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2002-01-22|06면 |45판 |오피니언·인물 |컬럼,논단 |890자 |
"너희들이 자유의 이불을 덮고 편하게 잠을 청할 때 우리는 매일 적들을 쳐다보면서 식사를 한다"쿠바 관타나모의 미군기지를 배경으로 한 법정영화 '어 퓨 굿맨'에서 해병대 사령관 역으로 출연한 잭 니콜슨은 이렇게 일갈했다. 병영내 구타는 지휘관이 군법을 무시하고 은밀하게 지시한 일종의 사형(私刑)이었다는 변호인의 주장에 대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적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위기상황에서는 구타도 정당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관타나모의 미군 병사들이 느꼈을 불안은 '거짓공포'였다. 그 역이 오히려 역사적 진실이다. 그들 스스로가 쿠바인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미국 강경파가 1950년대 이후 끊임없이 과잉된 '안보논리'를 생산해 낼 때 이용된 곳도 관타나모 미군기지였다. 이곳에 최근 탈레반 포로들이 이송되면서 법적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국제사회는 포로들이 전쟁포로로 취급돼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미국은 오불관언이다. 법적 근거가 모호한 군사특별재판에 회부한다는 게 미국의 방침이다. 워싱턴포스트는 97년 제정된 미 국내 관련법에 따른 인정심문도 무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포로들의 국적과 직업, 나이 등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논란이 오가는 동안 관타나모에는 이미 110명의 '포로 아닌 포로들'이 1인당 2.4×1.8m의 좁은 공간에 수감돼 있다. 사방이 철망으로 돼 있어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닭장형 임시감방이다.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은 인권탄압 우려가 높아지자 "체포 당시보다는 더 나은 환경"이라고 되받았다. 영화는 사명감에 불타는 변호인에 의해 감동적인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탈레반 포로들의 운명은 그럴 것 같지 않다. 미국이 내세워온 인권과 정의가 실종된 오늘의 관타나모에서 연출되고 있는 풍경은 영화속보다 더욱 어둡기 때문이다. 김진호 국제부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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