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고정밀 무기, F-16전투기와 다른 기술집중적 무기와 장비를 우크라이나에 공급, 러시아 영토 공격에 사용케 하는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들의 성명에 주의를 환기하고 싶다. 이러한 맥락에서 러시아 연방은 북한과의 신조약에 기술한 군사적, 기술적 협력의 발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6월 19일 평양,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NYT에 결정 흘린 까닭은?
임기를 두 달 남짓 남겨놓은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러시아 본토 공격에 에이태큼스(ATACMS) 미사일의 사용을 허락한 결정(17일, 뉴욕타임스 보도)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앞서 한반도 안보를 결정적으로 악화시키는 '게임체인저'가 된다. 바이든 대통령 스스로 2년 9개월 동안 유지해 온 '금지선'을 넘은 것으로 한반도에 미칠 악영향은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형 악재다.
푸틴 대통령이 지난 6월 북‧러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 체결 뒤 언론성명에서 내놓은 경고가 불행히도 들어맞아 가는 분위기다. 이를 빤히 알고 있는 바이든이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이다.
북‧러 조약 체결 뒤 우리의 우려는 크게 두 가지였다. 우선 '유사시 모든 수단의 군사적 지원'을 약속한 조약 4조에 따라 한반도가 전쟁상태에 빠지면 러시아가 무력 개입할 길을 열어주었다는 점이다. 이는 그러나 한미의 북한 침략이라는 전제가 있기에 현실적으로 크게 다가오지 않은 악재였다. 러시아가 1990년 한러 수교 이후 처음으로 냉전시대의 북러 동맹을 저강도로 복원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었을 뿐이다. 조약은 그러나 '유사시 무조건 군사지원'을 명시했던 북러 우호조약에서 후퇴해 '유엔헌장 제51조(자위권)와 북한과 러시아 국내법에 준한 지원'을 담아 다단계 완충장치를 두었다. 여전히 '무조건 지원' 조항을 담고 있는 북·중 조약에 비해 낮은 강도다. 한국이 남북 관계와 한러 관계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실행되지 않을 약속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직접적이고, 실질적인 위협을 제기하는 것은 북러 간 첨단 군사기술 협력이다.
포탄 우회지원 차원서 획기적 악화
북한이 핵무력에 더해 재래식 전력을 대폭 강화한다면 우리로선 심각한 안보 위해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한미, 특히 윤석열 정부 외교 안보팀은 그동안 러시아가 북한에 군사정찰위성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핵추진잠수함 등의 첨단 군사기술을 북한에 이전할 가능성을 거듭 거론해 왔다. 북한군 파병 등을 빌미로 실현되지 않은 일을 확성기에 대고 떠들면서 되레 우리 안보 위기를 늘려 왔던 것이다. 한미 당국은 아직 러시아가 북한에 첨단 군사기술을 넘겼다는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바이든의 결정은 푸틴이 경고한 북러 첨단 군사기술 협력의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시킴으로써 한반도 안보에 심각한 위협을 제기하게 된다. 우크라전과 한반도 안보의 상관관계가 한국의 포탄 우회 공급과 북한군 파병으로 조성된 위기 수준에서 획기적으로 높아지기 때문이다.
다만 아직 최악의 상황을 예단할 필요는 없다. 우크라에 남아 있는 에이태큼스 미사일의 재고와 바이든의 실제 의도가 변수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영토에 대한 에이태큼스 미사일의 사용은 우크라전 개전 이후 가장 민감한 사안이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 대통령이 최근 미국과 나토에 전달한 '승리 계획'의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러나 바이든의 에이태큼스 공격 허용 소식에도 불구하고 즉각 환영하지 않았다. 되레 17일 심야 대국민 연설에서 "오늘 많은 언론이 우리가 관련 행동(미사일을 동원한 러시아 공격)에 대한 허락을 받았다고 보도했지만, 타격은 '말'이나 발표로 가하는 게 아니다"라는 아리송한 언급을 했다. "로켓(미사일) 스스로 말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는 바이든의 결정이 당장 전장에서 대러 미사일 공격으로 이어질 상황이 아님을 짐작게 한다. 바이든의 결정을 보도한 뉴욕타임스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미지근한 반응은 에이태큼스 공격 허락보다 미사일 재고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미국이 그동안 우크라에 지원한 에이태큼스 미사일의 정확한 숫자 및 재고는 공개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 이날 자 성조지는 미군 당국자들이 에이태큼스의 전반적인 공급량이 부족하기 때문에 전쟁에서 우크라에 실질적인 차이를 제공할지 의문이라고 지적해 왔음을 상기시켰다. 바이든의 실제 의도 역시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
젤렌스키의 미지근한 반응
바이든 행정부의 결정은 지난 이틀 동안 페루 리마에서 열린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한국, 일본, 중국 지도자와 회담을 한 뒤였다. 복수의 회담에선 북한군 파병이 핵심의제였다. 바이든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브라질에 도착, 아마존 밀림에서 한 첫 연설에서도 에이태큼스 공격 허락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18일 현재(한국 시각)까지 뉴욕타임스에 미리 흘린 게 전부다. 바이든은 지난 5월 러시아군이 국경을 넘어 우크라 하르키우 지역을 공격하자 하이마스(HIMAS) 미사일로 국경 인근 러시아군 공격을 허용했다. 하이마스는 사거리가 80㎞ 정도로 장거리 무기는 아니다. 에이태큼스의 사거리는 300㎞에 달한다.
최근의 흐름과도 배치된다. 바이든 행정부가 미 대선 뒤 역점을 둔 것은 내년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의 취임 전에 이미 의회 승인을 받아놓은 방어용 무기를 최대한 우크라에 전달하는 것이었다. 그 핵심은 ATACMS와 같은 공격용 미사일이 아니라, 방어용 나삼스(NASAMS) 대공방어 시스템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이 우크라의 나삼스 시스템 보강을 위해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포함해 500기 이상의 요격미사일 지원을 서두르고 있다고 전했다. 바로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7일 내외신 회견에서 정부가 단계적으로 지원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방어용 무기와 같은 범주다. 전장의 수요와도 맞아떨어진다.
젤렌스키는 17일 연설에서 "러시아가 이날 하루 동안 210대의 드론과 초음속 및 탄도미사일을 우크라 기간시설에 쏟아부었다"라면서도 패트리어트 시스템과 F-16 전투기의 요격 덕분에 대부분 방어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러시아군은 겨울을 맞아 우크라 전력 시설을 집중적으로 타격하고 있다.
유엔, "끊임없는 전쟁 악화에 반대"
국제사회의 반응은 바이든의 결정에 우호적이지 않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성조지에 "유엔의 입장은 우크라 전쟁의 영속적인 악화를 피하는 것"이라면서 "우리는 평화를, 공평한 평화를 요구한다"라고 말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15일 푸틴과 통화를 하고 평화 협상을 종용했다. 개전 이후 서방 지도자 중 처음으로 푸틴과의 직접 대화였다. 숄츠 총리는 17일 러시아군의 개전 이후 최대, 최악의 공격을 비난했지만, 트럼프 당선을 계기로 평화협상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던 터이다.
우크라군이 소수의 에이태큼스 미사일로 러시아 영토 깊숙이 공격한다면, 전쟁은 더 길어진다. 러시아군은 전력 배치를 변경하고, 더 많은 국방 자산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임기 마지막까지 우크라 지원을 계속하려는 바이든의 결정이 실행되면 조기 종전을 공언해 온 트럼프에게 건넬 고약한 '선물'이 된다. 문제는 확전의 먹구름이 유럽에만 드리우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푸틴의 경고대로 북러 간 첨단 군사기술 협력 심화로 이어져 한반도 안보에 항구적인 위협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개전 이후 우크라에 562억 달러(7조 8458억 원) 상당의 무기를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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