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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힘

칼럼/워싱턴리포트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11. 2.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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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리포트 김진호 특파원

좋은 말도 자꾸 들으면 신선도가 떨어진다. 숱한 감동을 자아냈던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후보의 명연설도 역전을 거듭했던 민주당 경선 드라마와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와의 TV토론을 거치면서 김이 빠지기 시작한 지 오래다. 오바마는 이제 어떠한 새로운 말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오바마의 웅변의 힘은 이미 지난 9월 초 공화당 전당대회 직후 지지율이 역전됨으로써 실효를 상실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오바마 돌풍이 민주당 경선과정에서 역전의 노장 힐러리를 넘어뜨리고 허리케인으로 확산되는 것 같았지만 기실 미국의 절반을 감동시켰을 뿐이다. 바람의 선거, 바람의 정치에 익숙한 우리 입장에선 이해하지 못할 구석이다. 오바마의 지지율은 좀체 50%를 크게 뛰어넘지 못한다.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란 먹구름이 몰려오지만 기업가 정신이 미국 경제를 살릴 것이라는 매케인의 주문이 여전히 절반 가까운 지지를 끌어모으고 있다. 미국인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존 F 케네디가 전국 득표수에서 불과 0.2%의 차이로 승리했던 것을 보면 미국인을 움직이는 게 말은 아닌 게 분명하다.

오바마가 그리는 세상이 분명한 것도 아니다. 차기 미 행정부 임기 4년 동안 불황을 호황으로 돌려놓을 요술지팡이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신봉했던 케인스 경제학이 새삼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미국인들이 체감하는 위기의 수준을 말해준다. 오바마가 당선된다고 하루 아침에 떨어진 집값이 오르고 돈이 돌 것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인은 드물다. 오하이오와 펜실베이니아의 불 꺼진 공장이 갑자기 활발하게 돌아갈 리도 만무하다. 아무리 미국인들이 애국적이라고 해도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질수록 중국산 값싼 제품의 유혹을 떨치기 어려울 게 분명하다. 오바마의 경제공약은 한가한 인상마저 준다. 경기침체의 구름이 몰려오고 있지만 저소득층을 위한 조세정책으로 부를 재분배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팁으로 먹고사는 웨이트리스가 하루 정도 휴가를 내 아픈 아이를 돌보더라도 일자리를 잃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고 한다. 백만장자의 숫자와 경제전문지 포춘의 500대 기업에 속하는 미국 기업의 숫자로 미국경제를 가늠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청정·대체 에너지를 개발하면서 500만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희미한 밑그림만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오바마의 우세가 점쳐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도자는 시대가 만든다고 했다. 30년 전 미국은 파이를 키우겠다는 로널드 레이건의 약속에 열광했다. 하지만 다시 난국에 처한 미국은 보통사람들의 꿈과 건강을 되찾겠다는 오바마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미국의 양대 언론은 차가운 머리와 건전한 판단력(뉴욕타임스), 조정과 통합능력(워싱턴포스트) 등 지도자의 자질을 오바마 지지의 이유로 꼽았다. 미국 대선은 세계가 어디로 가는지, 난국에 처한 국가 지도자의 덕목이 무엇인지를 배우는 훌륭한 학습의 장이기도 하다. 여전히 파이를 키워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에 국민의 멍드는 가슴을 외면하는 일부 지도층과 지도자의 자질을 깜빡했던 우리 국민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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