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리포트 김진호 특파원
[경향신문]|2008-11-24|30면 |45판 |오피니언·인물 |컬럼,논단 |1404자
워싱턴은 지금 만원이다. 버락 오바마의 미 대통령 취임식은 내년 1월20일이지만 자국과 관련된 오바마 행정부의 생각의 일단이라도 귀동냥하기 위한 발길로 붐빈다. 한국에서도 지난주 연구기관(통일연구원·세종연구소·외교안보연구원), 국회의원(외통위 간사단·유엔총회 참석단·독도특위 등) 등이 태평양을 건넜다. 워싱턴 안팎 한국 식당에서는 우연히 마주쳐 서로 명함을 건네는 ‘서울 손님들’이 자주 눈에 띈다. 일본은 훨씬 더 많은 민·관·의회 관계자들이 워싱턴 도심을 헤집고 다니고 있다. 대만, 중국도 마찬가지다. 예외는 북한이다.
북·미관계 정상화를 통해 체제 안보를 확보하고, 살 길을 도모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운명이 걸려 있지만 4~5시간 주행거리의 뉴욕 유엔대표부에서 칩거하고 있다. 리근 북한 외무성 미주국장이 뉴욕에서 오바마 측과 잠깐 만나고 돌아간 게 전부다. 오바마의 변화가 한반도 주변의 안보환경도 바꿔놓을 것이라는 기대 섞인 희망이 제기된다. 2000년 말 불발된 북·미 정상회담설이 새어나온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문제해결 열쇠의 절반을 쥐고 있는 북한이 전략적 선택을 미룰 경우 근본적인 변화는 요원하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구상은 냉·온탕을 오가다가 결국 미지근하게 끝나가는 부시 행정부와 온도를 달리한다. 취임 초 일관되게 직접 대화를 추구하되, 안되면 가혹한 제재를 가하겠다는 시나리오다. 1990년 대 이후 북한의 핵카드는 잿팟(jackpot)은커녕 푼돈만 챙겼을 뿐이다. 미국의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은 탓이다.
2000년에는 미사일 수출 및 기술 이전으로 푼돈을 벌려다가 클린턴의 방북시점을 놓쳤다. 중국 경제가 8년 뒤 2조달러의 외환보유국이 된 것을 보면, 북한이 클린턴 행정부와 빅딜을 하지 못한 기회비용은 천문학적이다. ‘푼돈에는 똑똑하고, 큰돈에는 멍청함(penny wise, pound stupid)’의 전형이다. 부시 2기 행정부에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2·13합의에서 챙긴, 5억~6억달러에 달하는 중유 100만t의 어음을 아직도 현금화하지 못하고 있다. 방코델타아시아(BDA)에 예치한 2500만달러의 통치자금을 되찾는 데 급급해 수 개월을 허비한 결과다.
북한으로선 다행히 오바마가 예고하는 ‘진정한 인센티브’에 담긴 대박의 기회가 다가온다. 잘하면 체제도 보장받고 경제회생의 모갯돈을 받을 수도 있다. 오바마가 부시의 실패한 정책을 답습하지 않더라도 그 와중에 캐낸 빛나는 아이디어는 간직할 게 분명하다. 북한이 전환기에 놓인 워싱턴의 정세 파악을 위해 민·관 대표단을 보내기 힘들다면, 미파(美派) 공작원이라도 보내야 할 상황이 아닌가 싶다.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는, 한반도 남쪽 정부의 역할은 적어도 당분간 기대할 게 없어 보인다. 미국의 협의 대상에 불과할 게 뻔하다. 그 끝에 나온 바람이다. 북측이라도 정신을 차리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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