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북한군 특수부대원 선발대 1500여 명이 러시아에 도착, 적응 훈련을 받고 있다고 발표한 것은 18일 오후. 미국은 그러나 어떠한 확인도 하지 않고 있다. 중동사태와 함께 미국이 최우선적인 외교안보 사안으로 다루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직결된 사암임에도 입장을 내놓지 않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최소한 북한군 우크라 파병을 보는 한미 양국의 안보 위협 인식의 차이를 보여준다. 19일 현재 국내에서만 요란하다.
소란스런 한국, 조용한 세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존 커비 전략소통조정관은 18일(현지시각) 전화 브리핑에서 다룬 핵심 주제는 우크라 전쟁에 대한 지원 문제였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퇴임을 앞두고 이날 베를린을 방문,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키어 스태머 영국 총리 등과 '고별 회동'을 한 것과 관련해 연 브리핑이었다. 커비 조정관은 미 영·프 독 정상 회동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이 강조하고 있는 '승전 계획'을 논의했다고 전하면서도 북한발 악재를 거론하지 않았다. 36분 동안 진행된 브리핑 도중 우크라 전쟁 관련해 숱한 질문이 제기됐지만, 북한군 파병 문제는 없었다.
숀 사벳 NSC 대변인도 연합뉴스의 관련 문의에 "우리는 러시아를 대신해 싸우는 북한 군인들에 관한 보도를 매우 우려(highly concerned)하고 있다"고 전하면서도 "보도가 정확한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국 국정원의 공식 발표 전 젤렌스키 대통령의 주장을 전한 '보도'에 대한 질의응답으로 읽힌다. 역시 연합뉴스에 따르면 19일 키이우를 방문, 안드리 시비하 우크라 외교장관과 회동한 장 노엘 프랑스 외무장관도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한군 파병이 사실이라면 위기를 심화시키는 큰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해 파병 사실 자체를 확인하지 않았다.
나토 "확인 안 된 사안"
전날 김명수 합참의장과 찰스 브라운 미국 합참의장, 사무엘 파파로 미 인도태평양사령관, 폴 러캐머라 주한미군사령관 등 한미 양국 군 수뇌부가 화상으로 연 제49차 군사위원회 회의(MCM)에서도 한반도 안보 정세가 논의됐지만, 북한군 우크라 파병이 거론됐다는 발표는 없었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18일 벨기에 나토 본부 기자회견에서 역시 연합뉴스의 질의에 "현재까지 우리의 공식 입장은 '확인 불가'이다"라면서 "이 입장은 바뀔 수도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피터 스타노 유럽연합(EU) 외교안보 담당 대변인도 아직 북한군 파병이 확인되지 않았음을 분명히 했다. 스타노 대변인은 연합뉴스에 "확인 시 추가 제재 등의 조치를 할 준비가 돼 있다고"전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북한군의 러시아 이동이 간파된 건 지난 8일부터다. 국정원은 북한군 병사 1500여 명이 러시아 태평양함대 소속 상륙함 4척 및 호위함 3척 등 7척의 군함을 타고 연해주로 이동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파병 규모를 총 1만 2000명으로 보고 있다. 미국 정보자산은 대규모 병력 수송이 가능한 러시아 함정의 이동 궤적을 파악하고 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한미 간 정보공유 관행에 따르면 미국 측이 정보 획득에 협력했거나, 역으로 국정원이 미국 측에 전달했을 내용이다. 그런데도 MCM 회의에서 거론하지 않았다면 의문을 남긴다. 현재까지 북한군 파병 사실을 공식 발표한 나라는 한국과 우크라 정부뿐이다.
북한군, 러시아 피침당한 쿠르스크 전선에?
몇 가지 가능성을 상정할 수 있다. 우선 러시아와 간접 전쟁을 치르는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입장에서 북한군 파병이 '결정적 변수'가 아니라는 판단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러-우 양측 수십만 명이 교전하는 전장에 총 북한군 1만 2000명의 북한군의 참전이 군사적으로 의미가 크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다. 정치적 이유도 있다. 퇴임을 앞둔 바이든 행정부로서 우크라 전쟁의 '현상유지'를 기대할 수 있다. 우크라 정부가 나토 회원국들의 참전을 거듭 촉구해 온 만큼 나토 입장에서 곤혹스러운 처지일 수 있다.
러시아와 북한도 침묵하고 있다. 유리 슈비트킨 러시아 하원(국가 두마)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은 "관련 정보가 없다"라고 밝혔고, 알렉세이 즈라블료프 국방위 제1부위원장도 "우리는 어떤 나라의 도움도 환영하지만, 북한군이 전선 상황에 결정적 영향을 주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연합뉴스가 19일 자 러시아 매체 '가제타.루'를 인용, 보도한 내용이다. 주라블료프는 특히 "그들(북한군)은 러시아군보다 전투 경험이 충분치 않고 신병 훈련을 거쳐야 전선에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 군사평론가 미하일 호다레노크도 "최신 군사력과 정보력을 갖춘 나토도 북한군 파병을 확인하지 않았고, 중국도 침묵하고 있다"라면서 "아직 추측의 영역"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같은 매체에 "북한군 파병 규모가 러시아군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반면, 국제적으로 러시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진단했다. 북한은 19일 밤까지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고 있다.
"우리 베트남 파병처럼 북한엔 경제적 기회"
국정원이 공식 발표한 북한군 파병이 허위 정보일 가능성은 극히 작다. 아직 북-러는 물론 미국과 나토가 침묵하는 것은 그만큼 이에 대한 체감 온도가 다름을 입증한다. 국내에서만 관심을 끄는 사안이다. 군사문제에 정통한 소식통도 <시민언론 민들레>에 "국내에선 엄청난 이슈이지만, 전체 전쟁 국면에서 보면 북한군 1만 명이 간다고 큰 변화는 없을 것"이라면서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이 별다른 변수가 되지 못했음을 지적했다. 북한군 파병 규모도 공교롭게 당시 한국군 파병 규모와 비슷하다. 이 소식통은 "우리의 베트남 파병이 경제적으로 이익이 됐듯이 북한으로선 연해주 지역 인력 진출에 이은 파병으로 경제 회생의 기회를 잡게된 것"이라고 짚었다.
북한군 파병이 우리에게만 '대형 뉴스'라면 이쯤에서 한반도 안보에 미칠 영향력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북러 군사협력이 한반도 평화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군사정찰위성 발사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전략무기 군사기술 분야의 협력이다. 아직 이 부분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와 관련, 우크라군이 서방 지원 무기로 러시아를 공격하는 경우를 금지선(red line)으로 설정한 바 있다. 또 한국의 대우크라 살상무기 지원을 한-러 관계 파탄의 신호로 제시해 놓은 상태다.
여론의 과도한 관심이 부를 '역풍'
북한군의 파병은 외화 획득의 수단을 넘어 지난 6월 양국이 체결한 북-러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북-러 신조약) 상의 의무일 수도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15일 '한국의 북한 무인기 침범'과 관련해 "북한이 침략당하면 러시아가 군사지원을 할 것"이라며, 조약상 일방이 피침 시 상호 군사지원 의무를 강조한 바 있다. 러시아 국가두마는 11월 중 비준할 예정지만, 북한으로선 파병의 근거와 명분을 이미 확보하고 있다. 지난 8월 6일 이후 우크라군이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을 점령함으로써 역으로 러시아가 침략받는 상황이어서다. 북한군의 우크라 전선 참전은 근거와 명분이 없지만, 침략당한 쿠르스크 전선이라면 적어도 북러 신조약에 어긋나지 않는다.
'북한군 우크라 파병'과 관련해 우리가 관심을 둬야 할 가장 중요한 대목은 파병 자체가 아니다.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이다. 미국과 나토조차 관심을 덜 두는 대목에 한국 여론이 대대적으로 나설 이유도 없다. 정부가 대대적인 북한군 파병 홍보에 이어 이를 빌미로 우크라에 살상무기를 지원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국면을 자초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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