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2001-11-05|06면 |45판 |오피니언·인물 |컬럼,논단 |901자 |
지난 4월 초. 국제의회연맹(IPU) 총회 참석차 쿠바를 방문한 이만섭(李萬燮) 국회의장과 의원 5명은 아바나 호세 마르티 공항에서 의외의 환영객들을 발견하고 적지않게 놀랐다. 미수교국의 관문에서 뜻밖에 한복차림의 동포들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다.교포 2세 헤로니모 임 김씨(임은조.75)를 비롯한 10여명이 자발적으로 태극기를 챙겨들고 모국의 선량들을 맞은 것이다. 구한말 멕시코 에네켄 농장을 거쳐 80년 전 쿠바로 흘러들어온 교민들에겐 참으로 귀한 손님들이었다. 이의장은 며칠 뒤 숙소인 멜리아 아바나 호텔에 교민 10명을 초청해 오찬을 베풀었다. 자연스레 사는 형편은 어떤지, 필요한 것은 없는지 등의 화제가 오갔다. 궁핍한 삶 속에서도 자부심을 잃지 않고 있는 교민들의 바람은 소박했다. 3세, 4세 교육을 위해 한국의 어제와 오늘을 소개할 비디오테이프와 장구, 꽹과리 등 전통악기를 보내달라는 것 등이었다. 이의장과 국회의원들의 답변은 물론 "오케이"였다. 한 여성의원은 숙원중의 하나인 한복을 보내주겠다는 약속까지 곁들였다. 분위기는 시종 화기애애했다. 국회의원 수행원들은 쿠바 교민의 희귀성에 주목했는지 끊임없이 사진을 찍어댔다. 카메라가 없는 교민들은 이날의 '역사적인 만남'을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보내달라고도 부탁했다. 그로부터 6개월여. 그많던 약속들이 모두 꿩구워 먹은 소식이 됐다니 이 무슨 식언(食言)인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던 교민들은 이제 체념한 상태. 이해하려고 애쓰면서도 "그래도 사진을 수백장이나 찍었는데…"라며 못내 서운함을 떨치지 못했다. 그 사진들이 의원들의 의정활동 또는 선거 홍보용으로 유용하게 쓰일 것은 불문가지. 그자리에 있었던 국회의원들이여, 지금이라도 교민들의 실망을 위무해 줄 의향은 없으신지. /아바나에서 국제부 김진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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