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이 위태롭다. 흉악범 한 명이 설치고 다녀도 불안한데 반란죄 혐의자들이 여전히 권력과 군권을 틀어쥐고 있다. 주연은 사라지고 조연만 국민 앞에 섰다. 계엄군 수백 명을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난입시킨 특전사와 수방사, 특히 방첩 사령관은 속이 안 보이는 시커먼 항아리 속에 똬리를 틀고 있다.
위헌, 위법 비상계엄 실패 뒤 침묵하던 동조자들이 24시간도 안 돼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다. 외려 "계엄은 고도의 정치행위라 반란죄가 될 수 없다"라고 대거리를 한다.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앞두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음울한 현실이다.
5일 국회에서 드러난 사실
국민은 심야 6시간 동안 주권을 강탈당했다. 그들의 안중에는 헌법도, 법률도 없었다. 5일 드러난 사실은 이렇다. 밤의 대통령은 국방장관 김용현(예비역 중장, 육사 38기)이었다. 6시간 계엄사령관 박안수(대장, 46기)는 "비상계엄 선포 사실을 TV 보도를 보고 알았다"고 했다. 계엄사 포고령 1호는 국방장관이 건넸다고 했다. 그런데 자신의 명의로 발표한 포고령을 누가 썼는지도 몰랐다, 고 했다. 순간적으로 검토한 뒤 발표했다. 육군참모총장 자격으로 국회 국방위에 출석한 자리. 그는 계엄사령부를 꾸리기도 전에 계엄군 289명(JTBC)이 중앙선관위에 난입한 사실도 몰랐다. 비상계엄 선포 5분 만의 일이다. 방첩사령관 여인형(중장, 육사 48기)이 급파한 사복 차림의 정보보호단 요원들이 경찰과 함께 들이닥쳤다. 이 사실도 몰랐다. 계엄사령관은 그들의 출동 이유도 몰랐다. 방첩사령관은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장을 맡는다. '서울의 봄' 당시 전두환이 앉았던 자리다.
중앙선관위에 간 계엄군 병력은 국회의사당보다 많았다. 윤석열(8회)-김용현(7회)-여인형(17회)의 충암고 인맥이 법과 지휘계통을 깡그리 무시하고 맹활약했음이 만천하에 드러난 대목이다. 12.12 군사반란 당시 하나회의 21세기 버전이다. 비슷한 시각 여의도 국회의사당에는 특전사 최정예 707 특임단과 1공수여단, 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특임대 200여 명이 배치됐다. 군홧발로 의사당을 유린했다. "작전 대상이 국회인 줄 모르고 출동했다"는 병사들의 증언이 나왔다. 우원식 국회의장을 비롯한 많은 의원이 담벼락을 넘어 의사당에 들어갔다. 그런데 계엄사령관은 병력이 어떤 목적으로 국회의사당에 간 줄 모른다고 했다. 아니, 국회에 간 사실 자체도 몰랐다. 자신의 증언이 맞다면, 계엄사령관은 허수아비였다.
계엄사령관은 허수아비
수방사 사령관 이진우(중장, 48기)는 계엄사령관에 여러 번 전화를 걸어 경찰 증파를 요청했다. 야당에 따르면 방첩사는 현장에서 국회의원 체포조를 운영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출석한 행안부 장관 이상민(충암고 12회)의 활약도 눈부셨다. 이태원 참사에도 불구하고 장관직을 유지하게 해준 대통령에 대한 보은의 마음이 넘쳤을까? 댓바람에 "이번 사안을 내란죄다, (나를) 내란의 동조자나 피혐의자라고 표현하는 데 신중을 기해달라"라고 말했다. "비상계엄령 선포는 고도의 통치행위로 대통령께서 헌법적 절차와 법을 준수하는 한도 내에서 한 것"이라고도 우겼다. 전복적 사고방식이다.
"(계엄군이) 국회의 권한을 막으려고 마음먹었으면 충분히 할 수 있었다"고 태연히 내뱉었다. 계엄군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의사당에 들어온 시간은 4일 0시 30분쯤.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요구안 표결을 하기 전이었다. '대통령은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 (헌법 제77조 제1항)' 계엄법 제1조 제2항은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되어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도로 교란되어 행정 및 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를 규정하고 있다. 놀랍게도 그는 판사 출신이다.
충암고 12회 졸업생은 협력자
계엄사령관이 허수아비였다면, 행안부 장관은 협력자였다. 울산 '국민통합 김장 행사'에서 앞치마 두르고 배춧잎을 만지다가 행사를 끝내기도 전에 대통령실의 전화를 받고 황급히 귀경했다. 엉뚱하게 그가 향한 곳은 용산이 아니었다. JTBC 취재 결과, 계엄 선포 전인 3일 저녁 7시 20분쯤 그와 법무장관 박성재의 전용차량이 서울 삼청동 '대통령 안전가옥' 골목에서 목격됐다. 두 대의 제네시스 G90은 1시간 10분 뒤 떠났다. 12.12 군사반란 당일 쿠데타 주도 세력이 장태완 수방사령관과 정병주 특전사령관을 묶어 두었던 '연희동 잔칫집' 행사를 연상케 한다. 성격은 전혀 다르다.
신군부의 간계에 넘어간 두 사령관은 쿠데타 반대세력이었지만, 두 명의 장관은 판, 검사 출신이다. 한 명은 대통령의 고교 후배이고, 다른 한 명은 검찰 후배이다. 비상계엄령을 내린 이유의 하나가 야당의 판검사 겁박이었던 만큼 우호세력으로 판단했을 법하다. 충암고-육사 라인에 더해 서초동 율사 출신들의 연합인 셈이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충암고 12회 졸업생은 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에서 "모든 국무위원이 다 우려했고, 저도 여러 번 우려를 표명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에게 계엄 선포를 건의할 수 있는 국무위원은 행안부 장관과 국방장관이다(계엄법 제2조 제6항). 이번엔 충암고 7회 졸업생이 총대를 메고, 8회 졸업생에게 건의했다.
헌법도, 법률도 무시한 그들이 여전히 '현직'
처음부터 끝까지, 또 이후에도 뒤죽박죽이다. 행안부 장관 이상민은 국무회의 참석 인원이나, 발언 내용이 무슨 국가 비밀이나 되는 듯 한사코 밝히지 않았다. 규정상 국무회의 회의록을 작성해야 하는 행안부 의정관은 회의 소집 자체를 몰랐다. 해서, 국방부 관계자가 작성했다는 게 주무 부처 장관의 유체이탈식 화법이었다. "(계엄 해제 12시간이 지나도록) 아직 국방부로부터 회의록을 받지 못했다"고 남의 일처럼 말했다. 하여, 45년 만에 발동된 비상계엄 논의 과정은 안갯속이다.
계엄법 제2조 제5항에 따르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거나 변경하고자 할 때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이날 국무회의가 희한했다. 보건복지부 장관 조규홍은 국회 보건복지위에 참석해 3일 밤 10시 17분께 국무회의에 (늦게) 도착해 10시 45분께 회의실에서 나왔다"고 증언했다. 8분 참석한 것.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안 통과 뒤 열린 4일 새벽 국무회의는 참석하지 못했다. "새벽 2시쯤 문자가 왔는데 4시께 알았기 때문"이다. 대통령실이 회의를 소집하면서 국무위원의 성향을 따라 연락 방법이 달랐음을 시사한다. 그는 계엄이 위법이고 위헌이었다는 점에 동의했다. 여기까지가 조연들의 말이다. 주연은 국민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정의의 길' 가겠다는 김용현
용감한 건지 무모한 건지, 풍문으로 들리는 (전)국방장관 김용현의 행적은 거리낌이 없다. 4일 "비상계엄과 관련해 국민들께 혼란을 드리고 심려를 끼친 데 대해 국방장관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모든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라면서 사의를 표명했다. 대통령 윤석열은 5일 오전 면직을 재가했다. 같은 날 사의를 표한 계엄사령관의 사표는 반려했다. 그 결과, 조연은 국회 출석했고, 주연은 결석했다. 내란죄 혐의는 벗을 수 없지만, 국회의 탄핵 소추는 피했다. 송구스러움은 본심이 아니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4일 언론의 질의에 '반국가 세력 정리를 위한 비상조치로 계엄이 필요했다'고 강변했다.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충암고 3인방은 같은 신념을 갖고 있었다. 검경은 그의 출국을 금지했지만 그가 백주에 활보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께끄름하다. 대통령은 더욱 깊이 숨었다.
4일 담화를 발표한다고 했다가 5일 오전으로 옮기더니 아예 취소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당장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풍전등화의 운명에 처해 있다"라면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국민 여러분께 호소"한 장본인이 안 보인다. 출근했는지조차 확인할 길이 없다. 대통령실 누리집의 공개일정에는 4일, 5일이 비어 있다. 3일 비상계엄 심의 국무회의(3일)와 비상계엄 긴급 담화는 물론 4일 계엄 해제 국무회의도 일정에 없다. 공개일정에 따르면 아무 일도 없었다.
영화와 소설에서 튀어나온 '현실'
헌법과 계엄법에 없는 근거로 비상계엄을 덜컥 선포했던 '충암고 8회 졸업생'도 고교 동문들과 마찬가지로 "비상계엄은 헌법과 법률에 적합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침묵 속에서 무엇을 도모하고 있을까. 혹여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헌법과 법이 규정한 계엄발동 상황을 상상하고 있지는 않을까. 연일 경향 각지에서 열리고 있는 탄핵 집회장은 '사회질서를 극도로 교란'하기에 맞춤이지 않을까. 비상계엄을 열렬 지지하는 '아스팔트 극우'를 활용하지 않을까.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조차 마뜩잖은 그들이다. 죄다 기우이길 바란다. 군통수권자와 계엄군을 동원한 사령관들이 건재해서 하게 되는 걱정이다. 지난 10월 평양 무인기 침범 당시 러시아 외교부가 경고했던 것처럼 '대북 도발'을 감행할 수단도 쥐고 있다. 국민이 영화 <주유소 습격 사건>에서처럼 가스라이터를 든 이에게 위협당하고 있는 것 같아 하는 말이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담화문에서 야당과 국회를 두고 시종 헌정질서를 짓밟고 내란을 획책하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이자 범죄자 집단이며, 괴물이라고 매도하더니, 생뚱맞게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겠다"고 다짐했다. 당최 앞뒤 연결이 안 된다. 국민이 목도한 바 위협은 '용산'에 있었고, 지금도 그러며, 당분간 달라질 것 같지 않다. "제발 따로 살자"는 북한은 잠잠하다. 비상계엄에 어떠한 관심도 표명하지 않고 있다. 다만 조선중앙통신은 북·러 포괄적 전략 동반자 조약이 4일 비준서 교환으로 효력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10일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한강은 소설 <소년이 온다>와 <작별하지 않는다>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제주 4.3 학살에서 벌어진 야만의 역사를 시적인 문장으로 풀어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비상계엄은 역사가 반복될 수 있음을 각인시켰다. 소설 속의 대한민국과 비상계엄의 대한민국, 세계에 내보이는 '두 얼굴'이다.
미국=한국민주주의 수호천사? 성공한 쿠데타 묵인한 흑역사 (6) | 2024.12.09 |
---|---|
역사의 명령이다! 한동훈-이재명은 손을 맞잡으라 (7) | 2024.12.07 |
대통령 탄핵 앞서 '쿠데타 군인'부터 배제해야 한다 (5) | 2024.12.05 |
국회가 예산 깎았다고 계엄령? 미국선 상상도 못할 일 (6) | 2024.12.05 |
윤석열 친위 쿠데타, 작년 11월부터 준비했나 (0) | 2024.12.05 |