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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 테리 기소 D-18, 미 국가정보국장은 왜 방한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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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연방 검찰이 17일 한국계 한반도 전문가 수미 테리(김수미·54, 뉴욕)를 전격 기소한 것은 한미 관계의 냉엄한 현실을 되돌아보게 하는 사건이다. 미 법무부 보도자료와 기소장에는 단언컨대 테리의 활동이 미국 안보를 위협했거나, 한미 관계에 악영향을 미친 행적이 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역사적으로 한미동맹이 가장 굳건하다며 샴페인을 터뜨려 온 윤석열 정부의 잔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건 분명하다. 동시에 미국이라는 나라의 유전자(DNA)와 한미 관계의 본질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준다.

애브릴 헤인스(54) 미국 국가정보국장(DNI). 공교롭게 수미 테리와 동갑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정보기관에서 잔뼈가 굵지 않고도 미국 16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직책에 올랐다는 점이다. 시카고대 졸업 뒤 볼티모어에서 꽤 유명한 '에이드리언의 북 카페'를 운영하다가 뒤늦게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졸업, 2001년 변호사가 됐다. 테리가 중앙정보국(CIA)에서 일을 시작한 해이다.

2020년 11월 24일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이 사상 첫 여성 국가안보국장으로 지명한 애브릴 헤인스가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퀸 시어터에서 열린 외교안보팀 소개 기자회견장에서 인사를 하고 있다. 2020.11.24. AP 연합뉴스

북카페 주인서 변호사 변신 

버락 오바마 행정부 국무부와 백악관에서 법률 자문역으로 일하다가 2013년 6월 CIA 부국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오바마 퇴임 뒤 주로 민간 부문에 몸을 담았던 헤인스는 2020년 11월 23일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에 의해 사상 첫 여성 DNI에 지명된다. 바이든 대선 캠프에서 외교와 국가 안보를 총괄하면서 발휘한 전문성을 평가받은 것. 상원 인준 청문회를 거쳐 이듬해 1월 20일 취임했다.

새삼 헤인스의 이력을 소개한 건 지난 16일 미국 법무부의 수미 테리 구속 직전 그의 손길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헤인스가 돌연 서울을 방문,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접견한 건 지난 6월 28일. 미연방검찰의 테리 구속 및 기소를 불과 18일 앞둔 시점이었다. 2021년 10월 방한한 뒤 2년 8개월 만이다. DNI가 미 행정부 고위 관료 자격으로 동맹국 국가수반을 만나는 건 예외적이다. 본연의 임무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정보국장실(ODNI) 누리집은 16개 국가 정보기관이 한 팀으로 통찰력 있는 정보 업무를 수행하도록 통합-협력-혁신토록 조율하는 걸 공식 임무로 규정해 놓고 있다. 정보 수집과 분석, 방첩 활동을 융합, 미국 국가 정책 입안자들에게 적시에 정확한 분석이 제공되도록 조력한다. "독보적인 통합 첩보 활동을 통해 더 안전하고 더 번영하는 세계"가 ODNI가 추구하는 목표다. 그런데 지난 6월 말 방한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테리 기소와 관련해 관심갖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수미 테리 미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이 지난 5월 29일 서귀포시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주포럼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4.5.29. 연합뉴스

안보-외교 문제 조정력 인정

연방수사국(FBI)은 10년 동안 동향을 감시하던 테리에 대한 조사를 작년 6월 5일 종결했다. 그러나 전격 기소하기까지 13개월 동안 서랍 속에 넣어두고 있었다. 이 기간 FBI의 무작위와 관련된 방한이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일 거다. 윤석열 정부 주장대로 한미 관계가 사상 최고라면, '불미스러운 사건'을 사전 협의했을 것이고, 지금도 협의 중이라고 봐야 한다. 협의가 있었더라도 기소가 강행됐다면 협의가 실패했다는 증거일 뿐이다.

외국 국가 또는 정부 수반을 만나는 것은 DNI의 공식 임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우리 국가정보원과 정보 협력을 주관하는 CIA와 국내 방첩-첩보를 맡은 FBI 등 미 정보공동체를 총괄 지휘하는 게 DNI 본연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안보 문제와 외교 문제를 아우르는 조정 능력은 바로 헤인스가 바이든 행정부 DNI에 발탁된 이유이기도 하다.

헤인스의 방한은 윤석열 정부 취임 이후 처음이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대통령실은 당일 대통령이 헤인스와 '북러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 관련 정보를 공유하고 한미의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한국의 무기 지원 재검토 방침도 논의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북러 조약과 관련해 CIA가 확보한 정보가 있다면 국정원을 통해 전달하는 게 공식 통로다. 이를 생략하고 DNI가 한국 대통령을 독대했다는 건 무언가 특별한 의제가 있었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 대통령실이 접견 전 흘린 예상 의제는 실제 의제라기보다 북러 조약 뒤 한미가 무언가 중요한 협의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한 국정홍보 전략의 일환일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실은 접견 뒤 논의 내용을 소개하기는커녕 관련 사진도 공개하지 않았다. 

애브릴 헤인스 미국 국가정보국장이 서울을 처음 방문한 2021년 5월 12일 숙소인 서울 시내 한 호텔에 들어가고 있다. 헤인스는 청와대로 문재인 대통령을 예방하고, 비무장지대(DMZ)를 둘러보았다. 한국에서의 모든 행적이 공개됐었다. 2021.5.12. 연합뉴스

대통령실 왜 비밀에 부치나 

대한민국 대통령이 북러 조약 체결(6.20) 8일 만에 이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한다면 그 상대는 DNI가 아니다. 미국 대통령이나 최소한 국무, 국방부 장관이 정부 간 협의 통로이다. 어느 나라 지도자이건 미국 정보기관 수장과의 만남에선 정책을 논의하지 않는다. 위협 평가나 은밀한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헤인스가 2021년 5월 처음 공개적으로 방한했을 때와 비교해도 성격이 사뭇 다르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는 그의 순방 일정과 의제, 활동을 공개했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5월 14일 헤인스와 접견에서 한미 양국 간 현안 및 한반도 정세에 대해 전반적인 의견을 나눴다면서 사진과 발언 내용도 공개했다. 접견 전 예상 의제를 전한 게 아니라, 접견 뒤 논의 내용을 발표한 것이다. 헤인스는 당시 일본에서 열린 한미일 3국 정보기관장 회의를 마친 뒤 방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과 합동참모본부 등을 찾아 대북 정보 공조 방안을 협의했다.

지난달 28일 헤인스의 갑작스러운 방한은 적어도 공개 일정상 한미가 수미 테리 기소 이전에 이 문제를 논의할 유일한 기회였다. 국정원장을 역임한 이종찬 광복회 회장(88)은 지난 18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테리 사건과 관련, "CIA를 넘어 대통령 직속 DNI와 직접 타협해야 한다. 아주 솔직한 대화를 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한 바 있다. 그러나 헤인스는 이미 기소 전 서울을 찾아 윤 대통령을 접견했다.

서울을 방문한 애브릴 헤인스 미국 국가정보국장이 2021년 10월 18일 숙소인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나오고 있다. (사진 오른쪽) 왼쪽 사진은 서훈 국가안보실장이 헤인스와 만나기 위해 같은날 신라호텔에 들어가는 장면. 2021.10.18. 연합뉴스

"CIA 넘어 DNI와 솔직한 대화해야"

테리 기소는 겉으로 순항하는 듯했던 한미 관계가 속으로 곪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한국 정부의 정상적인 미국 내 활동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게 불 보듯 뻔하다. 테리 사건 이전과 이후, 한미 관계는 다를 수밖에 없을 터. 미국 법무부의 테리 기소 결정이 한미 간 협의가 실패한 결과라면, 바로 이날 헤인스의 대통령 접견에서 타협점을 찾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

한미는 1970년대 코리아 게이트 당시 로비스트 박동선 씨의 외국대리인등록법(FARA) 위반 혐의나 1990년대 로버트 김에 대한 간첩 혐의 기소 당시 긴밀하게 협의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로버트 김의 석방을 직접 촉구하기까지 했다. 당시엔 DNI 직책이 없었다. 모든 협의가 성공적이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한미 관계에 심각한 걸림돌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가 이 문제에 어떠한 입장인지, 한미 간 협의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모든 게 불투명한 상황이다. 수미 테리 기소 18일 전, 헤인스의 갑작스러웠던 방한이 새삼 주목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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