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2001-08-25|06면 |45판 |국제·외신 |컬럼,논단 |1159자 |
게르만 민족이 앞서나갈 때마다 유럽은 곤욕을 치렀다. 독일은 전후 전범국이라는 원죄로 인해 경제적으로는 거인이 됐지만, 국제정치 무대에서는 난쟁이로 비유됐다. 유럽내부에서도 프랑스와 영국의 그늘에서 전주(錢主) 역할을 하는데 만족해왔다. 그러한 독일이 통일을 이루자마자 앞서나가기 시작했다.우선 1992년 구 유고연방에서 독립을 선언한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를 일방적으로 승인한 것을 들 수 있다. 발칸에 대한 독일의 입김을 면밀히 계산한 독단이었다. 당초 유고연방의 존속을 원했던 미국은 물론 프랑스와 영국도 항의를 했다. 95년 코소보 전쟁 종전 뒤 평화유지군의 일원으로 독일군 5,000명이 파병되자 유럽 곳곳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나온 것도 무리가 아니다. 유럽연합(EU) 확대를 위한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독일은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유럽 최대 인구대국이자 최대 경제대국의 위상에 걸맞은 투표권을 요구하고 나섰다.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선거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더니 최근엔 마케도니아에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평화유지군 깃발 아래 500명의 병사를 파견했다. 이로 인해 일각에선 독일의 외교적 성장으로 전후체제의 힘의 균형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번엔 요시카 피셔 독일 외무장관이 중동평화 중재자를 자처함으로써 무대를 유럽 밖으로 넓혔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세계의 시각은 지극히 우호적이다. 9개월째 유혈충돌이 계속되는 중동사태를 강건너 불보듯하는 미국을 대신하는 독일의 중재에 되레 기대감을 표하고 있다. 독일외교가 영.불은 물론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드디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통독 이후 독일이 밟아온 길을 돌아보면 국제사회의 성숙한 일원으로 서서히 복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약간의 불협화음이 있었지만 갈수록 '돌아온 게르만'에 대한 이질감이 엷어지고 있다. 역시 전범국에서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일본과 사뭇 다른 행보다. 일본은 조지 부시 미 행정부 출범 이후 '전과'를 묻고, 군사대국으로 치닫겠다는 야심마저 보이고 있다. 독일과 일본은 과거청산 방식만 달랐던 것이 아니다. 국제사회에 복귀하는 방식도 차이를 보인다. 독일이 이웃국가들과의 합의속에 떳떳한 독자노선을 걷고 있는 것에 비해, 주변국을 무시하고 미국만을 바라보는 일본의 해바라기 성향은 더욱 짙어지는 인상이다. 김진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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