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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워싱턴리포트

‘숙제’ 싫어한 부시의 ‘말로’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12. 14.

워싱턴리포트 김진호 특파원

따지고 보면 다음달 백악관 ‘8년 계약직’ 생활을 접는 조지 W 부시는 불행한 대통령이었다. 9·11테러만 발생하지 않았다면 준비 안된 ‘전시 대통령’ 역할을 맡을 일도 없었을 것이고, 3조달러의 전비(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를 이라크의 흙먼지 속에 날리는 일도 없었을 게다.

스타일도 나쁘지 않다. 솔직하고 의리도 꽤 있는 것 같다. 부시의 ‘애견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총리는 그를 서부영화 <하이눈>에 출연했던 게리 쿠퍼와 비교한 적도 있다. 잘난 아버지를 둔 중압감에 젊음의 한 시절을 술과 방탕으로 지샜지만 신앙의 힘으로 방황을 끝냈다.

이달 초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실패로 얼룩진 재임 8년을 돌아보는 그를 보면서 안쓰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를 남겨놓고 떠나는 그는 “미안하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또 미안하다는 말을 대놓고 하지는 않았지만, 10만명에 가까운 이라크 민간인의 목숨을 앗아간 이라크 침공에 대해서도 스스로 전쟁을 치를 준비가 돼 있지 않았었다고 솔직히 털어놓기도 했다.

텍사스에서 프로야구단이나 석유기업만 운영해도 부러울 것 없이 살았을 부시가 최악의 대통령으로 전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흔히 세계를 선·악으로 갈라 악을 징벌하려고 했던 이분법적 세계관이나 신보수주의, 신자유주의가 거론된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을 꼼꼼히 관찰해 4권의 저서를 쓴, 워싱턴포스트의 대기자 밥 우드워드는 “숙제를 하기 싫어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최근 NBC방송의 <크리스 매튜 쇼>에 출연한 자리에서다. 대통령의 숙제는 각종 보고서를 읽고, 브리핑을 받으며 토론을 벌이는 것을 말한다. 부시는 대통령이 가져야 할 지적 호기심을 키우는 대신, 배짱과 직감으로 중요결정을 내리는 사람(gut player)이었다고 설명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는 일찌감치 이를 간파했다. 다우드는 2002년 8월 텍사스 배일러 대학에서 열린 경제세미나에서 몸을 비비꼬고 엉덩이를 들썩이다가 45분을 못채우고 자리에서 일어난 부시를 취임도 하기 전에 아칸소주 리틀록에서 48시간 마라톤 경제회의를 주재하면서 하품 한번 하지 않았던 클린턴과 대비한 바 있다.

숙제를 안하는 대통령의 특징은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는 점이다. 참모가 입력해준 한 두 문장으로 복잡한 현안을 명쾌하게 정의내린다. 신앙과 신념은 개인의 선택이다. 경제를 살리려면 부자들에게 돈을 풀 때라는 판단에 대규모 감세안을 내놓았다고, 미국과 이라크, 아니 세계를 하나님에게 봉헌하려 했다고 해도 탓할 일은 아니다. 숙제만 열심히 했어도 파국을 막았거나, 최소한 충격이 덜했을 것이다.

‘터프한 사나이’로 비치고 싶었던 부시는 자신의 게으름에 전혀 터프하지 않았다. 기도하고, 운동(산악자전거)할 시간에 공부를 더 했어야 했다. 어느 나라에나 통용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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