활동인가? 북한이 지난 5월 28일 처음 보낸 오물 풍선에는 담배꽁초와 퇴비(가축 분뇨), 폐건전지 등이 담겼지만, 최근엔 종이 쓰레기만 담겼다. 초반 정체불명의 오물로 인한 오염 위협은 줄었다. 하여 '쓰레기 풍선'으로 이름이 변경됐다. 화생방 오염물질이 포함되지 않았지만, 우리 군 장병들이 일일이 확인하는 처지는 달라지지 않았다.

정부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결정한 9일 경기도 파주 접경 지역에 기존 대북 방송 확성기가 있었던 군사 시설물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해당 시설물 안에 확성기가 설치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2024.06. 09 연합뉴스

이 대목에서 대북 전단-쓰레기 풍선-대북 확성기 방송이 서로 제기하는 위협을 평가하면 이렇다. 일부 탈북자 단체들이 보내는 대북 전단은 북한 체제 붕괴를 꾀하는 '사적 복수'의 성격을 갖고 있다. 쓰레기 풍선은 우리에게 불편과 수고를 끼친다. 그런데 대북 방송은 북한 체제 붕괴를 꾀하는 '군사 작전'이다. 국가 안보와 국민의 안위와 전혀 상관없는 공격적 대북 태세를 보여줄 뿐이다. 우리가 얻을 편익은 없다. 북한 체제를 전복시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한다는 생각은 망상에 가깝다.

대북 전단 살포가 국민적 지지를 받는 것도 아니다. 한국갤럽의 6월 11~13일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부가 막아야 한다'라는 응답이 60%에 달했다. '막아선 안 된다'라는 답은 30%였다. 그럼에도 전단 살포를 묵인한 뒤 그로 인한 쓰레기 풍선에 대응한다면서 대북 방송을 재개, 판을 키우고 있다.

쓰레기 풍선은 북한의 1차적 대응에 불과하다. 우리가 사적·공적으로 양면 공격을 계속하면, 조만간 2차 대응에 나선다고 보는 게 합리적인 전망일 것이다. 우리 군의 자극에 따라 예상되는 북한의 대응은 또 있다. 바로 군이 이달 2일 군사분계선 5㎞ 이내에서 벌인 포사격 훈련에 대한 맞대응이다. 백령도, 연평도의 해병대 부대도 해상 사격훈련을 재개했다. 9.19 남북 군사합의 체결 전인 2017년 이후 처음이었다. 지난 1월 초 남북이 서해 완충구역 포사격을 주고받았을 때만 해도 포문을 먼저 연 건 북한이었지만, 이번엔 우리 군이 먼저 포사격을 했다.

11일 오전 강원도청 앞에서 강원연석회의, 춘천공동행동 등 시민단체가 대북 전단 살포와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들은 국내 민간 단체에서 살포하는 대북 전단 등이 남북 긴장을 높이고 군사 충돌 위기를 부추긴다고 주장했다. 2024.6.11. 연합뉴스

터널 속을 걷다 보면 출구만 바라보게 된다. 포사격 훈련과 대북 확성기 방송. 분계선 인근에서 벌이는 우리 군의 수상한 특이동향의 끝은 과연 무엇일까. 북은 아직 우리 군의 포사격에 대응하지 않고 있다. 전 전선에 걸쳐 펼치고 있는 대북 확성기 방송에도 아직 2차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분계선 인근의 군사행동으로 대응할지는 미지수다. 오물 풍선이 그랬듯이 '준비되지 않은 곳을 치고, 뜻하지 않은 곳으로 나아갈(攻其無備 出其不意)'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묘연하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주창하는 '자유의 북진정책'은 전략이라기보다 전직 보수 유튜버의 '희망'에 머문다. 분계선 부근에서 우리 군이 벌이는 '특이 동향'이 군사적 목적에서 비롯됐다고도 보기 어렵다. 심리전의 효과는 전쟁이 벌어져야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대북 방송을 강행하는 태세에서 정치적 의도가 물씬 묻어난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조기 레임덕에 빠진 정부 입장에서 분계선 부근에서 '사건'이 벌어진다면 일거에 위기 돌파가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시는가. "당신은 전쟁에 관심이 없을지 모르지만, 전쟁은 당신에 관심이 있다"는 걸. 레온 트로츠키가 남긴 경구다. 의도가 졸렬하고, 방법이 도발적이며, 결과가 위험하기 짝이 없다.

21일 서울 광화문 광장 부근에 북한이 날려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쓰레기 풍선의 휴지가 떨어져 있다. 2024.7.21.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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