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특파원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에이브러햄 링컨과 존 F 케네디와 함께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꼽히지만 경제적으로 성공한 대통령은 아니었다. 취임 첫 해인 1933년 기세좋게 밀어붙인 뉴딜 정책의 성과는 아직까지 경제학자들 간에 논란이 최종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첫 번째 임기가 끝나갈 무렵 실업률은 다시 대공황 초기 수준으로 올라갔다. 뉴딜이 처음부터 성공한 것처럼 알려졌지만 실제 경제회복은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구현됐다. 시장근본주의자들의 지적이 아니다. 리버럴한 성향의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마저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그가 지난해 가을 월스트리트에서 시작해 세계경제를 암울한 터널 속으로 집어넣은 금융위기 과정에서 되살아난 이유는 분명히 있다. 국민에게 희망을 주었기 때문이다. 오는 20일 백악관에 입주하는 버락 오바마는 일단 루스벨트와 비슷한 경력과 스타일의 지도자다. 경제위기 속에서 취임했지만 두 사람 모두 경제전문가가 아니다. '경제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하지도 않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출처:경향DB)
오바마가 컬럼비아대를 거쳐서 하버드 로스쿨을 나왔다면, 루스벨트는 하버드를 거쳐 컬럼비아 로스쿨을 다녔다. 오바마는 하버드 로스쿨 리뷰의 편집장을, 루스벨트는 대학신문 하버드 크림슨의 편집장을 맡았다. 그래선지 두 사람은 커뮤니케이션의 달인이다. 특히 말로 국민을 움직이는 능력을 가졌다. 루스벨트는 경제위기는 물론 세계사의 대사건인 2차대전마저 노변정담으로 풀어서 설명했다. 두 사람 모두 그 달변으로 국민들의 기를 살렸다. 둘 중 누구도 국민에게 정신 똑바로 차리라면서 한 번 연설에 29차례나 '위기'를 강조하지는 않았다.
루스벨트가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유가 토목공사를 벌여 국민들에게 임시직, 계약직, 노무직의 일자리를 준 덕분은 아니다. 루스벨트의 전기작가 윌리엄 루첸버그는 뉴딜을 '3R'로 정리했다. 실업자를 구제(relief)하고, 경제를 회복(recovery)시키며 탐욕으로 국가경제를 위기로 몰아 넣은 금융시스템을 개혁(reform)하는 것이었다. 그가 제도화한 사회보장제도가 없었다면 지금 미국민의 생활은 파국에 좀더 가까워졌을 것이다. 오바마가 풀어낼 경기부양책 역시 중산층 감세안을 통해 보통사람들의 생활을 부축하고, 의료보험을 비롯한 복지망을 촘촘히 짜며, 교육환경을 개선하는 데 방점이 놓여 있다. 지구온난화의 환경적인 도전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전환시키는 것도 핵심의제다. '검은 루스벨트'로 기대되는 오바마가 오늘 워싱턴에 입성한다. 오바마는 루스벨트만큼 운이 좋지 않다. 4선을 기대하기는커녕 첫 2년 내 경제회복의 신호를 주지 못할 경우 2010년 중간선거에서 상·하원의 주도권을 다시 내줄 수도 있다. 루스벨트와 달리 오바마는 취임과 동시에 2개의 전쟁을 물려받았다. 성공과 실패는 속단하기 어렵지만 국민의 기를 살려주겠다는 '오바마 다큐멘터리'는 일단 높은 인기 속에 방영이 시작된다. 강바닥을 파헤치고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기업 감세, 규제완화를 추진하는 '비상경제정부체제'에서 살아야 할 우리에게는 구경거리에 불과한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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