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월드/ 토빈세-비전인가 신기루인가 |
[경향신문]|2001-09-08|06면 |45판 |국제·외신 |컬럼,논단 |1189자 |
아시아 금융위기로 세계가 혼동에 빠졌던 1998년 12월11일. 파리 북쪽 변두리 우앵의 동네 체육관에서는 이색적인 국제회의가 열렸다. 빈민가 한가운데 자리잡은 초라한 회의장과 참석자들의 행색도 추레했다. '시민지원을 위한 금융거래과세 추진협회(Attac.아탁)'라는 신생 시민단체가 주최한 첫 비공식 국제포럼.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중심으로 '세계화의 덫'에서 벗어나자는 취지로 결성한 아탁이 제시한 해결책은 '토빈세'였다. 하루 1조달러가 넘는 국가간 투기자본 이동에 1∼5%의 거래세를 부과하고, 이를 재원으로 세계화의 모순을 치유하자는 제안. 그러나 세계화의 거센 돌풍 속에서 그들의 주장은 너무 미약하게 들렸다. 그로부터 3년. '아탁=토빈세'의 목소리는 꾸준히 반향을 넓혀왔다. 99년 12월 시애틀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 이후 반세계화 시위의 핵심에는 아탁이 자리잡고 있었다. 최근에는 리오넬 조스팽 프랑스 총리와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가 잇달아 토빈세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나섰다. 물론 토빈세의 실현 가능성이 아직 희박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미 영국 정부가 반대의사를 밝혔으며, 조스팽과 슈뢰더의 토빈세 지지 발언도 큰 위력을 발휘하지는 못하고 있다. 되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좌파지지층을 겨냥한 전략이라는 비난마저 쏟아지고 있다. 조스팽은 95년 선거유세 과정에서 토빈세를 지지했다가 이후 단 한차례도 후속조치를 취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탁은 성명을 통해 "오히려 실현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입증함으로써, 토빈세를 영원히 매장하려는 기도"라고 비꼬았다. 전문가들은 선진국을 포함, 최소한 15∼20개국이 동시에 도입해야 실효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실현가능성이 적다고 의미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한 시민단체의 희망사항 정도로 보이던 토빈세가 유럽 현실정치권의 화두가 된 것만해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아탁=토빈세'의 이슈화가 이 정도나마 가능했던 것은 그만큼 세계화의 폐해에 대한 공감대가 넓어지고 있다는 사실의 방증이기도 하다. 오는 21일부터 벨기에 리에주에서 열리는 유럽연합(EU) 재무장관회의는 토빈세를 정식 의제로 삼을 예정이다. 정치인들의 선언적인 공염불에 그칠 수도 있다. 그러나 빈곤의 세계화가 계속되는 한 토빈세는 '또 다른 세계'를 꿈꾸는 사람들의 목표로 남을 것이 분명하다. 우앵의 미약한 시작은 창대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김진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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