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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메모> '이방인' 자청한 일본

칼럼/기자메모

by gino's 2012. 2. 25.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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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2001-08-15|06면 |45판 |오피니언·인물 |컬럼,논단 |881자
"참배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총리대신의 마음을 담아 참배했다"13일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기습적으로 방문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누가 보아도 명백하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했다. 신사 방명록에 '내각 총리대신'이라고 서명하고, 스스로 헌납한 화환에도 공식 직함이 선명하게 적혀 있건만 참배의 공식성만은 집요하게 부인했다. 일견 안쓰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럼에도 참배를 마치고 신사를 나서는 그의 잔뜩 굳은 표정은 지나치게 당당했다. 형형한 눈빛에 두 주먹까지 불끈 쥐고 있었다. 단순히 일부 우익 지지층의 표를 의식한 정치적인 행위로는 보이지 않는다.

일본 총리의 신사참배는 전후체제에 대한 전면부인을 뜻한다. 태평양전쟁 종전 뒤 통치자로 부임했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가장 역점을 둔 것은 군국주의의 망령을 호리병 속에 꽁꽁 가두는 것이었다. 만세일계(萬世一系)의 '덴노(天皇)'는 인간이 되어 지상에 내려왔고, 일부에 그쳤지만 전범은 단죄됐다.

하지만 '푸른 눈의 쇼군(將軍)'이 쌓아올린 금단의 벽은 곧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전범은 군신(軍神)이 되어 모셔졌고, 군국의 망령은 '평화와 번영의 초석을 제공한' 거룩한 영령으로 둔갑했다. 고이즈미의 참배는 이를 확인하는 행위였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다. 이미 평화헌법 개정이 공공연히 논의되고 있다. 이같은 기세라면 '일본은 덴노를 중심으로 한 신의 나라'라는 억지가 어느새 '덴노는 인간이 아닌, 신이다'는 맹신으로 돌변할지 모른다.

어느 나라에나 부끄러운 역사는 있다. 그러나 어느 나라나 야만의 역사를 영광의 역사로 고쳐쓰는 것은 아니다. 일본 정치인들의 야스쿠니 참배가 계속되는 한,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영원한 이방인으로 남게 될 것이다.

김진호 국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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